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의 살다보면2]
도시 살다가 귀촌한 부부의 남편이
한밤중에 아내가 연락 안 된다면서
집에 좀 가 달라고 전화를 해왔다

노후엔 아파트보다 마당 있는 집이 즐겁고 풍요로운 일상을 만들어 준다. /게티이미지뱅크
노후엔 아파트보다 마당 있는 집이 즐겁고 풍요로운 일상을 만들어 준다. /게티이미지뱅크

잠자리에 누웠는데 모르는 번호가 집요하게 울렸다. 늦은 밤이라 망설이다가 받으니 마을 안쪽 골짜기에 사는 분이다.

“이거 참, 마누라가 초저녁부터 전화를 안 받아서요. 그 여자가 지병이 있어서 혼자 두면 위험한 사람이라···.”

부인과는 몇 시간째 연락이 안 되고, 본인은 멀리 나와 있고, 이건 틀림없이 쓰러진 거라며 어쩔 수 없이 마을 일 맡고 있는 나에게 전화한 거다.

그분들은 도시에서 살다가 15년 전 고향으로 귀촌하셨다. 시골 정서와는 달리 조용하고 서로에게 어찌나 정다운지 잉꼬부부로 소문나 있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내 글을 읽어주고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들이다. 그들을 보며 “두 분 참 보기 좋아요. 부러워요” 하면 두 분은 동시에 불경 외우듯 너스레를 섞어 받아치곤 했다.

“사라 바라 사라 바라~” ( 살아봐요~)

문득 노인 돌봄 일을 하던 때가 생각났다. 독거촌 독거노인을 방문해 안부를 묻던 어느 날, 방문 때마다 늘 반갑게 맞이하던 어른이 문을 두드려도 응답이 없고 전화도 불통이었다. 문을 따고 들어가 볼 수 있는 사람은 공인이어야 했기에 급히 동네 이장에게 연락했다. 그가 달려와 문을 열었을 때 노인은 쓰러져 있었고 다행히 119가 와서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 이후로 연락이 끊긴 집은 돌봄인도 대문을 열어 확인할 수 있게 조치가 되었다.

옛 생각이 미치자 이미 사람이 쓰러져 죽기 직전인 상태가 되고 그 불길한 예감이 등줄기를 훑었다. 게다가 시간도 말해주지 않은가. 황급히 옷을 걸치고 나와 시동을 걸었다. 가로등은커녕 깜깜한 시골길을 조심조심 올라가 집 앞에 섰다.

대문은 그분이 알려준 대로 여차저차 열었지만 문제는 그 다음···. 야밤에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리면 잘 있던 사람도 기절초풍해 쓰러질 거다. 고요함 속에서도 어디선가 사각사각 툭툭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야행성 동물들인가···? 멧돼지는 아니겠지?

한참 숨을 고르고 심호흡을 한 후 일단은 동네 어른들이 깨든 말든 큰 소리로 불러보기로 했다. 행여 사고 현장에 내가 일등 목격자가 되어도 그들이 보증을 서 줄 것이다.

“언니~ 언니~”

나는 큰 소리를 질러대며 현관에 불이 켜지길 기다렸다.

이전 산골짝 살 때 큰 마당에 울타리를 치고 돼지 염소 닭 기러기 등 온갖 동물을 키운 적이 있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한놈 한놈 눈길 주며 안부를 묻던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전 산골짝 살 때 큰 마당에 울타리를 치고 돼지 염소 닭 기러기 등 온갖 동물을 키운 적이 있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한놈 한놈 눈길 주며 안부를 묻던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때, 반대쪽 마당에 있는 깜깜한 닭장에서 시커먼 곰이 어슬렁거리고 나왔다. 순간 내 심장이 가슴을 뚫고 나올 뻔했다. 그것은 곰, 아니 언니였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우리는 동시에 소리를 질렀고, 공포는 금세 안도와 웃음으로 바뀌었다.

“언니~ 아저씨가 난리 났어요~ 빨리 전화부터 해요.”

내가 잔소리를 퍼붓자 민망한 언니는 웃으며 말했다.

“마누라 걱정은 개뿔~부인이 먼저 가면 자기 보호해 줄 이 없어서 그러는 거지. 이 시간에 전화는 왜 하고 난리래. 이제는 언제 가도 괜찮은 나이, 밤에 쓰러져 아침에 죽어 발견되는 것도 어찌 생각하면 복 받은 죽음인 거지.”

“그런데 컴컴한 닭장에서 뭐 하신 거예요?”

“뭐하긴… 낮엔 너무 뜨겁잖아. 해거름에 나와 꽃이랑 수다 떨다가, 고양이랑 한참을 떠들다가, 개 붙잡고, 닭 붙잡고, 한 놈 한 놈 안부 묻고 그러다 보니 대화가 길어진 거지. 가끔은 대꾸 안 하는 야~들이 사람보다 훨씬 좋아. 세상에나 시간이 언제 이리 갔을꼬. 호호”

언니는 잠옷 차림으로 달려온 나를 보며 미안함에 계속 웃는다. 늘 함께해서 누리는 평안함도 있지만 가끔은 혼자라는 자유가 온전히 나를 숨 쉬게 할 때도 있다. 누가 말했다. 일생은 죽은 자의 이야기이고 인생은 산자의 시간이라고···.

재밌을 일 없는 무료한 인생에서 우리는 한밤의 소동이란 시트콤의 주인공이 되어 크게 웃었다. 다음날 퇴근하니 서울에서나 맛볼 최고급 복숭아 박스가 현관 앞에 있다. 그들이 보낸 선물이다. 이런저런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봐 주는, 웃음과 정이 오가는 우리 동네가 나는 참 좋다. 

여성경제신문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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