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화 이맘 "시대에 맞는 정책 필요"
서울은 평화롭지만 대구는 분쟁 중?
평생 살려고 왔지만 차별로 결국 떠나
제도적 공백으로 이주민 간 차이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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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기준 한국 체류외국인은 265만명, 전체 인구의 5.2%에 이른다. 한국은 더 이상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며 다민족 사회이자 글로벌 이주국가를 향해 진입한 상태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단일민족 도그마에 머물러 있다. 이 시리즈는 전국 곳곳에 형성된 이민자 커뮤니티를 직접 방문해 체류 외국인의 생활 양식을 등을 기록하고 지역별 이주사회의 모습과 서사를 '이민자 지도'로 구축하는 것을 시작점으로 삼는다. 이후에는 외국인 비자 제도 전반과 주요 체류 자격별 현황을 살펴봄으로써 한국 이민 정책의 큰 그림을 조망한다. 이 과정을 통해 이민정책 전반을 통합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시스템의 필요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짚어볼 것이다. [편집자주] |
"최근 4년 동안 자식들을 데리고 경북에서 출국한 사람도 많아요"
대구에 거주하는 한 무슬림이 여성경제신문에 한 말이다. 파키스탄 출신인 그는 한국에 거주한 기간만 20년에 국적 역시 획득한 명실상부한 한국인이다.
그는 최근 대구 사회를 떠난 무슬림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한국에서 평생 살기 위해 온 사람들이 차별과 혐오를 이기지 못하고 다시 떠났다는 것이다.
지난 2021년 대구 경북대학교 서문 주택가에 모스크(이슬람 사원) 건립이 예고되면서 주민 반발이 일어났다. 모스크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모여 대구 북구 대현동 이슬람사원 공사장 앞 골목길에서 '국민잔치'라는 이름으로 돼지국밥과 수육을 각각 100인분씩 준비해 먹었다. 결국 해당 사건은 2025년 5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한국을 평가할 때 인종차별에 기인한 혐오 발언의 악명 높은 사례, 이주민에 대한 혐오 표현과 증오 범죄의 대표 사례로 언급됐다.
다문화 사회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다. 어떤 국적이든 이주민의 정착은 새로운 문화와 종교, 삶의 방식이 한국 사회에 들어옴을 의미한다. 이주민 중에서도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종교는 단순한 신념을 넘어서 삶 그 자체로 기능하고 있다. 따라서 무슬림 이주민들이 한국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려면 종교적 삶이 존중받는 환경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무슬림에겐 높은 벽이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여성경제신문은 지난 5월 서울중앙성원을 시작으로 전국에 있는 이슬람 커뮤니티를 취재했다.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이슬람 국가에서 온 이주민이 제각기 여러 지역에서 자신들만의 삶을 살아갔다.
대부분의 무슬림 이주민은 국가마다 종교 활동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큰 줄기는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무슬림 이주민들의 커뮤니티 활동부터 삶에 대한 만족감은 거주 지역별, 출신 국가별, 성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났다. 한국에 대한 인식도 사람마다 달랐다.
모든 무슬림 이주민의 한국에서의 삶과 만족감이 같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국처럼 천차만별로 다른 의견이 존재하는 데에는 제도적 공백의 영향이 크다.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주민들의 삶은 거주하는 지역의 정책과 분위기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다.
본지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서울중앙성원이었다. 서울중앙성원은 1969년 5월 한국정부의 특별배려에 따라 약 1500평의 성원 건립 부지를 본 회에 희사하고 전 세계 이슬람국가들이 성원건립 비용을 지원함으로써 1976년 5월 21일 개원했다. 현재는 한국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모스크로 무슬림 이주민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찾아간 서울중앙성원의 모습은 이국적이면서도 위엄이 넘쳤다. 높은 계단 위에 흰색과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이 웅장하게 서 있다. 양쪽에 우뚝 서 있는 첨탑(미너렛)은 성원하면 떠오르는 뾰족한 모양보다는 팔각기둥형 등대가 달린 느낌이다. 첨탑 사이에 있는 중앙 건물 상단에는 녹색 글씨로 '알라후 악바르(신은 위대하다)'라는 아랍어가 새겨져 있었다. 중앙 건물의 푸른빛 아치형 입구는 성원 특유의 분위기를 더 배가시켰다.
본관 내부는 흰색을 바탕으로 특유의 아라베스크 문양이 푸른색으로 들어가 시원한 느낌을 줬다. 낮이라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드문드문 모인 사람들은 모두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종교 생활을 이어갔다. 이들은 모두 서울중앙성원 내부에 있는 표식을 통해 같은 방향으로 예배하고 있었다. 무슬림은 하루 다섯 차례, 전 세계 어디에서든 메카의 카바를 향해 기도해야 한다.
