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의 살다보면2]
출가한 딸이 명절만 되면
두둑한 밥값을 준비했다며
엄마가 해주는 밥을 찾는다

대학을 갓 졸업한 지인의 딸이 취업하더니 청년주택도 당첨되었다. 엄마 눈엔 아직 어린데, 딸이 내민 청사진이 너무 기특하여 힘을 보태기로 했단다. 딸의 이삿짐을 실어다 주고 돌아온 단아하던 지인의 얼굴이 어둡고 홀쭉해졌다. 부모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조잘대던 딸의 수다가 너무 밉고 섭섭했다며 그날의 상황을 전하는데 미리 겪은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친구랑 밤거리를 돌아다녀도 보고, 기타도 배우고, 지겨운 집밥 대신 맛집도 찾아다니고 이것저것··· 할 것이 태산이라며 흥분해 떠들었다. 짐을 정리해 주고 돌아오는데 딸이 배웅 나와 두 손을 흔들었다.
순간 울컥하고 눈물이 나왔다. 딸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휘저었지만 갓 날기 시작해 온 세상이 신기한 천방지축 아기 새가 포로롱 날갯짓하듯 파닥거리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여리고 작아 보이던지 오는 내내 차 안에서 눈물을 훔쳤다.
텅 빈 방에 혼자라는 생각이 들면 무섭고 두려울 텐데 어쩌나··· 모든 것이 불안한 아빠는 최첨단 자동 시스템 방화문이 못 미더워 아날로그식 자물쇠를 옆에 또 장착해 붙였다.
시간이 지나 조금은 덤덤해진 지인의 푸념 속엔 은근히 딸의 자랑이 이어진다. 착하고 예쁘기만 한 딸의 추억으로 그리움을 달랜다. 그때 나의 한마디에 모두 빵 터진다.
“원래가요~~ 서방이고 자식이고 집구석에서 같이 부딪치고 살 때는 하는 짓마다 다 꼴 보기 싫고~ 내 눈에서 멀어지면 예쁜 짓만 생각나는 거여.”
아무렴, 성인이 된 가족은 헤어졌다가 만나야 더 정이 든다.

“엄마, 가장 먹고 싶은 건 김치찌개, 아니, 김치볶음밥, 아니, 다 필요 없고 엄마가 해주는 밥. 엄마 밥, 알지? 밥값도 두둑이 준비했으니 기대해.”
지인은 추석에 일찍 내려갈 거라는 딸의 전화를 받고 벌써 마음이 뭉클하고 설렌다. 제 생활하기도 빠듯한 월급을 떼어 봉투도 준비했다니··· 다 컸구나 싶다.
방향을 돌려 내 아이들 이야기도 꺼내 본다. 어릴 적 아이들이 가장 무서웠던 것은 부모의 전쟁이라고 했다.
조금 커서는 그걸로 대들었다. 싸울 거면 왜 결혼했고 왜 붙어 사냐고, 우리 사는 꼴이 보기 싫어서 집 떠나면 자주 안 올 거라고 큰소리쳤다. 사실 우리는 그냥 평상시의 평범한 대화였다. 그들에게 해명하기엔 외국어보다 더 어려워 소통이 안 되었다.
그런데 일찍이 집을 떠나 사회 경험을 하더니 ‘삶은 계란’이란 걸 알아냈다. 겉과 속이 다른 모순의 삶을 말이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투덕거림을 능청스럽게 웃어넘겼다. 어느 강의에서 들은 것처럼 짤막한 편지까지 첨부한 ‘전투 격려금’. 그것을 방문할 때마다 건네주며 싸우느라 욕봤으니 몸보신하시고 어쨌든 싸워서 이기라며 엄지척했다. 아이들이 떠난 후 우리는 봉투를 열어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세상이 전쟁터란 것을, 그나마 부부의 전쟁은 풍선껌같이 시시하고 그것 또한 관심과 사랑이며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부모 품 안에 살면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철학 아닌가. 요즘은 사랑밖에 모른다던 그들도 부모가 되어 자주 투덕거린다. 그래도 그들의 전쟁은 격이 다르다. 멋있게 싸우고 멋있게 휴전한다. 가끔 나한테 들키면 큰소리쳤던 게 민망한지 농담을 던지며 웃는 꼴이 밉살맞다.
"전쟁은 우리 부모님이 가장 평화롭게 싸웠지. 암만."
지인의 딸 자랑에 나의 옛날이야기를 꺼내다 보니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커 준 자식들이 너무 고맙다. 나도 얼른 격려 봉투를 준비해야겠다.
"엄마 얼큰한 소고기뭇국 알지? 이번에도 그거 끓여놔."
내 딸은 얼큰한 소고깃국이 시댁을 다녀온 후 친정에서 먹는 속풀이로는 최고란다. 철없는 말에 쯧쯧~ 혀를 차면서도 종이를 꺼내 소고깃국 재료를 적고 명절 장 볼 것을 간추려 적어본다.
여성경제신문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