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자연을 동시에 품어 선택"
실버타운 오너가 일일이 식사 챙겨
"실버타운 선 부부도 사생활 존중해"
필자는 전국의 실버타운을 조사해 <실버타운 사용 설명서> 책에서 34곳을 분석했지만 숫자로 정리된 정보만으로는 실버타운의 진짜 모습을 다 담을 수 없었다. 실버타운의 가치는 결국 '사람'에서 나온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입주민들의 삶, 운영자의 철학 그리고 실버타운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모여야 비로소 한 곳의 실버타운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 탐방기는 직접 현장을 방문해 운영 책임자나 입주민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실버타운의 실상을 전하고자 한다. 책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과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실버타운의 면면을 풀어낼 계획이다.

더시그넘하우스강남에 입주해 있는 김무일 씨는 현대자동차그룹 부사장, 현대모비스 관리본부장, 현대제철 대표이사 부회장을 역임한 대기업 경영인이자, 정년퇴임 후에는 수필가와 화가로 인생의 제2막을 살아가고 있는 예술인이기도 하다. 해병대 장교로 월남전에 참전했던 그는 전장에서, 기업 현장에서, 예술의 길 위에서 늘 성실히 걸어온 삶의 궤적을 지닌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의 노년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왜 실버타운을 선택했는지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내를 위한 결단, 늦은 선물
김무일 (전)부회장은 40년간 현대자동차그룹과 계열사에서 근무하며 기아자동차를 거쳐 현대제철 대표이사 부회장까지 역임한 인물이다. 생산현장과 경영 일선에서 굵직한 역할을 맡아온 그는 그룹 내 중역으로서 정년을 넘긴 65세까지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정년퇴임 후에도 바쁜 일정 속에서 지인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저술과 작품활동을 이어가던 김무일 부회장은 어느 순간 삶의 균형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바로 아내의 고된 가사노동 때문이었다.
“제가 직장 다닐 때는 잘 몰랐어요. 늘 늦게 들어갔고 집에 있는 시간이 적었으니까요. 그런데 퇴직하고 집에 있다 보니 집사람이 하루 세 끼를 준비하고 치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어요. 진공청소기 돌리는 정도는 제가 해도 주방일은 여전히 다 아내 몫이더라고요.”
김 부회장은 “75세가 넘은 아내가 매 끼니를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며 “일생을 바쳐 가정에 헌신해온 아내에게 조금이라도 편안한 노년을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실버타운에 들어올 결심을 했죠. 아내를 위한 결정이었어요. 사실 조금 늦은 감이 있어요. 더 일찍 들어와야 했어요.”
김 부회장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오랜 세월 함께한 배우자를 향한 고마움과 애틋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실버타운은 그의 인생 2막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평생을 함께해 온 아내에게 주고 싶었던 ‘작은 해방’이자 ‘늦은 선물’이었다.
신중하게 비교한 세 곳의 실버타운
아내를 위한 결심을 한 뒤 김 부회장은 본격적으로 입주할 실버타운을 찾기 시작하였다. 단순히 시설이 좋은 곳이 아니라 노년의 삶을 함께 살아갈 공간인 만큼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후보는 세 군데였어요. C실버타운, S실버타운 그리고 이곳 더시그넘하우스강남이었죠. ”
그는 하나하나 직접 발로 뛰며 입지, 환경, 식사, 서비스 등을 꼼꼼히 비교했다.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C실버타운은 조용함과 거리가 있었고 용인에 자리한 S실버타운은 서울에서 너무 멀었다. 이에 반해 더시그넘하우스강남은 조용한 대모산 자락에 위치해 공기도 맑고 산책하기 좋았으며, 무엇보다도 서울 도심에서 멀지 않아 지인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에 최적이었다.
부인과 함께 실버타운 뒤 숲길에 오른 김 부회장 부부
식사가 바꾼 건강과 일상
또한 다른 두 곳의 실버타운은 식사나 시설 면에서 뛰어났지만 김 부회장 부부의 취향과는 조금 맞지 않았다. “식사가 너무 서양식에 가까웠어요. 저희 부부는 한식 특히 집밥 스타일을 좋아하거든요. 이곳 더시그넘하우스강남의 식사는 유기농 식재료를 사용하여 식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나요. 저희 부부는 처음 식사 체험을 해보고 ‘아, 여기다’ 싶었어요.”
게다가 더시그넘하우스강남의 오너인 박세훈 회장이 입주민들과 같은 식당에서 늘 식사를 함께 한다는 점도 김 부회장 부부에겐 신뢰감을 주었다. “운영자가 현장을 알고 입주민 입장에서 살피니 식사 품질이 떨어질 수가 없어요. 기업에서도 최고 책임자가 식사나 복지에 관심 가지면 현장이 달라지거든요. 여긴 그게 그대로 적용되는 곳이에요.”

