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당마을 입주 후 아내 건강 좋아져
실버타운 삶은 마음먹기 나름
새 삶을 살고 있는 아내
필자는 전국의 실버타운을 조사해 <실버타운 사용 설명서> 책에서 34곳을 분석했지만 숫자로 정리된 정보만으로는 실버타운의 진짜 모습을 다 담을 수 없었다. 실버타운의 가치는 결국 '사람'에서 나온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입주민들의 삶 운영자의 철학 그리고 실버타운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모여야 비로소 한 곳의 실버타운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 탐방기는 직접 현장을 방문해 운영 책임자나 입주민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실버타운의 실상을 전하고자 한다. 책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과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실버타운의 면면을 풀어낼 계획이다.

전역 후 처음 알게 된 ‘살림의 무게’
장양희 장로는 군인 출신이다. 준장까지 진급해 76예비사단장을 끝으로 1994년 전역했다. 군 생활 동안 부부는 대부분 떨어져 지냈다. 그는 부대가 위치한 곳에서 아내는 교사로서 근무지 근처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군에 있을 땐 몰랐습니다. 집사람이 살림하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전역 후 집에 머물며 그는 처음으로 아내의 하루를 가까이서 보았다. 하루 세 끼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 빨래까지 반복되는 가사 노동. “아침 먹고 조금 있으면 점심, 또 저녁··· 먹는 사람은 모르지만 준비하는 사람은 정말 힘들더군요.” 게다가 아내는 체력이 약해 살림이 더욱 버거웠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아내를 위한 결심
아내가 70세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히 살림에 시달리는 모습을 본 그는 결심했다. 처음엔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방안을 생각했지만 이는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었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실버타운’이라는 선택지를 알게 됐다.
“우연히 다니던 교회 장로 모임에서 유당마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유당마을 양주현 이사장님이 같은 교회 장로셨죠.” 부부는 유당마을을 견학했고 그 자리에서 바로 마음을 정했다. “환경도 좋고, 신축 건물이라 깨끗했어요. 무엇보다 집사람이 유당마을 안에 교회가 있는 것을 보고 ‘여기 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 한마디에 다른 고민은 없었습니다.”

마음이 넉넉하면 실버타운은 가족이 된다
유당마을에서 11년째 살아가는 장양희 장로 부부에게 “지겹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은 낯설다. “저도 놀랍니다. 이렇게 오래 살았는데도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장 장로는 그 이유를 ‘마음가짐’에서 찾는다.
90대 어르신이 느릿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거나 집을 못 찾아 방향을 헷갈려 해도 불편함보다 도움의 기회로 본다. “그런 분들 안내해 드리고 나면 오늘도 누군가를 도왔다는 기쁨이 생기죠. 이렇게 마음을 넉넉히 하면 작은 불편은 사라지고 오히려 관계가 깊어집니다.”
실버타운의 이웃은 그에게 ‘가족’이다. 부부나 형제도 다툴 때가 있지만 결국 한 식구처럼 서로 의지하듯 이곳 사람들도 한 지붕 아래 같은 밥을 먹으며 살아간다. 장 장로는 말한다. “마음이 궁하면 이웃의 불편함만 보이지만 마음이 넉넉하면 이웃은 곧 가족이 됩니다.”
하루 세 끼 밥이 보약
유당마을은 수도권 실버타운 중 드물게 월 90식 의무식을 운영한다. 하루 세 끼를 전부 식당에서 해결하는 방식이다. “솔직히 매번 식당에서 식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메뉴가 다양하지만 한 달 단위로 보면 비슷한 반찬이 반복되죠. 그렇다고 불평할 일은 아니에요. 밥이 보약이라고 하잖아요. 제때 막 지어낸 밥을 하루 세 번 거르지 않고 먹는 것만큼 건강에 좋은 건 없습니다.”
특히 그는 싱글 입주민들에게 이 제도가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혼자되신 분들은 의무식 90식이 아니면 끼니를 건너뛰기 쉽죠. 그런데 여기서는 밥 먹으러 가면 반가운 이웃이 기다리고 있고 식사 후에는 커피 한 잔, 산책, 취미활동이 이어집니다. 식사 자체가 일상이자 교류의 중심이에요.”
장양희 장로 부부는 집안 내 주방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우린 집에서 절대 밥을 안 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실버타운에 입주한 것이니까요. 입맛이 없을 땐 외식을 합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차 끌고 시내로 나가서 아내와 함께 맛난 음식도 먹고 데이트 삼아 바람도 쐬고요.”

