겉으로는 활황···속으로는 이질화
국채 투매·주식 매수 ‘양면 플레이’
환율 급등, 정책 여력 매우 제한적
'디스토피아'적 실물 없는 랠리만

한국 금융시장이 실물경제와 괴리되는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이 본격화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급등세를 이어가고, 국채 시장에서는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지만 코스피 지수는 반도체 대형주의 상승에 힘입어 사상 최고치 수준인 3600선을 돌파했다. 자본시장은 뜨겁지만 실물경제는 식어가는 긴장감이 시장 전체를 감싸고 있다.
10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최근 한 달 사이 외국인 투자자는 국채 선물 약 7조원어치를 순매도하는 동시에 유가증권시장에서 7조원 이상을 순매수했다. 장기 금리에 기반한 신뢰 자금은 빠져나가고, 단기 차익을 노린 주식 매수세만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이는 자본이 실물경제의 전망보다 단기 테마에 반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원·달러 환율은 10일 오전 1423원에 거래를 시작해 장중 1428원 대까지 치솟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 선불 요구’로 관세 협상이 장기화되면서 환율 상승 압력이 누적되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금리 인하 대신 동결 기조를 유지하면서 국채 시장에서 외국인 이탈을 자극했다.
이 와중에도 코스피 지수는 사상 첫 3600선을 넘어섰다. 반도체 대형주가 상승세를 주도했고, 글로벌 AI 수요 서사가 국내 시장을 직접 자극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각각 4.6%, 6.4% 상승하며 지수를 끌어올렸다. 펀더멘털 개선이 아닌 ‘AI=HBM=반도체 주가’라는 단순한 공식에 외국인 자금이 몰리며 형성된 흐름이다.
단기적인 주가 상승은 정책 당국과 시장 참여자들에게 실물의 회복으로 오인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AI 반도체 테마에 편승한 단기 자금 유입이 만든 ‘불꽃’에 불과하다. 실물경제는 여전히 무역 불확실성, 내수 부진, 환율 상승이라는 삼중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디커플링이란 원래 두 변수가 일정 기간 동행(coupling)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궤적이 어긋나기 시작하는 현상을 말한다. 한국 경제에서 나타난 금융–실물 디커플링은 금융자산 가격(주가, 채권, 환율)과 실물경제(생산·고용·수출입 등)의 움직임이 분리되는 상황이다. 과거 금융이 실물의 ‘선행지표’로 작동하던 법칙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토빈(Tobin)의 q 이론상으로는 q가 투자(=실물경제)의 조정 변수로 작동해 실물과 금융이 동행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자산가격 상승이 설비투자보다 투기와 자사주 매입으로 흘러가면서 q가 실물로 전달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금융이 실물보다 훨씬 빠르게 이동하는 ‘이질적 궤도’가 고착화되고 있다.
특히 한국은 디커플링에 취약한 구조를 지녔다. 반도체와 원화라는 핵심 변수가 글로벌 유동성 신호에 과도하게 연동돼 있고, 외환보유액은 GDP 대비 35% 수준에 불과하다. AI 반도체 테마에 힘입어 증시는 치솟고 있지만, 수출과 내수는 관세 협상·수요 둔화·정책 불확실성 속에서 정체돼 있다. 실물은 제자리에 있는데 금융만 앞서 나가는 전형적인 거품 증폭 국면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지금의 코스피 3600 돌파는 이재명 대통령이 말하는 ‘추세’가 아니라 금융시장이 실물과 동떨어져 스스로 만든 불꽃”이라며 “실물경제의 회복 없이 금융 랠리만 확장되면 충격의 진폭이 커진 ‘시간차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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