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야간노동 제한”
경영계·소비자 “생활 불편”
사회적 대화 난항 예고

택배 쌓인 물류센터 /연합뉴스
택배 쌓인 물류센터 /연합뉴스

노동계 일각에서 제기한 새벽배송 폐지론이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정부까지 나서 심야·야간 노동 전반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새벽배송 문제는 택배업에 국한된 사안이지만 정부가 추진 중인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논의와도 맞물려 파장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다만 택배업과 밀접한 산업인 이커머스 업계뿐만 아니라 소비자들도 반발의 목소리를 내고 있어 논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노동계는 장시간 노동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야간근무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은 ‘밤 10시부터 새벽 6시 사이 3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 하루 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유럽연합(EU) 근로시간 지침과 유사한 형태로, 야간 노동의 건강 피해를 줄이기 위한 취지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야간 노동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2급 발암요인으로 분류될 만큼 해롭다”며 “야간노동이 장시간 근무로 이어지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동계는 또한 교대제를 4∼5조 3교대로 세분화하고, 하루 최대 노동시간을 10시간 이하로 제한하는 등 휴식 보장 제도 강화를 병행하자는 입장이다.

다만 노조 단체에 따라 입장이 극명히 갈린다. 민주노총 택배노조는 “쿠팡 기사들이 오후 8시 30분부터 새벽 7시까지 일하면서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한다”며 “주간 연속 근무제로 전환해 건강권을 보장하자”고 제안한 반면, 한국노총은 “새벽배송 규제는 기사 생계와 직결된다”며 “노동시간 총량 감축과 주 5일 배송 정착 등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맞선다.

쿠팡노동조합은 “새벽배송은 국민의 아침 식탁과 생필품을 책임지는 서비스로, 산업의 핵심 경쟁력”이라며 “단순히 야간근로를 줄이자는 이유로 새벽배송을 금지하는 것은 택배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경영계는 근로시간 단축이 ‘생산성 향상의 결과물’이어야 한다며, 과도한 규제가 오히려 산업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연장·휴일·야간근로에 대한 가산수당 할증률을 낮춰 장시간 근로 유인을 줄이자는 제안을 내놨다.

고용노동부는 노사 의견을 종합해 ‘OECD 평균 수준의 실노동시간 감축’을 목표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야간근로 간 최소 11시간 휴식 보장제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해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논란의 핵심인 새벽배송 제도는 쿠팡·SSG닷컴 등 대형 이커머스 기업들이 주도해온 물류 시스템으로, 소비자 일상과 밀접히 연결돼 있다. 이커머스 업계는 새벽배송 제도를 발판으로 산업을 키운 만큼 새벽 배송 제한이 ‘불가능한 주장’이라며 난색을 보였다.

지마켓, 쿠팡, 네이버, 11번가, 우아한형제들, 카카오, SSG닷컴 등이 속해있는 사단법인 한국온라인쇼핑협회는 “새벽배송 제한은 소비자 불편뿐 아니라 농어민·소상공인 피해, 일자리 감소 등 광범위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며 “이미 생활문화로 자리잡은 새벽배송을 무리하게 중단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심야배송은 농산물과 생필품을 아침 전까지 전달하기 위한 필수 공정”이라며 “이를 중단하면 물류센터 일자리 수천 개가 사라지고, 배송 혼잡이 주간으로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커머스를 핵심 판매 유통채널로 삼고 있는 식품업계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CJ제일제당, 풀무원 등 주요 식품업체들의 온라인 매출이 10%대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유통기한이 짧은 냉장·신선식품의 경우 배송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식품은 출고시기에 따라 품질이 좌우되기 때문에 배송시간 제한, 심야 운행 규제 등이 현실화될 경우 폐기율이 높아지고 물류비가 상승할 우려가 있다.

무엇보다 새벽배송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에게도 불편을 초래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심야배송 전면 금지는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지 못한 채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며 “노동자 권익과 소비자 효용을 함께 고려한 균형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소비자와함께·한국소비자단체연합이 공동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64.1%가 “새벽배송이 중단되면 불편하다”고 답했고, 이용 경험자 98.9%는 “앞으로도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겠다”고 응답했다.

전세버스 업계도 “야간 물류 인력의 이동을 책임지는 운송업계의 생존 기반까지 무너질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냈다. 전국전세버스생존권사수연합회는 “쿠팡 등 물류센터 출퇴근 버스 천여 대가 야간에 운행 중인데, 새벽배송이 중단되면 근로자와 운송업계 모두 타격을 입는다”고 주장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새벽배송은 이미 생활 패턴으로 자리 잡았지만 종사자 건강권 보호도 중요하다”며 “각계 의견을 수렴해 사회적 합의점을 찾겠다”고 밝혔다.

새벽배송 금지를 둘러싼 논쟁이 단순한 ‘서비스 존폐’ 문제가 아니라, 장시간 노동 구조 개편과 일·생활 균형의 새 기준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여성경제신문 류빈 기자 rba@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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