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넉 달 만에 최고치·채권 금리 급등
트럼프 '선불' 발언에 외환시장 부담 가중

코스피가 급락한 2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코스닥 종가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코스피가 급락한 2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코스닥 종가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한미 통상협상 불확실성과 미국 금리 인하 기대 약화가 겹치면서 국내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렸다. 주식·원화·채권 가치가 동반 하락하며 투자심리가 위축됐다.

2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11.8원 오른 1412.4원으로 마감했다. 이는 지난 5월 14일(1420.2원) 이후 약 넉 달 만의 최고치다. 환율은 사흘 연속 상승하며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졌던 1400원과 1410원을 연이어 돌파했다.

코스피는 전장보다 85.06포인트(2.45%) 하락한 3386.05로 장을 마쳐 10거래일 만에 3400선을 밑돌았다.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6611억원, 4889억원을 순매도했고 개인이 1조975억원을 순매수했다. 코스닥지수 역시 17.29포인트(2.03%) 내린 835.19로 4거래일 연속 약세를 이어갔다.

채권시장도 불안정했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 대비 3.4bp 오른 연 2.562%에 마감했다. 10년물은 5.8bp 상승한 연 2.943%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30년물도 연 2.812%까지 올라 연중 고점(2.820%)에 근접했다. 외국인들은 이날도 3년물 2만7741계약, 10년물 1만2290계약을 순매도하며 국채 선물 시장에서 이탈세를 이어갔다.

시장을 압박한 핵심 변수는 한미 통상협상 불확실성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중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 합의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우리는 다른 나라들로부터 결코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잘하고 있다. 우리가 이토록 잘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관세와 무역 합의 덕분에 한 사례에서는 9500억 달러를 확보하게 됐는데 이전에는 전혀 지불하지 않던 금액"이라며 "아시다시피 일본에서는 5500억 달러 한국에서는 3500억달러를 받는다. 이것은 선불"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합의 핵심 쟁점인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를 둘러싼 이견이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나온 것이다. 특히 ‘선불’이라는 표현은 한국의 투자 이행을 관세 인하의 전제조건으로 못 박은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양국은 지난 7월 30일 무역 협상에서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 등에 부과하는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시행하기로 합의했지만 투자 방식과 규모를 두고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한국은 지분 투자를 최소화하고 보증 위주로 설계하려는 반면 미국은 현금을 지분 투자 형태로 받아 투자처와 수익 배분을 주도하는 이른바 ‘일본식’ 모델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외환시장 리스크를 우려하며 통화스와프 체결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불확실성에 더해 미국 경제 지표 호조로 달러 강세가 나타난 점도 국내 금융시장에 부담을 줬다. 미 상무부는 25일(현지시간) 2분기 GDP 증가율 확정치를 연율 3.8%로 발표했는데 이는 잠정치(3.3%)보다 0.5%포인트 높은 수준이자 2023년 3분기(4.7%)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달러인덱스는 전일 대비 0.59% 상승한 98.375로 마감했다.

원화·주식·채권이 동반 하락하며 한국 시장이 통상과 통화, 금리 변수에 한꺼번에 노출된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불’ 발언은 단순한 협상 카드가 아니라 한국 외환시장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무게가 크다.

정부가 통화스와프 체결을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투자 방식이 지분 중심으로 확정될 경우 달러 자금이 단기간에 빠져나가고 이는 외환 보유액과 환율 안정정책에 즉각적인 압박으로 작용한다. 협상이 단순히 관세와 투자 교환 차원을 넘어 한국의 대외 건전성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된 셈이다.

한 증권사 채권 딜러는 여성경제신문에 "연휴를 앞두고 관망세가 나타날 거라 예상했지만 외국인 매도가 계속 이어지면서 금리가 생각보다 크게 움직였다"며 "연휴를 고려하면 당분간 채권시장이 더 예민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미국 성장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연준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후퇴한 점도 원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 통상 압박과 통화 긴축이 동시에 겹치면서 시장은 당분간 외국인 자금 유출과 원화 불안에 더 민감해질 수 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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