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265만명 시대, 컨트롤타워 공백 고착
부처 칸막이로 정책 단절·현장 혼선 지속돼
외청식 '부서'론 한계…권리·정착·통합 병행
총리실 직속·데이터 일원화·지역 연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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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기준 한국 체류 외국인은 265만명, 전체 인구의 5.2%에 이른다. 한국은 더 이상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며 다민족 사회이자 글로벌 이주 국가를 향해 진입한 상태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단일민족 도그마에 머물러 있다. 이 시리즈는 전국 곳곳에 형성된 이민자 커뮤니티를 직접 방문해 체류 외국인의 생활 양식 등을 기록하고 지역별 이주 사회의 모습과 서사를 '이민자 지도'로 구축하는 것을 시작점으로 삼는다. 이후에는 외국인 비자 제도 전반과 주요 체류 자격별 현황을 살펴봄으로써 한국 이민 정책의 큰 그림을 조망한다. 이 과정을 통해 이민정책 전반을 통합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시스템의 필요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짚어볼 것이다. [편집자주] |
국내 체류 외국인이 265만명을 넘긴 상황에서 이민정책을 총괄할 전담 기구는 아직 출범하지 못했다. 출입국·체류 관련 업무는 법무부, 고용과 산업 수급은 고용노동부, 교육은 교육부, 가족·다문화 지원은 여성가족부, 정착 지원은 각 지자체가 담당하는 분절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나눠진 행정 부처가 모두 필요하더라도 사건이 발생하거나 제도 개편이 필요할 때 각 부처의 우선순위와 판단 기준이 달라 조정이 지연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재외 현장에서 비자·체류 문제가 불거졌을 때 산업 부처가 먼저 대응하고 난민·체류 이슈에서 지방정부가 개별 조례나 단기 사업으로 보완하는 장면이 반복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단기 처방은 쌓이지만 다음 단계로 연결되지 않아, 유사한 문제가 형태만 바꿔 재발하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전문가들은 현 체계가 여전히 ‘관리·통제’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정책은 인구·산업·지역 전략과 결합된 중장기 로드맵보다는 개별 사업 단위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고 입국·체류 변경·사회통합·정착 지원이 한 경로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동훈 전 이민학회장 겸 전북대 교수는 “현재 이민정책은 여전히 관리와 통제 중심에 머물러 있다”며 “입국·체류·정착이 하나의 경로로 연결되지 못하면서 정책 효과가 제한된다”고 말했다고 평가했다.
출생등록이 이뤄지지 못한 외국인 아동의 권리 공백, 난민 신청자와 장기 근로자의 체류 불안, 농어촌과 건설 현장의 숙소·안전 문제 등은 제도 사이의 틈이 현장의 위험으로 전환되는 전형적 사례로 꼽힌다. 정책 흐름이 사람의 삶의 여정과 일치하지 않는 한 단일 부처의 성실한 집행만으로는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2022년 논의됐던 법무부 외청 형태의 이민청 신설안에 대해서는 실효성 의문이 제기됐다. 출입국 심사와 체류 관리를 중심으로 한 외청 모델은 신속한 처리와 일관된 집행에 유리할 수 있지만 그 틀만으로 노동권 보호, 사회통합, 정착 지원, 지방 연계까지 포괄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행사·홍보 중심 조직으로 기능이 축소됐던 전례를 근거로 '간판만 바뀌는' 조직은 정책 간 균형을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한숙 이주와인권연구소 소장은 “재외동포청처럼 행사만 하는 조직으로 전락할 수 있다”며 “이름만 이민청인 기구는 정책 균형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강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법무부 산하 외청 형태는 사실상 관리와 통제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며 “정착과 권리 보장까지 포괄하는 전담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초기 구상이 불법체류 단속·관리 강화를 우선순위로 놓았던 점을 고려할 때 권리 보장과 사회통합을 설계 원칙으로 못 박지 않으면 현장의 체감 변화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치권 논의는 공감대와 제도화 사이의 간극에 머물러 있다. 전담 기구 필요성은 여러 차례 확인됐지만 정부조직법 개정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관련 법안이 발의되더라도 선거 주기와 여론의 파고에 따라 심의 순서가 뒤로 밀리고 논의가 재개될 때마다 범위와 위상, 이관 기능을 둘러싼 쟁점이 다시 처음부터 이뤄지는 순환 구조가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난민·이민 이슈가 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정치적 고려도 속도를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책 공백은 비용으로 환산돼 현장에 축적되지만 비용의 총량과 분포가 공개·평가되는 구조는 아직 미흡하다.
해외 사례는 다른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미국은 국토안보부 산하 USCIS에서 가족·고용·인도 목적 이민을 단일 창구로 다루고 전자 기록과 처리기간 공개, 사후관리 표준화로 예측가능성을 높였다. 독일은 BAMF를 통해 언어·직업훈련과 지역사회 적응 프로그램을 정책의 중심에 두고, 연구·평가 결과를 제도 개선에 순환 반영한다.