서울중앙성원의 금요일 합동 예배에는 1200명가량의 무슬림 신자가 모인다. 이는 종교가 무슬림 이주민들의 삶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무슬림들은 종교 생활을 통해 안정을 얻고 교류한다. 이주화 한국이슬람교중앙회 이맘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슬람은 실천하는 종교다. 무슬림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든 신앙을 일상의 삶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성원은 무슬림 이민자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커뮤니티 센터 역할도 겸한다. 이 이맘은 "한국의 경우 지금 내외를 모두 합하면 약 20만 명 이상의 무슬림들이 있다. 그들에게 이슬람 성원 특히 서울중앙성원은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라며 "이슬람 성원에 와서 예배를 거행하면서 가족을 생각하고 친구를 만난다. 일종의 커뮤니티 센터의 역할도 겸하고 있는 셈이다"라고 강조했다.
서울중앙성원을 포함한 이슬람 성원들은 신자들을 위한 결혼·이혼·입교·장례 등도 담당한다. 이슬람 국가에는 결혼이나 이혼을 따로 관장하는 기관이 있지만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기에 성원이 그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이 외에도 성원은 외국인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법률 상담도 시행한다.
이맘은 예배를 인도하거나 이슬람을 가르치는 종교 지도자를 말한다. 금요일 합동 예배에서 설교하는 직함이기도 하다. 이 이맘은 80년대부터 이슬람 종교에 관심을 가지며 신앙 활동과 공부를 했다. 그런 그가 보기엔 한국 사회에서 무슬림 이주민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이 이맘은 "한국의 유효 노동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채워줄 수 있는 무슬림 이주민들이 중요하다. 중소산업공단뿐만 아니라 농어촌도 외국인들로 채워지고 있고 유학생들도 많이 늘어났다"라며 "우리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외국인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의 경제와 기술을 필요로 하는 나라들에서 이주민이 올 것이다. 이 경우 무슬림의 숫자는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라며 지금 교단에서도 늘어날 무슬림들을 위한 대비를 하고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도 시대에 맞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강조했다.
전반적으로 이태원에서 만난 이주민들은 한국 생활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2년 전 방글라데시에서 학생 신분으로 와 할랄 마트에서 시간제로 일하고 있는 직원 타구르(가명·남)는 "한국에서 무슬림을 살아가는 게 어렵지 않냐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에는 종교적인 차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이 지역에 살고 있어 할랄 제품을 구매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그날의 마지막 예배 전 다시 찾아간 중앙성원에서 만난 무슬림 신자 모하마드 샤신(남)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서울시 주변에서 7년 동안 거주하며 무역 사업과 프리랜서 저널리즘 활동을 하는 그는 "한국은 무슬림에게 있어서 좋은 나라라고 생각한다"라며 과거에 비하면 인식이 상당히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모하마드 씨는 "많은 사람이 한국을 비무슬림 국가라고 생각하지만 여러 비정부기구(NGO)나 대기업과 일해 본 결과 한국은 매우 친절하고 겸손한 국가다. 종교를 따르더라도 문제가 없다"라고 했다. 그는 중앙성원에 대해서도 "서울 이태원에서 예배드리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매주 금요일마다 수천 명의 무슬림들이 이곳에 예배하러 온다"라고 했다. 다만 여전히 한국에 큰 무슬림 공동체가 없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을 표했다.
이처럼 이태원에 거주하던 이들은 한국 생활에 큰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을 벗어나 지방으로 가면 조금씩 다른 의견이 나왔다.
앞서 언급한 대구광역시 북구 대현동 모스크는 2025년까지도 완성되지 않았다. 주민 반대가 심하기 때문이다. 공사가 중단된 현재는 반대 운동도 없어 조용하지만 다시 건립을 시도하면 시끄러워질 것이라는 게 지역 무슬림의 의견이다.
갈등이 계속되면서 차별로 상처받고 한국 정착을 포기하는 무슬림들도 생겼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아이도 차별을 겪었다. 대구에 거주 중인 한 무슬림은 "학교에 다니는 무슬림 어린이들도 한국말을 다 알아듣는다. 현수막이나 SNS를 보면 혐오적 내용이 많다. 영문으로 돼 있는 경우도 흔하다"라며 "아이들이 집에 돌아와 울면서 '다른 곳으로 가자'라고 말한다. 평생 한국에 살고 싶었던 사람들도 이런 차별 때문에 결국 대구를 떠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법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인데 왜 공사가 안 되는지 알 수 없다"라며 씁쓸함을 드러냈다.
