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요양보호사 채용, 돌봄 현장 새 바람
사람 중심 철학, 최우수 요양기관 5연속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따뜻한 돌봄 공동체

1992년 10월 경로원. 그때는 ‘요양보호사’라는 이름도 자격증도 없던 시절이었다. 최영순 영락노인전문요양원 원장은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막 졸업한 새내기 20대 시절 경로원에 첫발을 들였다. 첫 출근 날 그녀는 83세 어르신을 맡았다.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분이었다.
아침 식사 시간 최 원장은 어르신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물었다. “어르신 오늘은 밥 드셔야죠?” 그 말에 어르신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놀라 물었다. “왜 우세요?” 어르신은 천천히 대답했다. “그 말을 누가 이렇게 따뜻하게 해준 게… 오래됐어.”
그날 이후 최 원장은 밥을 드리는 일보다 말을 먼저 건넸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식사는 하셨어요?”, “괜찮으세요?” 하고 묻고 또 물었다. 그렇게 34년을 보냈다. 제도도 수당도 없었지만 그녀는 ‘누군가의 하루’에 온기를 지키는 따뜻한 섬김의 법을 배웠다.
최영순 원장은 현재 하남에 위치한 사회복지법인 영락사회복지재단 영락노인전문요양원의 원장이 됐다. 그리고 누구보다 확신한다고 했다. “좋은 돌봄은 위에서 명령하는 게 아니라 밑에서부터 쌓는 것입니다.”
최 원장은 지난해 30대 요양보호사를 과감히 요양원으로 들였다. 50~70대 요양보호사가 대부분인 현재 상황을 바꾸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처우를 바꾸고 수당을 정비하고 동아리를 지원하고, 최우수 종사자와 장기근속 직원에 대한 포상제도도 도입했다.
현장 출신의 경력을 쌓아 누구보다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에 노력했다는 최영순 원장에게 최우수 요양기관 5회 연속 선정 비결을 물었다.

ㅡ 영락노인전문요양원은 무엇이 다른지.
“가장 먼저 ‘사람 중심’의 철학에 있다. 요양이라는 건 단순한 일상 지원이 아니다. 인간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살아가는 일이기 때문에 시스템보다는 관계,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교감을 중심에 둬야 한다. 영락노인전문요양원은 이런 사람 중심 철학을 바탕으로 어르신 한 분, 한 분의 ‘생활사’를 존중하려 노력해 왔다.
매일 보호사들이 어르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기록하는 것뿐 아니라 그분들의 지난 삶과 가족사, 성격, 좋아하는 음식, 음악까지 반영해 개별 돌봄 계획을 수립한다. 예를 들어 어떤 어르신은 아침에 기도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예민해지시므로 담당 보호사와 간호사가 매일 아침 첫 순서로 함께 예배의 시간을 갖는다.
이처럼 우리는 어르신을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하루를 살아가는 ‘주체’로 대하고 있다. 영락노인전문요양원의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차별점이다.”
ㅡ 왜 30대 요양보호사 채용에 집중했는지.
“통계적으로도 그렇지만 현장 체감도 요양보호사의 고령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2024년 기준으로 요양보호사 평균 연령이 58.9세고 60세 이상 비중이 35%를 넘어섰다. 그러다 보니 어르신을 돌보는 보호사도 실제로는 어르신에 가까운 연령대인 경우가 많다.
물론 경력과 연륜이 주는 장점도 있지만 체력이나 반응 속도, 디지털 적응력, 새로운 돌봄 패러다임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래서 30대 보호사를 전략적으로 채용했다. 젊은 보호사가 중심이 되어 시설에 활력을 불어넣도록 했다.
젊은 요양보호사는 시설의 공기를 바꾸고, 무엇보다 어르신들에게 ‘새로운 세상과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이것이 어르신의 정서적 고립감을 줄이는 데 결정적이다.”

