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공급과잉에 직격탄 맞아
고용·지역경제 충격 최소화 과제

울산 남구 석유화학단지 전경 /연합뉴스
울산 남구 석유화학단지 전경 /연합뉴스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사상 최악의 불황 터널에 갇힌 가운데, 정부와 업계가 핵심 설비인 나프타분해시설(NCC)을 최대 25%까지 감축하는 고강도 자율 구조조정에 나선다. 중국과 글로벌 공급 과잉 문제를 정면 돌파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지만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한때 대기업 집단의 ‘효자 사업’이던 석유화학이 이제는 대규모 적자에 허덕이며수년째 수익성 악화에 시달려왔다.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을 생산하는 NCC 공장 가동률은 손익분기점을 밑돌고, 재고는 쌓여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2022년 3분기부터 11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영업손실만 해도 롯데케미칼 3771억원, HD현대케미칼 2886억원, SK지오센트릭 1708억원, 여천NCC 1567억원, 대한유화 145억원에 달한다.

가장 큰 압박 요인은 중국과 중동발 공급과잉이다. 중국은 저가 공세로, 중동은 원가 경쟁력으로 무장하며 글로벌 시장을 잠식했다. 글로벌 수요는 정체된 반면 공급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국내 석화기업들은 생존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이에 정부는 연말까지 업계가 자율적으로 최대 370만t 규모의 NCC 설비를 줄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업들이 스스로 비효율 설비를 통폐합하거나 가동을 중단하는 방식이다. 

그동안 NCC 중심의 높은 나프타 의존도는 원자재인 원유 가격 변동성에 매우 취약한 구조를 만들었다. 북미와 중동 업체들은 비교적 저가인 셰일가스 등을 기반으로 가격 경쟁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정부는 이처럼 과감한 사업 재편에 나서는 기업들을 위해 '당근'을 내걸었다. 설비 감축 계획을 이행하는 기업에 한해 저금리 자금 지원, 투자 세액 공제 확대 등 금융·세제 지원을 집중하기로 했다.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리는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석유화학 업계는 그냥 놔두면 모두가 죽어버리니까 어쩔 수 없이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나라 기업이 뭘 잘못해서 생기는 일이 아니고 중국이 무차별적으로 집중, 과잉투자를 한 불합리한 횡포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데 중국탓 해봐야 아무 소용없고 우리가 살 길을 찾아야한다. 다른 길은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 석유화학 기업 사업재편 자율협약 주요 내용 /연합뉴스
[그래픽] 석유화학 기업 사업재편 자율협약 주요 내용 /연합뉴스

다만 대규모 설비 감축은 필연적으로 고용 문제와 지역 경제 충격을 동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울산, 여수, 대산 등 주요 석유화학 단지에 위치한 NCC는 해당 지역 경제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다. 공장 가동 중단이나 축소는 곧바로 관련 근로자와 협력업체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현재 국내 주요 석유화학 산업단지 근로자는 약 5만3400명이다. 업계가 검토 중인 최대 25% 감산이 현실화할 경우, 1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에선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직자들을 위한 재취업 교육, 전직 지원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지역 경제의 연착륙을 돕기 위한 대체 산업 육성 등 정교한 후속 조치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NCC 감축의 대안으로는 이차전지 소재와 친환경 소재 등 고부가가치 제품 증산, 에탄과 액화석유가스(LPG)를 비롯한 저가 원료 활용 확대 등이 거론된다.

정부와 업계가 공급 과잉 해소라는 큰 그림에 합의한 만큼, 이제는 구조조정의 '진통' 최소화가 과제로 남은 형국이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화학 중심으로 체질을 개선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sewoen@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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