더시그넘하우스강남에 입주한 뒤 김 부회장의 아내 건강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전에는 식사 시간이 들쑥날쑥했고 끼니를 거르거나 외식이 잦았죠. 그러다 보니 아내가 소화가 잘 안되고 속이 늘 더부룩했어요.” 그러나 입주 후에는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고 영양사가 설계한 균형 잡힌 식단을 섭취하게 되면서 소화도 훨씬 잘 되고 몸 상태도 안정됐다는 것이다.
가족보다 가까운 이웃들
“여기 입주민들은 비슷한 나이대와 배경을 가진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더 잘 어울리고 더 쉽게 마음을 열 수 있는 것 같아요. 늘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같은 활동을 하니까 식구처럼 느껴지죠.”
어느 날은 입주민 중 한 명이 식욕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내가 직접 근처 ‘교수마을’에 있는 복국 식당까지 다녀와 복국을 사서 가져다준 일도 있었다. “그게 참 감동이었어요. 서로 살뜰하게 챙겨주는 모습이 마치 가족 같더라고요.”
더시그넘하우스강남에서는 각자의 학력이나 과거 직업에 따른 차별이 없다. 전직 국무위원이나 대학 총장, 교수 출신 등 다양한 이력이 있는 입주민들이 함께 살고 있지만 누구도 자신의 경력을 자랑삼아 내세우지 않고 본인의 전문성을 살려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김 부회장도 이곳에 와서 예전에 써오던 수필집에 이어 2024년 새로운 수필집 ‘걸어서 세계 속으로’ <교음사 2024>를 저술하였다.

실버타운 입주, 자녀들에게도 부담 덜어줘
김 부회장이 실버타운 입주를 결심했을 때 자녀들의 반응은 처음엔 다소 의아함이었다.
“애들이 그러더군요. ‘아버지, 어머니가 실버타운에 들어가시기엔 아직 너무 이른 거 아니에요?’ 하고요. 그만큼 실버타운을 노쇠한 분들이나 가는 곳으로 생각했던 거죠.”
하지만 막상 자녀들이 더시그넘하우스강남을 방문해 보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식사도 함께 해보고 시설도 둘러보니 5성급 호텔 수준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임직원들이 진심을 다해 입주민들을 섬기는 걸 보면서 안심하더라고요.”
김 부회장은 부모의 실버타운 입주가 자녀들에게도 큰 짐을 덜어주는 일이라고 한다.
“애들 입장에서도 예전에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부모님 댁에 들러 식사는 잘 하시는지, 불편한 건 없는지 살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을 거예요. 특히 며느리들 입장에선 더 그랬을 거고요. 그런데 이곳에 우리가 들어오고 나니 애들 한테는 그러한 부담이 싹 사라진 것이죠.”
좁은 공간의 해법, 실용적 대안
실버타운 입주를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망설이는 이유가 바로 살림살이 정리 문제다. 넓은 아파트에서 수십 년 살아오며 쌓인 물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김 부회장도 역시 이 고민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외출이 잦고 계절별로 입는 옷도 많잖아요. 그런데 이곳 실버타운은 아무래도 이전 아파트보다 공간이 작아서 다 가지고 오기에는 무리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고민 끝에 더시그넘하우스강남 바로 앞에 작은 오피스텔을 하나 마련했습니다.”
그 오피스텔은 일종의 세컨드 드레스룸이자 보관 창고 역할을 한다. 자주 입지 않지만 계절마다 필요한 옷가지나 생활용품을 그곳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들러 사용하는 방식이다.
“실버타운 공간은 아무래도 한정되어 있어서 이런 식의 보완이 필요했어요. 물론 경제적 여유가 좀 있어야 가능한 방법이긴 하지만, 저희처럼 외출이 잦거나 옷이 많은 분들에겐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어요.”
책도 마찬가지였다. 수십 년간 모은 책이 많았지만 모두 정리하고 그중에서도 아끼는 책 200여 권은 더시그넘하우스강남의 도서관에 기증했다.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더시그넘하우스강남에서의 김 부회장 부부의 삶은 서로 다른 생활 리듬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김 부회장은 여전히 바깥 활동이 활발하다. 주중 몇 차례는 외출해 오랜 지인들과 만나고 바깥에서의 인간관계를 유지한다. 반면 그의 아내는 실버타운 내부에서의 삶에 집중하고 있다. 아침마다 리듬체조를 하고, 하늘공원에서 꽃을 가꾸며 다른 입주민들과 산책을 나서고, 주기적으로 물리치료와 온열치료, 사우나 등을 받으며 건강을 관리한다.
“우리 부부는 각자 따로, 또 같이 살아갑니다. 나이가 들수록 너무 가까이 다가가 간섭하거나 반대로 너무 멀어져 소원해지는 것, 그 둘 다 피해야 해요. 그래서 저는 항상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을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김 부회장이 말하는 이상적인 관계는 너무 깊이 사생활에 관여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할 때는 기꺼이 손 내밀 수 있는 자유롭고 배려 있는 거리감이다.
그가 실천하는 이 철학은 실버타운의 공동체 생활에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매일 같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같은 공간에서 프로그램을 함께 하면서도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고 사생활을 배려하는 문화가 조성되어 있다. 그런 환경 속에서 김 부회장 부부는 서로에게 배려하되 간섭하지 않는 동반자로, 입주민들과는 적절한 거리의 좋은 이웃으로서 평온한 노년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내가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는 것도 좋지 않고 또 너무 멀어져서 무관심하게 대하는 것도 인간적인 정이 없죠.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 존중해주는 게 제일 좋은 관계라고 생각해요.”
그의 말처럼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가는 공간에서 진정한 평온이란 바로 그 ‘적당한 거리’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무일 부회장의 더시그넘하우스에서의 삶은 그런 균형과 배려의 미덕을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여성경제신문 이한세 객원기자·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초빙교수 justin.lee@spireresear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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