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성수기 겨냥 주요 명품 가격 또 인상
소비심리 겨냥한 ‘배짱 장사’ 비판 확산
한국 시장만 집중 공략한다는 지적 제기

서울 시내 한 샤넬 매장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샤넬 매장 /연합뉴스

12월 크리스마스·연말 선물 시즌을 앞두고 주요 명품 브랜드들이 잇따라 가격을 올리고 있다. 패션 하우스뿐 아니라 시계·주얼리 브랜드까지 전방위 인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성수기를 틈탄 과도한 가격 인상이라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1년에만 수차례 올리는 브랜드도 다수 있어 사실상 명품 시장 전반이 상습적 가격 인상 구조를 이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8일 명품 업계에 따르면 이탈리아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는 지난 6일 국내 판매 제품의 가격을 조정했다. 대표 라인인 ‘라지 안디아모’는 1136만원에서 1301만원으로 약 14.5% 오르며 큰 폭의 상승을 보였다. 지난 2월과 5월에 이어 올해만 세 번째 인상이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도 지난 4일 ‘샤넬 25’ 핸드백 라인 가격을 평균 9%대 올렸다. 스몰백은 907만원에서 992만원으로 9.3%, 미디엄백은 970만원에서 1073만원으로 10.6% 올랐다. 샤넬은 올 한 해만 1월(가방), 3월(코스메틱), 6월(가방·주얼리), 9월(지갑·신발), 12월(핸드백)에 다섯 차례 가격을 조정했다.

구찌는 지난 10월 말 고지 없이 조용히 가격을 손봤다. ‘마몽 미니 숄더백’은 222만원에서 243만원으로 9.5% 인상됐고, ‘오피디아 스몰 토트백’ 등 다수 제품 가격도 일제히 오름세를 보였다.

여기에 루이비통도 12월 7일 ‘알마 BB’와 ‘스피디 반둘리에 30’ 등 인기 제품 가격을 3~4% 상향하며 연말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루이비통은 올해 1월과 4월에도 국내 가격을 조정한 바 있다. 프랑스 브랜드 셀린느는 12일 일부 가방과 액세서리 가격을 올렸다. ‘라지 룰루 백’은 335만원에서 350만원으로 4.5% 인상, ‘틴 룰루 백’은 250만원에서 265만원으로 6% 상승했다.

가격 상승 흐름은 시계·주얼리로도 확대되고 있다. 불가리는 지난 10일 ‘세르펜티’, ‘디바스 드림’ 등 주얼리·워치 라인의 가격을 약 3% 인상했다. 올해 4월과 6월에 이어 세 번째 인상이다. 티파니앤코 역시 이달 중 주요 라인 가격을 5~10% 인상할 계획이다. 티파니는 올해 2월과 6월 두 차례 가격을 조정한 바 있어, 연내 세 번째 인상이 예상된다.

스위스 시계 브랜드들도 같은 흐름이다. 오메가는 지난 1일부터 ‘씨마스터 아쿠아 테라 쉐이드’ 가격을 990만원에서 1040만원으로 약 5% 올렸고, 바쉐론 콘스탄틴은 15일 국내 판매 전 제품의 가격을 평균 5% 인상했다.

이처럼 단 1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최소 9개 주요 브랜드가 가격을 올린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연쇄 인상이 환율·원자재 변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본다. 코로나19 이후 소비자들의 가격 민감도가 낮아진 데다, “더 오르기 전에 사자”는 심리가 강화되면서 브랜드들이 이를 적극 활용한다는 것이다.

백화점업계 한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명품사들은 연 2~3회의 가격 조정을 기본 사이클로 운영하며 소비자 반응을 살피는 ‘가격 실험’을 하고 있다”며 “희소성과 브랜드 가치 유지를 위한 전략적 인상 성격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명품 브랜드가 가격 인상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국내 명품 시장 성장세는 가파르다. 시장조사기관 IMARC는 최근 발표에서 아시아 주요국, 특히 한국을 중심으로 중고 명품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IMARC 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한국 럭셔리 상품 시장 규모는 약 55억 달러로 평가된다. 2025~2033년 연평균 성장률(CAGR)을 4.7%로 전망하고 있다. 부유층 인구 증가와 글로벌 명품 브랜드에 대한 수요 상승이 시장 성장을 견인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일각에선 명품 브랜드들이 한국에서만 ‘배짱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유럽연합(EU)이 최근 구찌·끌로에·로에베 등 주요 명품 브랜드에 ‘재판매가격유지(RPM)’ 등 가격 통제 행위로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재판매가격유지는 제조업체가 소매점에 일정 가격 이상으로만 팔도록 요구하는 방식으로 브랜드 이미지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EU는 명품이라도 시장 경쟁을 제한하는 가격 통제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한국에서는 같은 브랜드들이 올해만 3~5차례 가격을 올렸다. 원화 약세나 원가 상승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환율 안정 이후에도 인상이 이어졌다. 

업계에서는 한국이 명품업체의 수익성 회복을 위한 핵심 시장으로 자리잡은 것이 잦은 인상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글로벌 매출이 부진한 상황에서도 LVMH·케링 등 대형 그룹의 한국 계열사는 오히려 실적을 키우고 있다. 한국 소비자의 가격 저항력이 낮고 1인당 명품 소비액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도 가격 전략을 강화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가격 담합이나 불공정 관행을 규제할 제도적 틀이 미비하다. 이에 유통업계 전문가들은 “한국이 명품업체의 가격 통제 실험장이 될 수 있다”며 공적 감시체계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류빈 기자 rba@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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