ㅡ 젊은 보호사들이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어떤 제도를 도입했는지.
“가장 먼저 손본 게 ‘보수 체계’였다. 기존 요양기관의 급여는 너무 단순했다. 경력이 많아도 책임이 커도 기본급이 같고, 수당도 제때 지급되지 않거나 기준이 모호했다. 이런 구조로는 누가 오래 일하고 싶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수당 제도를 설계했다. 직책자에게는 별도 수당을 지급했다. 모든 수당 체계를 명확히 규정했다. 특히 젊은 요양보호사들은 단기 파트타이머가 아니라 인생의 일터를 찾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여기서 커리어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게 핵심이다. 좋은 돌봄은 좋은 일자리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제도는 비용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에 대한 투자다.”
ㅡ 요양보호사 간 단절을 막기 위한 조직문화 노력도 했다고.
“요양 현장의 또 다른 문제는 ‘고립된 노동’이다. 근무 시간 대부분을 어르신과 1 : 1로 보내다 보니 보호사끼리 소통할 기회가 거의 없다. 동료와의 감정 교류 없이 일만 하다 보면 금방 지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보호사 간 유대를 회복하는 걸 조직문화 개선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중 가장 효과가 컸던 게 바로 ‘요양보호사 동아리 운영 지원제’였다. 동아리는 최소 3인 이상이면 그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어떤 활동이든 등록할 수 있다. 모임을 통해 동료에 대한 신뢰가 쌓이니 돌봄 공유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 감정노동이 버거울 때 동료 보호사가 대신 상황을 중재해 주는 일도 생긴다. 결국 돌봄도 팀워크다. 그걸 가능하게 하려면 서로를 믿고 응원할 수 있는 관계가 먼저 필요하다.”

ㅡ 지역사회와 연계도 하고 있다고.
“저희는 지역과의 연결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르신의 삶은 시설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역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받은 사랑을 필요한 이웃에게 나누고, 바자회 등을 통해 지역사회와의 교류 활동 사업도 이어가고 있다.
바자회는 ‘먹거리와 살거리’로 나뉘어 꾸려진다. 먹거리 부스에는 한우 양지국밥, 김치 해물전, 김밥, 떡볶이, 순대, 즉석라면, 어묵, 다양한 차 종류가 마련돼 훈훈한 분위기를 매년 만들어가고 있다. 살 거리 부스에서는 의류, 김치류, 생활용품 등이 저렴한 가격에 판매된다.
14년째 이어오고 있다. 직원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해 만들어낸 따뜻한 하루를 보낸다. 작은 정성이 모여 어르신들의 삶을 바꾸고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기관이 되고자 한다”며 한마디 더 던진다. “따뜻함과 정성이 가득한 우리 나누미 바자회를 기다리고 있는 이웃이 많이 생겼다.”
ㅡ 시설과 요양보호사 간의 신뢰를 어떻게 유지하는지.
“신뢰는 말이 아니라 반복된 경험에서 쌓인다. 대가가 정확히 지급되고, 자유로운 휴가가 실제로 보장되며, 건의 사항이 무시되지 않고 반영되는 것. 이런 일상적인 실천이 결국 믿음을 형성한다. 저희는 SNS 공유 창구를 통해 기관 운영 등을 투명하게 공유한다. 그리고 매월 동료들이 ‘칭찬 직원을 선정하고 포상하는’ 제도를 운영한다. 그 기준도 사전에 고지되며, 논의 과정이 열려 있다. 우리는 요양보호사를 조직의 소모품이 아니라 돌봄 공동체의 핵심 주체로 대우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ㅡ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어르신의 마지막 동행친구’라고 생각한다. 말벗이 되어주고, 손을 잡아주고, 가족이 못 보는 순간을 함께하는 존재다. 하지만 아직 이 직업이 우리 사회에선 ‘저임금·단순 노동’이라는 낙인이 붙어 있다. 그 인식을 바꾸는 데 원장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처우도 바꾸고, 교육도 늘리고, 보호사 한 사람 한 사람을 전문가로 세워주는 데 집중하고 있다. 요양보호사가 자부심을 느껴야 돌봄도 지속 가능하다.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배우고, 함께 성장하는 이곳에서 떠나지 않도록 끝까지 앞에서 지켜주는 게 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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