일본은 지난 2019년 출입국재류관리청을 출범시켰지만 기술연수생 중심의 단기 순환 모델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해 장기체류·가족동반·정착지원의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이와 관련해 설동훈 전 회장은 “일본의 경우 법무성 외청으로 신설돼 실질적 변화가 거의 없었다”며 “간판은 바뀌었지만 권익 보장과 사회통합 프로그램은 여전히 미흡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독일처럼 언어 교육과 지역 정착 지원을 포괄하지 못하면 제도 개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캐나다 IRCC는 ‘익스프레스 엔트리’로 숙련 인재를 선발하는 동시에 정착 지원을 제도권 안에 내장하고 호주 DHA는 포인트제·고용주 스폰서 비자와 노동시장 영향평가를 병행해 지역·직종 수급을 유연하게 조정한다.
세 국가 정책의 공통점은 심사–정착–통합을 한 축으로 설계하고 세부 수단은 각국의 인구·산업·지역 여건에 맞춰 다르게 선택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한국의 여건이 해외와 단순 비교하거나 벤치마킹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저출산·고령화 속도,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 중소 제조업·돌봄·농축어업에 대한 의존도, 유학생·가족 이민의 증가, 특정 지역의 계절·프로젝트형 수요 등 제도 설계에 반영해야 할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계와 현장에서는 ‘참고는 하되, 출발점은 국내의 수요·위험·역량’이라는 원칙을 우선 제시했다. 특히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커지는 상황에서 이민정책이 수도권 집중을 강화하지 않고 지방의 정주·인구 구조 개선에 어떻게 기여할지에 대한 명시적 목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한국형 이민청 설계 방향을 두고는 몇 가지 공통된 과제가 제시된다. 우선 각 부처와 지자체에 흩어진 정보를 하나로 묶는 ‘데이터 일원화’ 요구가 크다. 비자 심사, 체류 변경, 사회통합 교육, 지방 정착 현황이 제각각 관리되면서 중복 심사나 누락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초기 상담부터 언어·직업훈련, 취업·주거 연계, 사후 지원까지 하나의 경로에서 관리하는 ‘원스톱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는 신청자가 여러 부처와 기관을 전전해야 하는 구조여서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정책 성과와 예산을 연동하는 방식도 과제로 꼽힌다. 처리 기간 단축, 숙련 전환율, 지방 정착률 같은 지표를 정해 달성도에 따라 예산을 배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광역·기초 단위에 대학, 산업단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두고 기숙사·통역·갈등 조정 등 지역 거점을 표준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지역 정책과의 연계 필요성도 꾸준히 제기된다. 학령인구 감소로 신입생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지방 대학들은 외국인 유학생 의존도를 높이고 있지만 졸업 이후 정주로 이어지는 경로는 불안정하다. 지역 내 일자리와 주거, 문화·교통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숙련 인재는 수도권이나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대학과 지자체, 기업, 시민사회가 연계한 정착 프로그램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졸업 전 직무훈련과 현장실습, 지역 기업 매칭을 지원하고, 임대주택·교통 인프라·멘토링 등을 결합해 ‘유학–취업–정주’로 이어지는 경로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민청 지역사무소가 이런 과정을 통합 지원하는 방식이 현실적 모델로 거론된다.
노동시장 운영에서도 미세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특정 업종·지역의 인력난을 이민으로만 채우면 내국인 임금·직무개선 압력이 약화될 수 있고 반대로 문턱을 과도하게 높이면 음성 고용과 브로커 의존 현상이 확대될 수 있다. 업종별 근로환경 개선과 자동화·디지털 전환 지원을 병행하면서도 동시에 합법 경로의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대신 고용주의 책임(표준근로계약 준수, 숙소·안전 기준, 임금 체불 제재)을 강화하는 ‘정책 믹스’ 방식이 언급됐다.
이민청은 이 균형의 설계·감독 주체로 배치되고 노동부·산업부·교육부와 공동 KPI를 설정해 목표를 공유하는 방식이 제안된다. 한용길 제주이주민센터장은 “외국인 노동력을 단순히 수급 조정 수단으로만 보면 내국인 노동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이민청은 노동부·산업부와 함께 균형을 설계·감독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담 기구의 위상에 대해서는 총리실 직속 또는 동급 수준의 독립성이 요구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조정권과 설계권이 결합돼야 부처 간 목표와 지표를 통일하고 결과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외청식 모델이 출입국 심사·단속의 효율을 높일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 이민정책의 본령인 '노동·복지·교육·주거·보건·지역정책의 결속'을 구현하기에는 범위가 협소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이민청 논의는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제도 설계와 맞닿아 있다. 특히 지방소멸, 청년 인구 감소, 숙련 인력 확보 같은 장기 과제를 고려하면 이민정책은 더 이상 부처 단위의 관리 사안으로 남겨둘 수 없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다. 갈등을 우려해 논의를 미루기보다, 정책 성과와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지역 단위 협의 구조를 제도화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자스민 한국문화다양성기구 이사장은 “외국인들을 단순히 일하고 떠나는 존재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단기·산업별 대응에 머물면 불법과 배제만 확대될 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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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 허아은 기자 ahgentum@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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