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작법인 출범, 국내 판매자에 수출 판로 확대
공정위 조건부 승인, 3년간 데이터 공유 금지
가격 경쟁·품질 관리·시장 신뢰가 핵심 변수

신세계가 증국 자본의 글로벌 이커머스 공룡 알리익스프레스와 손잡고 합작법인 ‘그랜드 오퍼스 홀딩(Grand Opus Holding)’을 출범시키면서 국내 유통 시장의 경쟁 구도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이 합작을 조건부 승인하며 3년 간 데이터 공유 금지 등 제약을 부과했지만, 업계는 이번 빅딜이 쿠팡·네이버 중심의 양강 체제를 3강 구도로 바꿀 거대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전날 신세계그룹의 지마켓(G마켓·옥션)과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 동맹을 조건부로 승인하면서 양사 합작법인이 출범하게 됐다.
지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는 한국 신세계그룹과 중국 알리바바인터내셔널이 각각 5대5로 출자한 합작법인 ‘그랜드오푸스홀딩’ 산하로 편입돼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로 운영된다. 양사는 국내 온라인 쇼핑의 대형 플랫폼 쏠림을 완화하고 K-상품의 해외 진출을 확대한다는 목표 아래 ‘독보적인 상생 플랫폼’을 내세웠다.
지마켓·옥션 판매자 60만 명은 통관·물류·현지 배송·반품·고객 관리까지 지원받아 연내 2000만 종의 상품을 알리바바 인터내셔널 플랫폼을 통해 직접 판매할 수 있으며, 1차로 싱가포르·베트남 등 동남아 5개국에서 시작해 200여 개국으로 판로를 넓힐 계획이다.
합작법인을 통한 양사 네트워크 공유는 국내 판매자에게 수출 판로 확대라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K-뷰티·리빙·취미 등 강점을 가진 중소 브랜드가 알리바바의 글로벌 마켓플레이스에 보다 쉽게 진출할 수 있어 ‘역직구’ 매출 증대가 기대된다. 알리바바의 국제 물류 역량과 신세계의 오프라인 인프라가 맞물리면 배송·반품 서비스도 한층 빨라지고 편리해질 전망이다. 이는 쿠팡의 로켓배송이 독주하던 시장에 직접적인 도전이 될 수 있다.
지마켓 셀러들은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의 ‘케이베뉴’에도 입점하고, 알리익스프레스는 지식재산권 보호를 강화하며 한국 내 상품 라인업을 확대한다. 지마켓은 AI 오픈소스 모델을 적용해 24시간 초개인화 쇼핑 어시스턴트를 도입하고, 알리익스프레스는 지마켓의 물류망과 신세계의 유통 역량을 활용해 중국산 제품 국내 판매를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업계는 이번 결합으로 적자가 쌓인 지마켓의 재무 건전성 개선과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의 ‘가품 이미지’ 탈피 등 상호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
다만 공정위는 지마켓과 알리를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국내 소비자 데이터를 기술적으로 분리하도록 조건부 승인했다. 특히 국내 온라인 해외직구 시장에서 상대방의 소비자 데이터(이름·ID·이메일·전화번호·이용·검색 이력 등) 공유를 금지했으며, 해외직구 이외 영역에서는 소비자가 선택해 공유할 수 있게 했다. 공정위는 국내 온라인 해외직구 시장 내에서 두 회사의 합산 점유율이 41%로 1위인 데다 지마켓이 5000만 명 이상 회원 데이터, 알리가 글로벌 구매·평점 정보를 보유해 데이터 결합 시 네트워크 효과가 강화돼 경쟁을 제한할 우려가 크다고 내다봤다.

양사는 손을 맞잡고 소비자와 중소 셀러(판매자)의 선택권과 혜택을 강화해 국내 온라인 시장을 사실상 양강 구도로 재편한 쿠팡과 네이버에 도전장을 내밀게 됐다. 쿠팡은 ‘계획된 적자’를 앞세워 막대한 투자를 통해 물류 유통을 전국망으로 구축한 ‘쿠세권’(로켓배송 가능 지역)을 보유하고 있다.
네이버는 최근 신선식품 새벽배송 강자인 컬리와의 협업에 본격 나서면서 상대적으로 약했던 분야인 신선식품 판매에도 돌입했다. 신세계의 한국 유통시장 노하우와 알리바바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합쳐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보이면서 한국 이커머스 시장이 본격적으로 '삼파전'에 돌입할 전망이다.
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이커머스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쿠팡이 3422만 명으로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합작법인의 이용자 수는 알리익스프레스 920만 명, 지마켓 668만 명, 옥션 266만 명을 합쳐 1854만 명으로 쿠팡의 절반을 넘는다. 네이버플러스 스토어는 431만 명 수준이다.
팬데믹 기간 급성장한 국내 이커머스는 쿠팡·네이버 중심의 양강 체제로 재편됐으나, 2023년 하반기부터 중국계 이커머스(알리익스프레스·테무)가 초저가 공세를 펼치며 1300k, 바보사랑, 알렛츠 등이 폐업하고 명품 플랫폼 발란이 기업회생을 신청하는 등 지형 변화를 불러왔다. 자본력과 기술력을 갖춘 업체들은 쿠팡 독주 견제를 위해 합종연횡에 나서고 있으며, 지마켓–알리 동맹과 네이버–컬리 협력 등이 대표적이다.
알리익스프레스의 초저가 공급망과 신세계가 보유한 G마켓·옥션의 방대한 회원 기반이 결합하면 해외직구 카테고리 전반에 가격 경쟁이 가속될 전망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쿠팡·네이버도 프로모션 강화와 수수료 인하 등 방어전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시장 전반의 가격 인하 압박을 예상했다.
다만 지마켓·알리 동맹을 둘러싼 우려도 크다. 알리익스프레스의 저가 상품이 지마켓을 통해 대량 유입되면 국내 오픈마켓 전반에 가격 인하 경쟁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충성 고객층이 상대적으로 적어 이용자 수 합산이 곧바로 수익성으로 이어질지도 불확실하다.
쿠팡·네이버가 신선식품 새벽배송을 강화하는 가운데 지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가 신선식품 판매까지 확장할 수 있을지, 신세계 계열 SSG닷컴이 협업에 나설지 역시 관심이 모이지만 신세계는 현재 협업·해외 상장 계획 모두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공정위가 데이터 공유 금지와 개별 브랜드 운영 유지를 승인 조건으로 내건 만큼, 합작사의 규제 준수와 소비자 보호가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품질·안전 문제로 브랜드 신뢰가 흔들릴 경우 성장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는 합작법인의 실질적 시너지가 본격화될 내년 상반기 이후 배송·반품 체감 개선, 셀러 매출 성장 등에서 가시화될 것으로 내다본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쿠팡·네이버 중심의 양강 체제에서 신세계·알리익스프레스가 가세한 3강 경쟁으로 빠르게 재편될 전망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공정위가 데이터 분리와 개별 브랜드 운영을 승인 조건으로 제시한 만큼, 합작사가 이를 얼마나 성실히 이행하느냐가 향후 시장 신뢰의 관건이 될 것”이라며 “품질이나 소비자 보호에서 작은 문제만 생겨도 브랜드 이미지가 흔들리며 성장세가 둔화될 수 있으며, 내년 상반기쯤 배송·반품 서비스 개선과 지마켓 셀러들의 해외 매출 확대가 실제로 나타나는지가 합작 효과를 가늠할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성경제신문 류빈 기자 rba@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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