서울중앙성원을 통해 비교적 편안하게 예배하던 이태원 근처 무슬림들과 달리 대구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은 자신들을 향한 차별에 정면으로 노출돼 있었다. 이에 정책과 제도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서창호 대구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공공기관이라고 하는 북구청이나 대구청에서 갈등을 중재하기는커녕 무슬림 혐오를 확대하고 증폭시켰다"라고 주장했다.
대구 북구청은 지난 2023년 12월 14일 설계와 다르게 건물을 지은 혐의(건축법 위반)로 모스크 시공업체를 경찰에 고발했다. 이때 공사 중지 명령도 함께 내렸다. 북구청은 지난 2022년 모스크 건축지에 돼지머리가 한 달가량 놓여 있는 상황에서 "돼지머리 등 물품은 사원 건축을 반대할 목적으로 사용 중인 물건이라 해당 주민에게 필요한 물품이며 일정 주기로 새 물품으로 교체하는 등 관리가 돼 폐기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서 활동가는 "혐오 차별이 일반화되고 이것이 문제시되지 않는 상황을 한국 사회가 성찰하고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라며 제도적 공백을 지적했다.
정부에서 이주민들을 챙기지 않은 상황에서 이주민들의 삶은 지역사회의 지원과 분위기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경남 창원의 경우 이슬람 국가를 비롯해 일본, 중국, 필리핀 등 다양한 국가의 교민회가 존재한다. 창원에는 대규모 공단이 있어 일자리가 풍부했고 이에 외국인 노동자들의 유입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무슬림 이주민들의 수도 늘어났다.
창원은 이주민의 커뮤니티 활동이 상당히 활발한 곳이다. 이에는 창원시의 적극적인 이주민 정착 지원이 영향을 미쳤다. 2005년 개최돼 20년 동안 지속해 온 다문화 축제 MAMF(맘프)는 2010년부터 경남 창원을 중심으로 개최되고 있다. 맘프에는 현재 15개 교민회가 활동 중이다.
창원에 거주하는 무슬림 이주민들은 서울중앙성원 때처럼 한국에서의 삶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종교적 삶을 일상에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건 창원도 마찬가지였다. 예배 시간, 음식, 의복, 가족 관계 등 이슬람 신앙은 단순한 믿음을 넘어 삶의 모든 영역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아지마 우즈베키스탄 교민회 대표(여·37)의 삶에서 잘 드러난다. 결혼 후 한국에 들어온 그는 "우즈베키스탄은 무슬림 국가다. 이주 여성들이 남편과 갈등을 겪을 때도 종교 문제가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아지마 대표는 결혼 전 남편에게 자신의 신앙과 음식 문화, 특히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문화를 설명하며 이해를 구했다. 그러나 한국에 온 이후에는 "돼지고기를 먹어보라"라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자녀 양육 과정에서도 갈등은 반복됐다. 남편은 아이에게 돼지고기를 먹이려 했지만 아지마 대표는 이를 원치 않았다. 이런 음식 문제는 자녀의 학교 급식에서도 드러나 무슬림 자녀들은 점심을 거의 먹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지마 대표는 불교 신자였던 시어머니에게 개종을 권유받기도 했다. 그는 "모든 종교를 존중하지만 제 종교를 바꿀 수는 없다고 정중히 거절했다"라고 말했다.
그가 겪은 일화는 이슬람 종교가 한국에서 존중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대표가 겪은 일들을 통해 다문화 가정 중에서도 혼자서 자녀를 키우는 가정에 대한 지원이 미비함을 알 수 있었다.
아지마 대표는 한국 교육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 아이의 숙제를 도와주고 싶어도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결국 학원에 보내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했고 이는 지출의 증가로 이어졌다. 한국에서 국적을 취득하고 아이를 키우려면 일정 수준의 한국어 능력과 소득 조건을 갖춰야 하는데 양육과 일, 공부를 병행하는 것도 몹시 힘들었다.
아지마 대표는 한 부모 이주 여성들을 위한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이를 키우려면 9시부터 4시까지 아니면 5시까지만 근무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된다. 그러나 이주민 일자리의 경우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는 일이 많다"라며 "이 경우 아이들은 누가 봐준다는 말인가? 이런 한 부모 여성들을 위한 일자리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아지마 대표의 인터뷰는 파키스탄 교민회의 부대표인 라시드 무하마드(남·46)씨의 식당에서 이뤄졌다. 라시드 씨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식당 한편에서 아지마 대표의 아이를 대신 맡아주고 있었다. 그는 한국 여성과 결혼해 안정적으로 정착한 상태다.
라시드 씨는 인터뷰에서 "처음 한국에 왔을 때랑 지금을 비교하면 완전히 다르다"라며 "그때는 이슬람 사원이 없었는데 지금은 동네마다 있다. 이제 기도를 하는 게 아주 편안해졌다"라고 했다.
