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영의 부국강병]
전임 대통령이 잃어버린 시간
되찾는 5년이 되길 간절히 기대
아름다운 강이 동서로 흘러간다. 그 강을 끼고 나지막한 산 마을이 있었다. 그곳은 산수가 아름다워 ‘금수강산’, ‘고요한 아침 동네’로 불리기도 했다.
마을 꼭대기에는 성주가 살고 바로 아래 전망 좋은 곳에는 고관대작과 귀족들이 살고 있었다. 산 아래쪽에는 농사짓는 농부, 근처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 이것저것 잡화를 팔아서 먹고사는 영세 상인, 대장장이, 생선장수, 소금장수들이 옹기종기 살고 있었다.
귀족들 집에 가서 허드렛일하는 도우미, 머슴, 집사, 경비 일을 하는 하층민들은 그 마을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살았다.

그 동네 산 중턱에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며 훈장 노릇을 하는 집이 있었다. 그 집은 평민보다는 조금 나은 대우를 받았지만 귀족들보다는 아래 계급이었다.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그런대로 공부는 좀 했지만 고집 세고 부모 말을 잘 안 들었다. 때로 아비가 훈육을 위해 채찍을 든다는 소문이 동네에 자자했다.
그는 윗동네 전망 좋은 곳에 사는 고관대작과 귀족들을 몹시 부러워했다. 그래서 신분 상승을 하여 그들처럼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고관대작으로 가는 지름길인 과거 시험에 매달린다. 당시 영특한 인재들은 서너 번이면 붙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그는 응시하는 족족 낙방한다.
땀 흘리는 노동은 안 하고 겉멋만 들어 ‘과거만 보는 낭인’이 될 거라고 동네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했다. 그런 그가 10여년만에 어쩌다가 과거를 통과한다. 놀다 술 마시다 책도 가끔 보는 방탕한 행실 탓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혀를 찼다.
그러고는 그는 포도청 하급 관리로 들어간다. 포도청은 예나 지금이나 고상한 관직은 아니다. 사람을 잡아 압박하고 문초하는 험악한 직업이다. 때로는 무고한 사람을 잡아서 죄를 만든다는 소문도 없지 않은 터였다. 주변 사람들이 잘못 보이면 잡혀갈까 봐 슬슬 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동네에서 몇 사람이 하찮은 일로 다투다가, 또는 좀도둑으로 오해를 받아 포도청에 붙들려갔다가 오는 일이 더러 있었다. 거기서 곤장을 맞은 이들도 있고, 죄를 짓고 거짓말한다고 혼이 난 사람도 있었다.
그즈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긴다. 산꼭대기에 사는 성주가 죽은 것이다. 아들이 없어 그 외동딸이 성을 물려받는다. 문제는 그 아래에 사는 힘 센 신흥 귀족이었다. 그는 다른 귀족과 연합하여 만만해 보이는 성주 딸을 쫓아내고 호시탐탐 성주가 되려고 음모를 꾸몄다.
그러던 차에 산마을에 홍수가 나서 집이 무너지고 몇 사람이 물에 떠내려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때다 싶어서 그 귀족은 이 사건을 여자 성주가 무능하여 벌어진 일이라고 뒤집어씌워 그를 끌어내리려 한다.
홍수가 난 시간에 성주가 그 측근 십상시 두목과 비밀리에 동침했다, 그 때문에 대처가 늦어 사건이 커졌다는 것이다. 명백한 음해였지만 흉흉한 소문은 바람 따라 온동네에 퍼졌다. 마을 사람들은 촛불까지 들고 성주의 집 앞까지 올라가서 성주가 물러날 것을 외친다. 그 시위를 몇 날 며칠을 계속하면서 그를 압박한다.
이때다 싶어서 귀족 일당은 성주를 고발한다. 혐의는 그녀가 말을 키우는 그 마을 부자에게 몰래 뇌물을 받은 적도 있다. 무능한 그녀가 신기가 있는 여성 집사에게 의존하여 권한을 남용했다. 그래서 홍수사건 뿐만 아니라 모든 일 처리가 서투르고 무능하여 마을에 손해를 끼쳤다는 죄목이었다. 그 귀족은 눈을 껌벅거리면서 사건을 포도청에 있는 훈장 아들에게 맡긴다.
훈장의 아들은 포도청 내 잔머리 잘 굴리는 것으로 소문난 자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교묘하게 엮는다. 그녀에게 대역죄를 뒤집어씌우고 무려 30년 형을 때려 옥에 가둔다.
귀족은 훈장 아들이 그녀를 중죄인으로 만들어준 덕분에 여자 성주를 끌어내리고 새로 성주가 된다. 이에 그는 훈장 아들에게 매우 고마워한다. 대가로 그를 하급 관리에서 일약 포도대장으로 승진시킨다. 그 아들은 논공행상 자리에 나가서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았다’면서 마치 대단한 의인인 듯 행세를 한다.
그 덕분에 마을 사람들도 그를 큰 인물로 착각한다. 성주가 물러나자 그런 이미지 덕분에, 순식간에 성주 자리까지 꿰찬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그는 ‘사람 잡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그야말로 '맹탕'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평생을 귀족들 눈만 맞추어 왔을 뿐 아랫마을 백성들이 어떻게 먹고사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흙냄새, 바다 냄새를 맡아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탓에 아랫마을 장삼이사의 먹고사는 문제에 관심도 없었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도 몰랐다.
거기에다가 그들의 불만이나 원성을 무시하고 마이동풍 하는 오만함과 교만함이 도를 넘었다. 그와 궤를 같이하는 극소수 일당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분노한 백성들이 반기를 들고 일어난다. 민심이 극도로 나빠지자, 그 탓을 사사건건 자신에게 반기를 든 귀족들 탓으로 돌린다. 근위병들을 시켜 한밤중에 귀족들을 체포 감금하려 시도한다. 이 소문이 들리자마자 성주에게 극도의 불만을 가졌던 아랫마을 농부, 상인 등등 모두가 거리로 나선다. 곡괭이와 삽을 들고 총칼을 든 근위병들을 강하게 저지한다.
민심을 무시하고 역주행한, 무모한 성주의 친위 쿠데타는 바로 실패로 끝난다. 새로 성주를 뽑는다. 무능한 성주에게 치를 떨었던 백성들은 그들의 애환을 잘 아는 대장장이 아들을 성주로 뽑았다. 귀족들이 폼만 잡고 백성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 못 하니 아랫것들 마음도 잘 알아주고, 생존 방법을 잘 아는 그에게 큰 기대를 한 것이다.

이것이 얼마 전 금수강산 산 마을에서 벌어진 거짓말 같은 실화이다. 쫓겨난 ‘성주의 시간’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끔찍한 경험이었다. 귀중한 역사의 흐름에서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반드시 지워버려야 할, 다시는 일어나서 안 되는 사건이었다.
새로 성주가 된 사람은 어릴 때부터 바닥을 전전하며 오랫동안 고된 삶을 살았다. 먹고 사는 문제만큼은 잘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는 귀족들과 권문세가의 ‘뜬구름 잡는 듯’ 개념 없는 짓거리를 생생하게 경험했다.
그들에게 억울한 일도 자주 당했을 것이다. 개천에 사는 ‘가붕개(가재 붕어 개구리)’는 서럽다. 측은지심을 가지고 그들이 먹고사는 문제, 빠르게 해법을 찾기 바란다. 그들과 동행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기를 바란다.
5년은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그의 5년’이 어떤 개념 없는 자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여성경제신문 강정영 청강투자자문 대표 himaba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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