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있지만 돕기보다는 걸러내는 데 사용
정부의 잘못된 대응으로 부정적 인식 확산
"시혜적 태도 대신 동등한 거주자로 봐야"
"문제 해결하려면 정책 이전에 관심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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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기준 한국 체류외국인은 265만명, 전체 인구의 5.2%에 이른다. 한국은 더 이상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며 다민족 사회이자 글로벌 이주국가를 향해 진입한 상태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단일민족 도그마에 머물러 있다. 이 시리즈는 전국 곳곳에 형성된 이민자 커뮤니티를 직접 방문해 체류 외국인의 생활 양식을 등을 기록하고 지역별 이주사회의 모습과 서사를 '이민자 지도'로 구축하는 것을 시작점으로 삼는다. 이후에는 외국인 비자 제도 전반과 주요 체류 자격별 현황을 살펴봄으로써 한국 이민 정책의 큰 그림을 조망한다. 이 과정을 통해 이민정책 전반을 통합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시스템의 필요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짚어볼 것이다. [편집자주] |

"한국은 어떻게 보면 정말 괜찮은데 어떻게 보면 좀팽이 같은 나라에요"
김상훈 제주도 천구교 제주교구 이주사목센터 나오미센터 국장은 여성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4년 설립된 제주 나오미센터는 영어 미사로 출발해 진료소와 공부방을 운영하며 난민·이주민을 지원해 왔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난민을 위해 일한 김 국장이 이런 평가를 내린 이유는 뭘까.
한국은 제도 이전에 난민에 대한 '관심' 자체가 부족한 나라다.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사태 때만 잠시 시끄러웠을 뿐 이후 관심은 사그라들었고 정치권과 제도 개선 논의도 함께 멈췄다.
이후 난민들은 무관심 속에 방치됐다. 한국이 다문화 사회로 가는 상황에서 난민 문제 역시 당면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 이해와 소통은 앎에서 시작된다. 난민 문제 해결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 1970년대 베트남 피난민 수용으로 처음 난민을 마주했고 1992년 난민협약 가입, 2013년 난민법 시행으로 제도적 토대를 갖췄다. 그러나 난민 인정률은 여전히 저조해 2025년 현재 3%대, 최근 3년간은 1~2%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제도가 난민을 돕기보다 걸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라고 지적했다.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사태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예멘 난민들은 비자 없이 들어올 수 있는 제주도에서 난민 신청을 통해 정식으로 체류자가 된 뒤 서울 이태원으로 가 도움을 받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제주도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4월 30일부터 출도 제한이 떨어졌다. 정부는 출도 제한을 먼저 내리고 6월 1일에서야 예멘을 무사증 불허 국가로 지정하는 등 정책적 대응에 혼선을 빚었다. 결국 많은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발이 묶이고 말았다.
김 국장은 "우리나라는 1000명이나 2000명이 들어와도 수용할 수 있는 국가인데 잘못된 선택이 논란을 만들었다"라고 비판했다.

예멘과 대조되는 국가로는 시리아가 있다. 시리아의 경우 아직도 한국에 난민이 들어오고 있지만 예멘처럼 크게 주목 받지는 않았다. 비자를 받아야만 들어올 수 있는 시리아 난민 특성상 기존에 있던 사람들의 가족이 주로 난민으로 온다.
제주 예멘 난민 사태는 한국 사회에서 난민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으로 바꿨다. 김진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여성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2년에는 오히려 난민보다 이주민에 대한 인식이 더 안 좋았던 것 같다"라며 "'난민이 위험한 일을 못 하게 막겠다', '출도를 제한하겠다', '치안을 강화하겠다' 같은 말이 난민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무관심은 난민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난민을 당당히 한국에 거주하고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기보다는 잠깐 머물다가는 손님으로 바라본다. 현행법상 난민은 사업과 일당을 받는 일용직 근무가 불가능하다. 오로지 정규직으로만 종사할 수 있으며 일도 한정돼 '한국 사람들이 해도 되는 일'이라고 판단되면 근무할 수 없다.
자립을 위한 교육도 벽에 가로막혀 있다. 김 국장에 의하면 한 난민 여성은 난민 비자로 미용 학원에 다니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해당 비자는 아주 큰 대형 학원 수강만 허락해 줬고 제주도에서는 이런 학원에 다닐 수 없었다. 일각에서는 단순한 지원이 아닌 언어와 기술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난민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이 외에도 보호소 구금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보호소 구금의 경우 지난 4월 23일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피구금 외국인을 강제 송환하면서 이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아동 구금 역시 한국 형사 미성년자 연령이 적용돼 14세 이상의 아동은 계속 구금되는 상황이다.
한국에서 인도적 체류를 허가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법무부 장관뿐이라는 점도 지적된다. 난민 불인정 이의 신청도 실패하면 이후에는 법원에서 행정 소송을 벌여야 하는데 이때 소송을 통해 인도적 체류 허가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결국 법원에서도 인도적 체류 허가를 직접 주는 것은 불가능해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 국장은 "난민들도 결국 더 잘 살기 위해 이주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시혜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동등한 거주자로 바라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초기에 지원을 통해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현장의 요구는 제도 개선의 목소리로 이어진다. 이강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난민·이주민이 가장 시급하게 개선을 요구하는 사안으로 △출생 등록의 부재 △체류 안정성 문제 △노동 현장의 인권침해 문제를 꼽았다.

현행법상 한국은 동사무소나 주민 센터에서 출생 등록이 가능해 외국인은 출생 신고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난민 자녀의 경우 본국 대사관에 접근하는 것조차 어려워 법 제도 마련의 목소리가 높다.
이에 이 의원은 외국인 아동 출생 등록 등에 관한 법안, 출입국관리법 일부 개정법률안, 그리고 이민 전담 기관 신설법안을 발의했다. 특히 그는 이민 전담 기관의 경우 "단순한 행정 편의 차원이 아닌 한국 사회가 '이민·난민을 불가피한 현실이자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제도적 토대'"라고 평했다.
그러나 아직도 정치권의 관심은 부족하다. 이 의원은 "관심 있는 일부 의원들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선거와 직결되는 민생·경제 의제보다 소극적인 것이 현실"이라며 "난민·이민 문제는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정치권에서 적극적으로 다루기를 꺼리는 경향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관심이 부족한 사회에서 난민들은 방치된 삶을 살아간다. 학업·노동·체류 안정 어디에서도 온전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난민을 손님이나 잠재적 위험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할 시점이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제도 이전에 관심이다. 관심이 쌓일 때 비로소 제도와 정책이 작동한다.
※ 아래 영상은 이 기사 내용을 귀로 들을 수 있는 오디오뉴스입니다. 구글LM으로 제작했습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여성경제신문 김민 기자 kbgi001@seoulmedia.co.kr
여성경제신문 허아은 기자 ahgentum@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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