창원에 거주한 무슬림 신자들한테도 종교 생활은 중요했다. 그들은 작은 건물 일부를 빌려 예배실을 만들었다. 교류 역시 성원을 통해 이뤄졌다. 예배 때 만남을 가지고 인사한 뒤 SNS를 통해 계속 교류하며 이주민끼리 관계를 쌓는 방식이었다.

물론 무슬림 이주민들의 생활에는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존재했다. 라시드 씨 역시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를 떠올리며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대화가 안 된다는 것이다. 처음 한국에 들어와 궁금한 점이 많아도 알기가 힘들었다"라며 "언어 쪽으로 정부에서 뚜렷한 지원을 하지는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비자 제도 역시 주요한 장벽으로 작용했다. 라시드 씨는 "대한민국에 오는 파키스탄 사람들은 대부분 근로자인데 이 경우 학교와 관련해 문제가 된다"라며 "초등학교를 졸업한 자녀들의 비자가 유지되기 힘들다. 사회 프로그램을 듣거나 토픽을 따지 않는 이상 자녀들은 한국 밖에서 거주해야 해고 결국 부모와 자녀들이 떨어지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가 있는 파키스탄 교민회는 1998년에 파키스탄 근로자들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이주민들이 모여 만들어진 교민회는 2014년에 법적으로도 설립됐다. 교민회는 금전적 지원은 물론 변호사 선임 등도 도와준다. 아픈 사람은 병원에 데려가기도 한다.
라시드 씨는 교민회 활동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으로 암에 걸린 교민회 동료를 도와준 일을 꼽았다. 그는 "파키스탄 교민회가 그 사람이 먹고 씻고 하는 것을 도와줬다. 입원도 시켰다"라며 "그 사람은 2년 동안 입원했고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했었다. 그러나 교민들이 돈을 모아 파키스탄으로 그분을 보냈고 다행히 아팠던 분은 이제 아주 건강하고 편안하게 잘 살고 있다"라고 회상했다.
이렇듯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무슬림 이민자라도 삶의 형태는 제각각이었다. 일각에서는 출신 국가에 따라 커뮤니티 활동의 양상이 다르다는 의견도 나온다. 부산이슬람성원의 김형민 대외협력팀장은 본지에 "이슬람 문화권은 상대적으로 커뮤니티 개념이 약하다"라며 "재외국민이나 교포 생각하듯이 같은 국적의 사람끼리 단합하는 문화는 거의 없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창원시에서 나타난 모습과 대치되는 의견이다. 물론 이곳에서도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커뮤니티는 존재했지만 창원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해당 지역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곳은 인도네시아 커뮤니티다. 김해에 있는 공장에 주로 출근하는 인도네시아인들은 메라 푸티(인도네시아국기)라는 이름의 친목회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다양한 지역에서 온 인도네시아인들이 모여 종교 행사뿐만 아니라 사회 활동과 체육 등의 많은 친목 활동을 하고 있다.
부산이슬람성원을 통해 만난 인도네시아 커뮤니티의 하리요노(남·40)씨는 돈을 벌고 경험을 쌓기 위해 한국에 찾아왔다. 하리요노 씨는 인도네시아 커뮤니티의 존재가 종교 활동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하리요노 씨에 따르면 매월 셋째 주 일요일 날 부산과 부산 근처에 있는 예배소에 있는 인도네시아 친구들이 모여 친목을 다진다고 한다.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사는 동안 큰 어려움은 없었다. 기존 원주민들과의 사이도 좋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같은 커뮤니티의 데니 피트리얀도(남·31) 씨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데리 씨는 "한국에서 소수 종교인 이슬람을 신앙으로 하는 외국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있는 인도네시아 근로자들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로 근무 시간에 5번의 예배 약속을 지키기 어렵다는 점을 들었다. 데리 씨는 "한국에 있는 무슬림들이 원활하게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회사나 정부의 허가와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물론 데리 씨도 마냥 부정적인 의견만 표출한 건 아니다. 그는 아직은 사람들이 이슬람을 낯설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할 것이고 이에 이해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공장에서도 이슬람을 이해하고 예배 시간을 허락해 주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는 이미 많은 무슬림 이주민이 존재한다. 이들의 지속적인 한국 정착을 위해서는 결국 정부의 제도적 지원과 시민들의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무슬림들은 사원 건설 반대를 비롯한 각종 차별과 반대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지속적인 '소통'이 필요하다는 태도다. 데리 씨는 "사원 건립 반대 이슈는 주변 주민들과의 소통 부족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주민들에게 사원 건립의 목적을 잘 설명하고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국은 무슬림에게 좋은 나라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사람마다 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국이 무슬림 이주민들의 장기 거주를 원한다면 지역별, 성별에 따른 차이에 집중하고 관련 정책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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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 김민 기자 kbgi001@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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