유당마을에서 건강과 자존감을 되찾은 이야기
2014년 장양희 장로 부부가 유당마을에 입주할 때의 나이는 각각 73세와 70세. 장 장로는 그때의 결정을 “우리 부부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솔직히 처음 유당마을에 입주했을 때 아내가 오래 못 버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만큼 건강이 약했거든요. 4~5년 안에 먼저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고 마음속으로 각오했었습니다.” 하지만 1~2년이 지나자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아내의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장 장로는 그 이유를 단순히 ‘살림 부담이 줄어서’라고만 보지 않았다.
마음을 살리는 환경, 사랑받는 삶
그는 아내의 변화 핵심이 심리적인 회복에 있었다고 했다. “아내는 원래 내성적이고 몸도 약해 교회에서도 앞장서 봉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약하다, 쓸모없다’는 생각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유당마을에 와보니 상황이 달라졌다. 아내보다 몸과 마음이 더 약한 이웃들이 많았고 조금만 마음을 쓰면 도와줄 기회가 넘쳤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 순간 그녀의 표정과 걸음걸이가 달라졌다.
입주 몇 달 만에 아내는 과자나 간식을 들고 이웃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혼자 사는 고령 시니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필요한 물건을 챙겨주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힘들기는커녕 오히려 신나게 움직였다.
옆에서 듣던 이영자 권사도 미소를 지었다. “입주 전에는 제가 이렇게 타인으로부터 사랑받을 줄 몰랐어요. 지금은 다른 입주민 언니들이 ‘고맙다’고, ‘당신 덕분에 좋다’고 하니 마구 힘이 나요. 이렇게 자신감이 생기니 식사량이 늘고 먹는 것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게 되면서 제 건강도 많이 좋아졌어요.”
아내에게 향했던 예기치 않은 관심
유당마을에 살다 보면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생긴다. 이영자 권사는 입주 초기의 일화를 꺼냈다. “70살에 들어왔으니 그땐 젊은 편이었죠. 러닝머신에서 운동하고 있는데 한 남성 어르신이 다가와 ‘이쁘다’며 사귀자고 하더군요. 제가 부부로 살고 있는 걸 모르셨던 거죠. 참 우습고도 재미있었어요.”
그녀는 웃으며 덧붙였다. “실버타운 입주 전에는 그런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입주하자마자 대시를 받으니 기분이 나쁘진 않더라고요. 물론 ‘남편이 있습니다’라고 정중히 말씀드렸죠. 제 남편 보세요. 이렇게 멋진데 제가 어딜 가겠어요.”

부부가 한 침대에서 자야 하는 이유
인터뷰는 다소 엉뚱한 주제로 이어졌다. 기자가 “부부가 각방을 쓰는 경우가 많다는데 두 분은 어떠냐”고 묻자, 장 장로는 “아내가 각방을 결사 반대한다”고 답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첫째,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다. “심근경색처럼 갑자기 생기는 위급 상황은 옆에 함께 있을 때는 즉시 대처할 수 있어요. 각방 쓰면 그 순간을 놓칠 수 있습니다.”
이영자 권사도 거들었다. “부부는 말다툼을 해도 결국 서로의 생명을 지켜줄 수 있는 존재잖아요. 그걸 각방으로 서로의 생명줄을 놓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둘째, 마음의 거리 때문이다. “각방을 쓰면 자연스럽게 마음도 멀어집니다. 불편하더라도 부부는 같은 침대에서 자야 해요.”

늦기 전에 선택하는 용기, 함께 살아내는 힘
많은 사람들이 실버타운을 단순히 ‘편안한 노후 주거지’로 생각하지만 장양희 장로 부부의 이야기는 그 이상의 의미를 전해준다. 70대 초반이라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입주해 건강이 약하던 아내는 몸과 마음을 회복했고 부부는 서로의 곁에서 매일을 채워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은 단순하다. “마음가짐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부부는 나이가 들수록 더 겸손해지는 사람들을 보았고 작은 도움에도 크게 기뻐하는 이웃을 만났다. 매일 세 번의 식사와 함께 웃음을 나누고 필요할 땐 서로 손을 내미는 삶을 이어왔다. 장 장로의 말처럼 “실버타운은 같은 공간에서 살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천국이 될 수도 감옥이 될 수도 있다.”
혹시 지금 마음속에서 노후의 거처를 두고 망설이고 있다면 이 부부의 이야기를 기억하길 바란다. 삶의 질은 단순히 현재 몇 살이라는 나이가 아니라 선택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선택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라야 할지도 모른다.
여성경제신문 이한세 객원기자·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외래교수 justin.lee@spireresear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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