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37년 역사의 실버타운
부속 양한방의원과 케어홈 갖춰
고급 실버타운 중 가성비 최고
필자는 전국의 실버타운을 조사해 <실버타운 사용 설명서> 책에서 34곳을 분석했지만, 숫자로 정리된 정보만으로는 실버타운의 진짜 모습을 다 담을 수 없었다. 실버타운의 가치는 결국 '사람'에서 나온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입주민들의 삶 운영자의 철학 그리고 실버타운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모여야 비로소 한 곳의 실버타운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 탐방기는 직접 현장을 방문해 운영 책임자나 입주민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실버타운의 실상을 전하고자 한다. 책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과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실버타운의 면면을 풀어낼 계획이다.

최초에서 최고로, 유당마을 37년의 여정
수원 광교산 자락에 위치한 푸른 산과 숲을 배경 삼은 유당마을은 우리나라 실버타운의 원조로 불리는 곳이다. 1988년, 국내에서는 아직 ‘유료 양로시설’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에 한 기업인의 결단이 새로운 노인주거복지에 지평을 열었다. 그리고 37년이 흐른 지금의 유당마을은 여전히 시대를 이끌며 ‘최초에서 최고로’의 길을 걷고 있다.
“풍요로운 집”이라는 이름의 시작
유당마을의 설립자인 고(故) 양창갑 회장은 서흥그룹 창업자이자 ‘서흥캅셀’의 회장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1980년대 초 뇌졸중으로 병상에 누워있던 그는 병원에서 노인들의 고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우리 사회에 중산층을 위한 노인주거복지시설이 필요하다는 절박함을 느꼈다.
이후 일본의 유료 양로시설을 직접 둘러보고는 결심을 굳혔다. 그는 1985년 사회복지법인 ‘재성’을 설립하고 수원 조원동 일대의 2만5천 평의 부지를 법인에 기증한 뒤 약 30억 원에 달하는 사재를 출연하여 1988년 유당마을을 개원했다. 유당마을의 이름 ‘유당(裕堂)’은 그의 아호(雅號)에서 따온 것으로 '풍요로운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2대 양주현 이사장, 유당마을을 바꾸다
1994년, 양창갑 회장의 뒤를 이어 장남 양주현 이사장이 2대 이사장직을 맡았다. 당시 입주자는 50여 명이며 임직원은 28명 남짓이었다. 운영은 쉽지 않았다. 정부가 고시한 생활비보다 더 받을 수 없었고 적자 운영이 계속됐다.
“실버타운이 제대로 운영되려면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1994년 이후 전면적인 혁신을 시작했습니다.” 양 이사장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하였다.
1995년 단지 내에 부속의원을 설치했고 1996년에는 요양시설 ‘유당너싱홈’을 개원했다. 본관 건물은 증축을 통해 입소 정원을 120명까지 확대했다. 이후 방문요양과 방문목욕이 가능한 ‘유당재가복지센터’(2009년), 159세대 규모의 신관(2014년), 양방과 한방 진료를 함께 받을 수 있는 양한방부속의원(2015년), 그리고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입소자를 위한 케어홈까지 구축하며 복합형 실버타운의 기반을 갖추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양주현 이사장은 무보수로 봉사하며 경영자이자 설계자로서 유당마을을 성장시켜왔다.

오래되었기에 가능한 가성비
유당마을의 입주보증금과 월 생활비는 국내 고급 실버타운 중에서 저렴한 편이다. 이 점이 유당마을의 가장 큰 경쟁력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금 실버타운을 새로 짓는다면 저희 같은 입주보증금 가격으로는 운영이 불가능합니다. 땅값, 건축비, 인건비가 크게 올랐거든요. 저희는 1980년대에 저렴한 부지에 건축한 덕분에 초기 보증금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겁니다.”
기존 입주자에게 보증금을 거의 인상하지 않는 원칙도 지켜오고 있다. 신규 입주자는 시세를 반영한 보증금을 내지만 기존 입주자는 가족처럼 함께 살아온 정을 헤아려 인상을 최소화하고 있다. 퇴거 시 보증금 반환도 15일 내에 이루어져 입주보증금 반환에 대한 신뢰를 더하고 있다.


