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 제도 외면한 ‘간병비 건보 적용’의 역설
복지 아닌 모순… 무자격 간병인 제도화가 개혁인가

“실시간 카메라 설치, 4년제 졸업 이상, 30분 단위로 상황 보고.”
한 베이비시터 모집 공고에 걸린 조건이다. 아이를 돌보는 데 요구되는 조건이 이렇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인데 아무에게나 맡길 수 있겠느냐는 말 이해는 된다. 맞벌이 시대, 부모는 아이를 믿고 맡기기 위해 CCTV를 달고 자격증 유무까지 세밀히 따진다. 오죽하면 ‘시터 출신 학부모가 경쟁력’이란 말까지 나올까.
그런데 내 아이는 그렇게 지켜보면서 부모는 왜 무자격자에게 맡겨야 하나. 그리고 그 무자격자에게 국민의 건강보험료를 왜 써야 하나.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22일 국무회의에서 발표한 ‘요양병원 간병비의 건강보험 적용’ 방침은 그 의도만 보면 반가울 수 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면 건강보험 재정으로 무자격 간병인을 제도화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대한민국엔 이미 국가가 자격증을 부여한 요양보호사라는 직종이 있다. 240시간 이상 교육을 받고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장기요양기관에서만 일할 수 있도록 정교한 제도 안에 있다. 하지만 정 장관이 말하는 ‘간병비 적용 대상’은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이다. 이들은 무자격자이다. 노동법의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간병인의 상당수는 외국인, 그 중에서도 조선족 노동자다. 감염관리, 신체이해, 정서지원은커녕 의사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고용도 불안정하다. 계약서가 아예 없는 경우도 많고 사고 발생 시 법적 책임 소재도 흐릿하다. 한데 정부는 이 회색지대에 공식성을 부여하고 보험료를 투입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요양보호사는 무엇인가.
국가가 만들어 놓은 제도를 정부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다.
간병은 단순한 ‘손발 노역’이 아니다. 생명과 존엄이 맞닿아 있는 고도의 돌봄노동이다. 그런데 왜 정부는 자격 있는 요양보호사는 외면하고 무자격 간병인을 제도화하려는가. 그 답은 ‘건보 수가’에 있다. 요양보호사는 장기요양보험 수가 안에 있기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과 별개다. 하지만 요양병원은 건강보험으로 움직인다. 정부가 선택한 건 요양보호사를 제도 밖에 남겨둔 채 “재정 설계를 간단하게 하겠다”는 행정 편의주의다.
이건 개혁이 아니다. 후퇴다.
건강보험 재정은 이미 경고등이 켜졌다. 2023년 기준, 연간 수조 원대 적자를 기록했고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하루 1만 명씩 증가 중이다. 이대로면 2030년을 전후해 건보재정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 위기의 재정을 무자격, 무감독, 무책임한 인력에게 투입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건 복지가 아니라 모순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요양보호사들은 전국의 장기요양기관에서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로 생명을 지키고 있다. 감정노동, 신체노동, 야간노동까지 버텨가며 국가 자격을 지닌 전문 인력으로 일하지만 이들에게 병원 간병의 길은 막혀 있다. 복지부는 말로는 ‘공공성 강화’를 외치면서도 현장에서 제도에 묶인 자격 인력을 방치하고 오히려 무자격자에게 건강보험이라는 공공 자원을 몰아주고 있는 것이다.
‘간병비 건강보험 적용’이란 포장지 뒤에는 요양보호사 제도의 무력화, 공공재정의 왜곡, 복지정의의 파괴가 도사리고 있다. 단지 한 직종의 이해관계 문제가 아니다. 국가가 만든 제도를 스스로 부정하는 정치적 자해 행위이며, 정권의 복지철학이 얼마나 빈약한지를 드러내는 일이다.
지금 필요한 건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다. 제도와 책임 그리고 정공법이다. 왜 자격 있는 요양보호사가 병원 간병을 할 수 없는가. 왜 자격제는 수가 구조로 분리돼야만 하는가. 왜 건강보험 재정을 동네방네 퍼주듯 쓰는가. 질문들에 대한 답 없이 단지 “간병비를 줄여주겠다”는 접근은 표를 위한 복지 포퓰리즘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가 정말로 돌봄의 공공성을 말하고자 한다면 제도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장기요양보험법을 개정해 요양보호사가 요양병원에서도 활동할 수 있게 하고 건강보험 수가로 일정 보상을 해주면 된다. 새로운 제도가 아니다. 이미 있는 제도를 ‘현장에 맞게’ 확장하는 일이다. 돌봄의 질은 자격에서 나오고 제도의 지속성은 책임에서 나온다.
‘국민 중심 의료개혁’이라는 말은 구호로 쓰기엔 너무 값지다. 국민의 건강보험료를 어디에 쓰고 누구에게 맡기는지조차 따지지 않는 개혁은 개혁이 아니라 정책의 실종이다.
복지부는 선택해야 한다. 자격 있는 돌봄을 키울 것인가, 무자격 회색노동을 키울 것인가. 국민은 답을 알고 있다. 그 답은 요양보호사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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