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적립금 400조 돌파, IRP 성장 두드러져
상품 운용과 서비스 차이가 성과 갈림길 될 전망

개인형퇴직연금(IRP) 시장에서 5대 은행이 제각기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적립금 기준으로는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 17조원대 규모로 선두를 형성했고 하나은행이 뒤를 추격하고 있다. 농협은행은 최근 수익률에서 강세를 보이며 존재감을 키우고 우리은행은 서비스 편의성을 내세우고 있다. 은행들은 수수료 인하 정책을 확대하는 동시에 로보어드바이저 기반 일임 서비스를 도입하며 고객 유치에 나서는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IRP 중심의 성장세와 실적배당형 확대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9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퇴직연금 시장은 제도별 적립금 구성이 달라지고 운용 방식에서도 원리금보장형 중심에서 실적배당형으로의 이동이 점차 확대되는 흐름이 관찰된다. 특히 개인형 IRP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제도 내 위상이 예년보다 높아졌다.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해 말 431조7000억원으로 사상 처음 400조원을 넘어섰다. 제도별로는 확정급여형(DB)이 214조6000억원, 확정기여형(DC)·기업형 IRP가 118조4000억원, 개인형 IRP가 98조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IRP 비중은 2022년 17.7%에서 지난해 22.9%로 뛰어오르며 성장세를 이끌었다.
다만 운용 구조에서는 여전히 원리금보장형 상품 비중이 82.6%에 달해 수익률 개선에는 제약이 있다. 최근 10년간 연환산 수익률이 2%대에 머무른 반면, 실적배당형은 DC와 IRP를 중심으로 전년 대비 50% 이상 늘었고 지난해 평균 수익률도 9.96%를 기록해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IRP는 5.86%로 DC(5.18%)나 DB(4.04%)보다 높았다.
지난 2분기 말 기준 개인형 IRP 적립금은 KB국민은행이 17조3873억원으로 1위를 기록했고 신한은행이 17조2817억원으로 바짝 뒤를 쫓았다. 이어 하나은행이 14조1966억원, 우리은행 10조1780억원, 농협은행 5조7230억원 순으로 집계됐다. DC형 적립금은 국민은행이 14조6744억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신한은행(13조9703억원), 하나은행(11조6433억원), 우리은행(7조4214억원), 농협은행(6조8902억원)이 뒤를 이었다. DB형에서는 신한은행이 16조4747억원으로 선두를 지켰고 하나은행(16조8641억원), 국민은행(12조1710억원), 농협은행(11조9662억원), 우리은행(10조8233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전체 운용 잔액으로 보면 신한은행이 47조7267억원으로 가장 컸고 국민은행(44조2327억원), 하나은행(42조7040억원), 우리은행(28조4227억원), 농협은행(24조5794억원)이 뒤를 이었다. 적립금에서는 KB와 신한이 양강 구도를 이어가고 있으나 수익률에서는 농협은행이 두각을 보였다. 최근 1년간 DC형 수익률은 농협은행이 8.08%로 가장 높았고 DB형도 7.44%로 선두였다. IRP 원리금 비보장 수익률은 국민은행이 7.44%로 1위였지만 농협은행이 7.18%로 근접했다. 반면 장기 성과에서는 신한은행이 두드러졌다. 10년 기준 IRP(3.53%), DC형(3.69%), DB형(3.68%) 모두 신한은행이 선두를 기록했다.
은행별 전략에도 차이가 나타난다. 국민은행은 오는 10월부터 비대면 가입 고객의 개인형 IRP 수수료를 전면 인하해 5000만원 이상은 전액 면제하고 5000만원 미만은 0.2%로 낮출 계획이다. 동시에 마이데이터 기반 포트폴리오 자산관리 서비스를 도입해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하나은행은 비대면 IRP 계좌 개설 시 5000만원 이상 입금 고객에게 수수료를 전액 면제하고 산업재해 근로자도 동일한 혜택을 제공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카카오 알림톡 기반의 ‘우리 연금레터’ 서비스를 통해 고객이 연금 자산 현황과 수익률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1억원 이상 입금 고객에게 수수료를 전액 면제하고 ‘굿 이브닝 서비스’, ‘퇴직연금 상담플라자’ 등 상담 채널을 운영하며 고객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농협은행은 미래에셋자산운용·디셈버앤컴퍼니·콴텍과 손잡고 AI 기반 로보어드바이저 일임 서비스를 출시하며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연금운용 업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퇴직연금 시장에서 은행권은 여전히 적립금 규모에서 확실한 우위를 보이고 있다”며 “다만 최근 들어 수익률을 높이려는 시도가 확대되고 고객 편의성을 강화하기 위한 서비스 경쟁도 가세하면서 단순히 적립금 크기만으로는 시장 판도를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별로도 IRP의 성장세가 뚜렷하고 실적배당형 운용 확대가 본격화되면서 은행별 성과 차이는 더욱 분명해질 수 있다”며 “앞으로는 적립금, 수익률, 서비스 제공 능력이 동시에 평가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