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정신 건강 핵심 요소 '일'
실버타운서 사회 활동 지속돼야
스마트팜·공동 작업 도입 제안

# 은퇴 후 실버타운에 입주한 75세 A씨. 경제적 여유도 있고 몸과 마음도 건강했지만 하루하루는 기대만큼 채워지지 않았다. 꿈꾸던 시설에 들어왔는데도 별다른 일이 없으니 활력이 사라졌다. 자신의 역할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자 일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실버타운에서 노인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니어 주거시설이 건강관리와 케어를 받는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활동을 이어가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의견이다.
5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노인에게 ‘일’은 단순한 소득원이 아니라 정신적 건강을 지키는 핵심 요소로 꼽힌다. 사회적 활동을 이어가며 스스로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경험이 삶의 활력을 높이고 고립·우울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실버타운에서도 일자리나 공동 작업 등 참여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내 일부 실버타운은 노인 일자리 연계를 시도하고 있다. 서울시니어스타워 고창 웰파크시티는 고창군 및 공공기관과 협력해 입주민의 경력과 역량을 살린 일자리를 제공한다. 상담 경력자는 사무실 상담 인력으로, 언어 능력을 가진 입주민은 호텔 프런트, 바리스타 자격증 소지자는 라운지 카페에서 근무하는 식이다. 지자체와 시니어클럽이 함께 참여하는 구조로 공익형을 비롯해 경력을 활용한 맞춤형 일자리까지 확대하고 있다.
이처럼 공공 협력 모델이 이미 일부 시도되고 있는 가운데 민간 운영자들은 실버타운이 자체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활동 기회에도 주목하고 있다. 김덕원 에스엘플랫폼 상무이사(시니어스마트하우징 협의회장)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노인에게 일은 단순한 소득이 아니라 사회활동의 연장선”이라며 “은퇴 이후 상실감을 줄이고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LH 공공임대 현장에서 어르신들이 인형 눈 붙이기, 봉투 접기 같은 단순 작업을 음악을 들으며 즐겁게 하시는 모습을 봤다. 이런 활동이 인지 저하 예방과 치매 발병 지연에도 효과가 있다”고 했다.

김 상무는 실버타운에 스마트팜·공동 작업장을 도입하는 아이디어도 제안했다. 그는 “앱으로 물을 주고 입주민은 수확·포장만 하는 구조라면 큰 노동 없이도 참여할 수 있다. 시설 측에서 매입해 식재료로 쓰면 소득도 생긴다”며 “특히 지방에서는 넓은 부지를 활용해 대형 스마트팜을 조성할 수 있고 지자체가 추진하기 좋은 사업”이라고 말했다. 이어 “큰 수익을 바라는 게 아니라 활동하면서 건강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생산형 모델 외에도 생활형 일자리를 연계하는 방안도 제시된다. 도서관·사우나 등 시설 관리나 보안 같은 영역을 입주민 일자리로 연결하는 것이다. 김덕원 상무는 “이미 아파트 단지에서는 도서관 사서, 강좌 강사, 카페 바리스타를 입주민이 맡는 경우가 있다”며 “입주민 입장에서는 집과 가까워 만족도가 높고 운영상 부담도 크지 않다”고 했다. 다만 “실버타운은 연령대가 높아 고정 근무는 어려울 수 있다. 단순 작업 형태가 적합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노인에게 일은 정신적·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며 “일을 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교류하기 때문에 고립과 우울을 막는 효과가 크다”고 했다. 이어 “국내외 여러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며 “다만 중요한 것은 풀타임 근무가 아니라 본인이 원하고 신체적 조건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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