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확산된 있어빌리티 현상
노벨상 훈풍에 한강 게시물 급증했지만
중고시장에 되팔린 미완의 독서 흔적들
내면 깊이보다 보여주기에 치중해 '씁쓸'

[청년이 보는 세상] 이번 편은 국립강릉원주대 디지털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모바일뉴스실습’ 전공수업 수강생들이 작성한 기사를 연재합니다. 여성경제신문은 이 수업을 지도하는 이 학부 허만섭 교수와 수강생들의 동의 하에 기사를 [청세]에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책은 있어빌리티의 소품으로 자주 등장한다. 사진은 SNS에 올라온 한강 책 게시물(왼쪽)과 한강 책을 중고로 내놓은 당근마켓 게시물. /인스타그램, 당근마켓 갈무리
책은 있어빌리티의 소품으로 자주 등장한다. 사진은 SNS에 올라온 한강 책 게시물(왼쪽)과 한강 책을 중고로 내놓은 당근마켓 게시물. /인스타그램, 당근마켓 갈무리

'있어빌리티'라는 신조어는 '있어 보인다'라는 구어체 우리말과 ability라는 영어 단어를 합쳐 있어 보이는 능력·취미를 지칭한다. 있어빌리티는 많은 사람 앞에 자기 능력·취미를 드러내는 문화적 맥락 속에서 존재한다. 있어빌리티 범주에 들어가는 취미는 고상함, 교양, 멋을 지녀야 한다.

스토리·피드에 책 '유행'

책은 있어빌리티의 소품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학생 김모 씨(21)는 "어느 순간부터 다들 인스타그램 스토리나 카톡 배경 사진에 책 페이지를 찍어 올린다. 마음에 드는 구절을 상태 메시지에 올리기도 한다. 피드에 일상 사진과 함께 책을 게시하며 태그도 한다"고 말했다.

SNS에 있어빌리티를 드러낼 때는 단순히 책의 표지만 보여서는 안 된다. 이왕이면 책의 중후반 페이지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을 촬영해서 게시해야 한다. 유명 작가의 도서라면 표지와 함께 유명한 문구를 삽입해 업로드한다. 

있어빌리티를 정말 효과적으로 드러내려면 조금 덜 유명한 작가의 책을 사용하는 게 좋다. 그렇게 하면 지식인다운 면모를 갖춘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종류도 중요한데 주로 소설, 수필, 자기개발서를 이용한다. 있어빌리티에 필요한 책은 주로 도서관이나 북 카페에서 빌린다.

한 SNS 이용자는 "책을 거의 안 읽는 편이다.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이 책 사진 올려놓은 걸 보면서 궁금해졌다. 그렇게 해서 나도 새로운 관심사가 확장되고 자극도 된다"고 했다.

이렇게 책을 SNS에 소개하는 게시물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자기 개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보다 거부감이 덜 하고 독서에 대한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있어빌리티와 책의 문제와 관련해 최근 사건이 발생했다.

한강 책 게시물 급증

2024년 10월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은 연일 대서특필되었다. 사람들은 한강 작가의 책을 앞다투어 주문했다. 서점들과 해당 출판사는 호황을 누렸다. 평소의 10배가 넘는 주문량으로 인쇄소는 쉴 틈 없이 돌아갔다. 

이후 SNS에선 한강 작가의 도서 사진 게시물이 급증했다. 한 인스타그램 이용자는 한강 작가의 책 7권이 책장에 꽂힌 사진을 올린 뒤 "언제 다 읽을지는 몰라도 기분 좋다"는 글을 썼다. 다른 이용자는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한강 작가의 책 사진과 함께 "노벨상이 나온 내 나라의 작가 작품을 그냥 칠 수는 없지"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독서를 취미로 여긴다면 한강의 책을 읽고 관련된 에세이를 써서 올릴 것이다. 독서가 패션인 듯 화제의 도서, 신간 도서, 라이징 작가의 책 사진을 빠뜨리지 않고 게시하는 이들 중 일부는 있어빌리티를 지향한다. 완독에는 별 관심이 없다. 언제 다 읽을지도 모르는 책들을 한꺼번에 확보한다. 

수개월 후 당근마켓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후 수개월이 지났다.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 검색창에 "한강 작가",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를 검색하면 한강의 책을 중고로 내놓은 글이 수두룩하게 올라온다. 사진 속 책 상태는 새것과 다름없다. 판매자들도 "구매해서 한번 읽었다", "깨끗하게 봤어요!", "책 사자마자 3시간 만에 다 읽었다"라고 양호한 상태를 설명한다. 이에 대해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 백모 씨는 '나중에 한강 작가의 책들 중고 매물로 얼마나 많이 나올까'라는 글에서 이런 사태를 예언했다. 백씨는 "지금 책 팔리는 거 생각하면 1년 뒤에 1000원, 농담이 아니라 몇 권을 묶어서 1000원에 팔아도 빨리 안 팔릴지도 모르겠다. 잠깐 베스트셀러 갔던 자기계발서, 경제 서적도 알라딘 매물 폭발인데 하물며 한강 작가의 책들은 그보다 더할 것"이라고 했다.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도서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나서 얼마 안 가 중고 매물로 되돌아온 사례는 반복되고 있다. 한 네이버 블로거는 '한강, 냄비근성 그리고 글쓰기 모임'이라는 글에서 "작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자 많은 이가 그의 책을 집어 들었다. 갑자기 불어닥친 독서 열풍은 한편으로 열정적이지만 생각해 볼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들은 진정 책을 사랑했던 것일까, 아니면 이 순간의 흐름에 휩쓸린 것일까"라며 비판적 시각을 보였다. 

내면의 깊이보다 보여주기 치중

우리나라의 성인 독서량은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13년엔 성인 10명 중 7명이 1년에 한 권 이상 종이책을 읽었다. 2021년 이 숫자는 4명으로 확 줄었다. 그런데도 SNS에선 책 게시물이 점점 넘쳐난다. 어떻게 된 일인가? 많은 책이 있어빌리티의 소품으로 활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내면의 깊이보다 보여주기에 치중하는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여성경제신문 청년이 보는 세상 youngworld@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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