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업종 한계 직면 구조 전환
자사주 소각보다 '존립' 택한 경영진
뷰티·부동산·블록체인 1.5조 투자

태광산업은 향후 1조 5000억 원을 투입하는 ‘투자 로드맵’을 수립하고 이 가운데 1조 원 이상을 올해 안에 집행할 방침이다. /태광산업
태광산업은 향후 1조 5000억 원을 투입하는 ‘투자 로드맵’을 수립하고 이 가운데 1조 원 이상을 올해 안에 집행할 방침이다. /태광산업

태광산업이 대대적인 사업 재편과 신사업 진출 계획을 공식화했다. 주력인 석유화학·섬유 산업의 장기 침체를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화장품·에너지·부동산개발 등 업종으로의 급격한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여기에 조 단위 외부자금 투입과 정관 개정을 통한 사업목적 확장까지 병행되면서, 사실상 그룹 차원의 ‘탈석유 선언’으로 해석된다.

1일 재계에 따르면 태광산업은 향후 1조 5000억 원을 투입하는 ‘투자 로드맵’을 수립하고 이 가운데 1조 원 이상을 올해 안에 집행할 방침이다. 하지만 자체 보유 현금으로는 이를 충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5월 말 기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1조 9000억 원이지만 5600억 원은 예비운영자금으로 묶여 있고 석유화학 공장 정리 및 고정비 부담 등으로 실제 가용액은 1조 원에 못 미친다. 이에 따라 태광은 3186억 원 규모의 교환사채(EB) 발행을 추진하며 외부 자금 조달에 본격 착수했다.

태광 관계자는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올인 수준의 투자가 불가피하다"며 "회사의 존립과 직원 고용안정을 위해서라도 외부 조달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이재명 정부 기조에 발맞춰 자사주 소각 등의 주주환원 정책도 검토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버틸 수 있는 산업구조’가 우선이라는 내부 기류가 강하다.

주목할 부분은 이번 투자 대상에 기존 석유화학·섬유 분야가 아닌 화장품·에너지·부동산개발·호텔 리조트 운영 등 신사업군이 전면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태광산업은 임시주총을 열어 이들 산업을 신규 사업목적에 포함시킬 예정이며 블록체인 기반 금융사업과 PFV(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 투자 등도 포함된다. 포트폴리오 다각화 수준이 아니라 사업 정체성 자체를 바꾸는 ‘대전환’에 가깝다.

태광산업의 이 같은 행보는 단지 업황 부진을 넘은 ‘생존 본능’의 반영으로 보인다. 3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 중이며, 일부 생산시설은 이미 가동을 멈췄다. 나일론·스판덱스 등 기존 섬유 공장도 폐쇄가 예고되어 있는 가운데 매출 없는 고정비만 발생하는 구조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얘기다. 재계 관계자는 "태광의 사업 전환은 구조조정의 통증을 수반한 생존 전략이자 자본시장과 노동시장에 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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