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영의 부국강병]
미국이 세계 경찰 노릇을 포기하면
미국에 의존하던 국가는 심각해지고
자립 기반 튼튼한 국가는 영향 안 받아

트럼프가 집권하면서 ‘미국 없는 세상’이 본격화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맡아 왔던 ‘세계의 경찰 노릇’을 인제 그만하겠다고 명백히 선언한 것이다.

안보는 전통적인 동맹을 외면하고, 고율의 관세 부과로 50년간 번성했던 자유무역이 쇠퇴해 간다. 이제 각자도생의 길을 찾지 않으면 생존이 위협받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에 잘 대처하지 못하면, 광야에서 한순간 포식자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험악한 야생의 세계를 마주해야 한다. 이렇게 세계 경제와 안보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고립무원의 한국. 늑대가 닭장 속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도 그 속에서 자기들끼리 한가하게 싸우고 있는 형국이다. 안타깝다.

미국 없는 세계는 근본적인 세계질서의 개편을 의미한다. /픽사베이
미국 없는 세계는 근본적인 세계질서의 개편을 의미한다. /픽사베이

미국은 유럽 문제는 유럽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면서 러우〮 전쟁에서 발을 뺐다. 미국이 설계했던 자유무역 시스템도 언제까지 호구 노릇을 해야 하느냐고 하면서 관세를 대폭 올리고 장벽을 쌓고 있다.

피터 자이한(Peter Zeihan)은 지정학에 기초한 안보 전문가로, ‘지정학은 그 나라의 운명’이라고 간명하게 정의한 바 있다. 그는 2018년부터 지속적으로 ‘미국이 빠진’ 세계질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경고해 왔다. 그리고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특히 한국은 미국의 안보 보호막 아래서 오랫동안 평화와 번영을 누려왔지만 이제 우리 힘으로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또 오랫동안 자유무역으로 덕을 본 나라들은 긴장해야 한다.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독일 등 수출을 많이 하는 국가들이다.

 피터 자이한은 한 나라가 외부의 도움 없이 안전하게 존립하는 데는 먹거리인 농산물, 에너지, 안보 환경이 핵심적 3요소라 한다. 이 조건을 가장 잘 충족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과거에는 석유 때문에 그 수송로인 페르시아만을 미국이 지켰으나 지금은 셰일가스 개발로 그럴 필요성이 없어졌다.

다만 제조업이 매우 쇠퇴하여 반도체나 조선 등 제조업만 부활하면 완벽한 자급자족 국가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미국 없는 세상’이 되면 독일도 한국처럼 갑갑해진다. 우선 에너지 문제가 골치 아프다. 러시아가 에너지를 싸게 공급했으나, 러우〮 전쟁 이후 비싸게 석유와 가스를 도입해야 했다. 농산물도 풍족하지 않다.

안보는 2차대전 이후 미군이 주둔하여 걱정이 없었으나 이제 그 공백을 메우는 데 상당 시간이 걸릴 것이다. 경제구조도 수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독일이다. 무역 장벽이 높아지면 독일은 힘들어진다.

미국 없는 세상에도 먹거리 농업, 핵 강국, 탄탄한 에너지 보급망으로 프랑스는 자유롭다. /픽사베이
미국 없는 세상에도 먹거리 농업, 핵 강국, 탄탄한 에너지 보급망으로 프랑스는 자유롭다. /픽사베이

이와 반대로 미국이 발을 빼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나라가 있다. 프랑스이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비옥한 땅을 가진 농업 강국이다. 또 드골 집권 당시 핵무기를 개발한 핵 강국이다.

에너지도 페르시아만이 막히면 지중해로, 북해산 원유 등 에너지 공급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프랑스는 폐쇄경제 하에서도 국가 존립의 3가지 요소를 잘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최고 맹방이다. 미국이 빠지면 일본이 미국 대신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해군력도 미국 다음으로 강하다. 미국 없는 세상이 와도 일본은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문제는 한국이다. 자주국방은 말처럼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나라들로 둘러싸여 있다. 이웃인 중국, 러시아, 핵을 가진 북한 앞에서 세계 5위의 군사 강국이라 으스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지난 정권에서 막무가내로 북한을 적대시한 것은 큰 전략적 실수였다. 이것이 북한의 ‘두 국가론’을 불러오고, 러시아 파병까지 하면서 두 나라는 혈맹관계로 발전했다.

얼마 전에는 중국 전승절에 망루에 올라, 북중〮러〮 3각 동맹을 과시하는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했다. 한국으로서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풍경이다. 저들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닥칠 큰 위협이기 때문이다. 

북한을 외면하고 국제관계를 하면 쉬울 것 같으나 그건 착각이다. 북한이라는 요소는 국제관계에서 보이지 않는 상수로 작용하고 있다. 심지어 남한의 심각한 이념 갈등 이면에도 북한은 깊이 자리하고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남과 북의 소통과 교류는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과제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4대 강국은, 한반도를 남북으로 갈라서 ‘이이제이(以夷制夷)’로 동북아 정세를 관리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한시도 잊으면 안 된다. 사실상 그들의 졸(卒)이 되어있는 상황, 벗어나야 한다.

‘미국 없는 세상’은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패러다임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 하고, 주변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핵심은 그간 방치했던 북방 관리에 신경을 쓰는 것이라 생각한다.    

여성경제신문 강정영 청강투자자문 대표 himaba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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