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신탁 제한·세제 혜택 미흡 등 제도 한계
선진국 대비 낮은 비중, 시장 다변화 시급

고령화 심화로 자산을 한 번에 관리·운용하려는 맞춤형 신탁 수요가 늘면서 그동안 활성화되지 못했던 종합재산신탁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종합재산신탁은 현금, 유가증권, 부동산 등 서로 다른 유형의 재산을 단일 신탁 계약에 통합해 관리·운용·처분하는 형태의 신탁 상품이다.
11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제도 도입 후 장기간 활용이 저조했던 종합재산신탁이 고령화 심화와 복합자산 관리 수요 확대로 재조명받고 있다. 자본시장법상 재신탁 제한 등 제도적 걸림돌을 완화하고 종합재산신탁을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한국금융연구원 보고서 ‘종합재산신탁 활성화를 위한 과제‘는 가계 자산구성과 금융환경 변화를 바탕으로 종합재산신탁의 도입 배경, 제도 현황, 수요 확대 요인과 향후 과제를 종합적으로 조망했다.
종합재산신탁은 2005년 제도 도입 당시 모든 자산을 하나의 계약으로 유동화해 자금을 조달하고 비용을 절감하려는 기업 수요도 뒷받침됐다. 이후 가계 소득이 높아지고 자산 구성이 다양해지면서 금전·증권·부동산 등 여러 형태의 재산을 한꺼번에 관리·운용하려는 종합재산신탁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고령층을 중심으로 상속·자산관리 목적의 신탁 활용이 늘고 있으며 유언대용신탁 등을 통해 주택·예금·주식·채권·미술품 등 다양한 자산을 통합하려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2024년 11월 자본시장법령 개정으로 보험금청구권 신탁이 가능해지면서 보험사들이 종합재산신탁업 인가를 취득해 사업을 확장하는 등 시장 내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이영경 선임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고객이 다양한 자산을 보유하는 경우 여러 신탁회사를 통해 개별적으로 신탁을 설정하는 대신 신탁회사 한 곳에 원스톱으로 종합재산신탁을 하고 신탁회사가 재신탁을 통해 자산을 관리한다면 고객 편의성 및 자산의 효율적 관리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금전과 부동산을 함께 수탁하는 경우에는 부동산을 재신탁해 부동산신탁회사에 관리·운용을 맡기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은 종합재산신탁업 인가를 받아 금전·부동산·유가증권 등 다양한 자산을 신탁받아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준비를 하고 있으나 실제 운영은 여전히 금전신탁 중심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특히 은행의 유언대용신탁은 예·적금 성격의 금전신탁에 일부 부가 서비스를 덧붙이는 형태가 일반적이라는 설명이다.
종합재산신탁은 제도 도입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실무 활용이 극히 제한적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전체 신탁 수탁고는 1378조1000억원이며 이 중 금전신탁이 632조8000억원, 재산신탁이 744조5000억원을 차지한 반면 종합재산신탁은 8000억원에 불과해 규모가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이 연구위원은 “일본은 2024년 12월 수탁고 기준 신탁시장 규모가 우리나라의 약 12배 규모로 신탁시장이 잘 발달되어 있다“며 ”우리나라의 종합재산신탁과 유사한 포괄신탁은 전체 수탁고 중 58% 정도를 차지해 매우 활발히 이용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와 상당히 대조적“이라고 짚었다.
국내에서 종합재산신탁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주요 이유로 자본시장법상 규제로 인해 신탁업자의 재신탁이 어렵다는 점이 지적됐다. 이 연구위원은 “신탁법은 2011년 개정되어 재신탁을 허용했는데 신탁업자를 규제하는 자본시장법은 여전히 재신탁 관한 근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신탁업자가 재신탁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본시장법에서 재신탁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고객의 수탁자에 대한 신뢰를 보호하기 위함이나 신탁법처럼 신탁행위로 재신탁을 제한하고 있지 않고 수익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라면 재신탁을 허락하지 않을 이유는 없으므로 법 개정을 통해 이러한 경우 신탁업자의 재신탁을 허용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또 "종합재산신탁이 가계자산 관리나 자산승계 목적으로 활용되는 경우 금융투자업자 이외의 자도 수탁자가 될 수 있도록 신탁업 인가제도를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국내 신탁시장이 해외에 비해 활성화되지 못한 배경으로 제도적 제약과 시장 구조의 한계를 함께 주목한다. 재산 유형 제한, 세제 혜택 격차, 수수료 부담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해 종합재산신탁 활용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한국 신탁시장은 제도적으로 신탁 가능한 재산 종류가 제한적”이라며 “지정된 재산 유형인 금전, 증권, 금전채권, 부동산, 동산 등 몇 가지만 허용돼 보험 청구권이나 채무는 신탁이 안 되는 문제가 있어 결과적으로 부동산, 생명보험 등 수요에 대응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정 금융신탁이나 부동산신탁에 비해 기타 신탁은 세제상 혜택이 적고 수수료도 높아 시장이 퇴직연금이나 ELS 중심으로 형성돼 있고 기타 신탁 시장은 덜 활성화돼 있다”고 부연했다.
서 교수는 “선진국들은 노후 자산 관리나 상속 자산 승계 핵심 수단으로 종합재산신탁을 활용한다"며 "종합재산신탁이 전체 신탁에 대한 수탁고에 차지하는 비중이 일본은 50% 이상, 한국은 1% 미만으로 격차가 큰데 제도 및 규제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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