스마트 실버타운을 향한 경영철학
양 이사장은 단순히 고 양창갑 1대 이사장의 유산을 물려받은 운영자가 아니다. 그는 자동차 부품 회사 S&S Inc를 경영하며 연매출 1,800억 원 규모의 기업을 이끄는 전문 경영인이다. 양 이사장은 이 경험을 유당마을 운영에 접목해 “스마트 실버타운”을 추구하고 있다.
“저는 유당마을이 대한민국 최초의 실버타운이라는 타이틀보다 최고의 품격을 갖춘 실버타운이 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습니다. 진정한 품격은 화려한 시설이나 겉치레가 아니라 입주민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를 진정성 있게 제공하는 것에서 나옵니다.”
그는 스마트 경영의 핵심으로 ‘10대 실천 항목’을 꼽는다. 목표관리, 스피드, 신상필벌, 현장중심, 비전, 시스템, 소통, 안전, 감동, 시정조치다. 매달 직원회의에서는 인공지능이나 노인친화기술 등 새로운 주제를 제시하며 전 직원이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방안을 공유한다.
“직원들이 단순히 지시를 따르는 게 아니라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문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품격을 갖춘 실버타운을 운영하는 스마트 경영의 시작입니다.”
품격 있는 돌봄, 그리고 이웃 공동체
유당마을은 입주자의 건강 상태에 따라 A타입(자립형), B타입(경도 돌봄형), 케어홈(24시간 간병형)으로 구분된 단계별 돌봄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모든 유형이 단지 내에 함께 있어 입주자는 다른 시설로 이전하지 않고도 노년의 변화에 맞춰 자연스럽게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양주현 이사장은 “처음에는 건강하게 입주하신 분들도 세월이 지나면 돌봄이 필요해지기 마련”이라며, “그럴 경우에는 B타입으로 돌봄을 확대하거나 상태가 악화되면 케어홈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케어홈으로 옮겨도 같은 단지 내에 있어 자주 만나고 정서적 연결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 또한 유당마을의 강점이다.
식사 서비스도 이 돌봄 철학과 맞닿아 있다. 조리와 식재료 관리는 위탁을 통해 진행되지만 배식과 서빙은 유당마을 직원이 직접 맡는다. 전 좌석은 지정제로 운영되며 직원들은 어르신들의 식습관과 건강 상태를 세심하게 파악해 응대한다. 양 이사장은 “서빙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돌봄의 연장”이라며, “직원들이 ‘맛있게 드세요’라고 인사하며 식사를 자리까지 직접 가져다드리는 것 자체가 하나의 돌봄이자 관계 형성”이라고 말한다.

첨단 기술 도입에도 유당마을은 앞서 있다. 식당에는 서빙 로봇이 운영되고 있으며 치매 예방 교육 로봇과 웨어러블 건강 관리 기기 등도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양 이사장은 “결국 실버타운의 품격을 결정하는 건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즉 사람의 역량”이라며 그 바탕이 되는 직원 교육과 오너의 진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몸건강 뿐만 아니라 마음의 안식을 주는 신앙과 선교의 마음으로
무엇보다 유당마을은 단순한 복지의 공간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이기도 하다. 유당마을 내에는 ‘빛과소금교회’가 운영되고 있다. 양 이사장은 복지와 선교가 결합된 모델을 구현했고 이 정신은 유당마을을 지탱하는 근간이 되고 있다.

양 이사장은 매주 1~2회 유당마을을 찾아 직원들과 회의를 주관하고 입주민과 예배도 함께 드린다. 예배에는 60여 명의 입주민이 참석한다. 그는 S&S Inc 경영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은퇴하게 되면 유당마을 경영에만 전념할 계획이다.
가장 따뜻한 품격있는 실버타운을 꿈꾸며
광교산 자락에 뿌리내린 유당마을은 단순한 주거복지시설이 아니다. 한 사람의 깊은 철학과 헌신,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전문성과 품격이 더해져 완성된 노년의 집이자 삶의 마지막 안식처다. 그곳에는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시간과 애정이 쌓여 있다.

유당마을은 실버타운 중 가장 먼저 시작했지만 겸손 하였다. 가장 화려하지는 않아도 오래도록 따뜻할 것이다. 그래서 유당마을은 ‘최초’로 기억되기보다 끝까지 ‘좋은 이웃’으로 남는 품격있는 실버타운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바라는 노년의 모습도 바로 그렇게 품격을 품은 따뜻한 노후가 아닐까.
여성경제신문 이한세 객원기자·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외래교수 justin.lee@spireresearch.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