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층 자산관리 겨냥 신탁상품 다양화
유언·보험금 설계 수단으로 활용 확산
재정불안 심리 여전해 수요 확대는 과제

시중은행들이 시니어 고객을 겨냥한 맞춤형 신탁 상품을 잇따라 선보이며 고령자 자산관리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언장을 대신하는 유언대용신탁부터 보험금 지급 방식을 설계할 수 있는 보험금청구권 신탁까지 생애 후반 재산 설계를 돕는 신탁 서비스가 다양화되는 양상이다. 상속 분쟁 예방, 기부 설계, 생활비 관리 등 고령층의 실질적인 수요에 맞춘 구조다.
14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러한 흐름은 고령화에 따른 자산 이전 수요 증가와 맞물려 금융권이 상속·증여 시장을 전략적 성장 영역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단순한 사후 정산을 넘어 생전 설계 중심의 자산관리 패러다임이 자리 잡으면서, 신탁은 고령층 맞춤형 종합금융서비스로 진화하는 추세다.
NH농협은행은 최근 ‘NH 사랑THE 종합유언대용신탁’을 리뉴얼 출시했다. 고객이 생전에 금전, 부동산, 유가증권 등을 신탁하고 본인을 수익자로 지정한 뒤 사후에는 자녀나 제3자에게 자산을 이전하는 방식이다. 유언장이나 공증 없이도 안정적인 승계가 가능하며 병원비나 생활비 등 긴급한 자금이 필요할 경우 중도 인출도 허용된다. 특히 이번 리뉴얼로 최소 가입금액이 기존 3억원에서 금전 외 자산 기준 1억원, 금전 기준 5000만원으로 낮아져 접근성이 크게 높아졌다.
IBK기업은행은 지난달 서울대학교 발전재단과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한 기부문화 정착’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기업은행의 ‘내 뜻대로 유언대용신탁’을 통해 기부자는 생전 재산 일부를 공익 목적에 맞춰 신탁할 수 있으며 사후에는 이 기부 의사가 체계적으로 이행된다. 유산기부의 투명성과 지속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수단으로 시니어 고객의 가치지향적 자산 운용 수요에 대응한 구조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시중은행 중 처음으로 보험금청구권 신탁 도입일에 1·2호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보험금청구권 신탁은 보험금을 포함한 상속재산을 안전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제도다. 보험 수익자를 신탁업자로 지정하고 신탁 수익자를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으로 설정하면 신탁 가입이 가능하다. 예컨대 미성년 자녀에게 매월 일정 금액을 생활비로 지급하거나, 대학 입학 시점에 맞춰 목돈을 지급하도록 설계할 수 있다.
신탁 상품을 통해 유산 분배 계획을 미리 세우는 방식은 기존의 단순한 상속 절차보다 유연하면서도 법적 분쟁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고령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은행권은 유언대용신탁 외에도 치매안심신탁, 후견신탁, 장애인신탁 등 다양한 고령층 특화 상품을 확장하며 시니어 자산관리의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소가 발간한 ‘중산층의 상속 경험과 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유언대용신탁은 아직 대중적으로 익숙하진 않지만 중산층 사이에서도 거부감 없이 수용될 수 있는 방식으로 평가된다. 보고서는 “상속 계획자의 약 10%만이 유언대용신탁을 인지하고 향후 이용의향은 긍정(42%)과 보통(43%)이 유사해 부정적일 것은 없으나 적극적 결정은 보류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유언대용신탁에 긍정적인 이유는 분쟁 없이 내 의지대로 재산분할 가능,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 때문이지만 주저하는 이유는 수수료, 충분치 않은 자산으로 중산층에게 맞지 않는 상품이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최근에는 생전에 자산을 어떻게 나눌지 미리 계획하려는 고객이 늘고 있다"며 "특히 고령층 고객들이 본인의 뜻을 명확히 반영하면서 가족 간 갈등도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신탁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 상품을 준비할 때 이런 부분도 중요하게 고려할 부분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