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노인요양원 최연소 여성 요양보호사 이유솔
저출산에만 집중된 정부 지원에 돌봄은 늘 뒷전
조선족 간병인 살리고 국가자격 요양보호사 홀대
협회조차 내분 휘말려 정부 대화 창구도 못 만들어

이유솔 하남영락노인전문요양원 요양보호사 /여성경제신문
이유솔 하남영락노인전문요양원 요양보호사 /여성경제신문

부모는 왜 반드시 필요한 존재일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말을 하지도 걷지도 못합니다. 먹고 배설하는 것조차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밤낮없이 아기 곁을 지키며 돌봐야 합니다.

낮엔 직장에서 고된 일에 시달리다 저녁이 되면 육아의 바통을 이어받아 아이를 돌봅니다. 피곤에 지쳐 잠이 들어도 아이 울음소리에 눈이 번쩍 떠집니다. 급히 달려가 보면 기저귀엔 지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래도 입가엔 미소가 가득합니다.

이 장면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 우리는 다시 아이로 돌아간다는 말을 합니다. 요양보호사가 돌보는 어르신도 그렇습니다. 치매 어르신은 갓난아기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화내고 울고 소리지르고 아이처럼 기저귀에 지도도 크게 그립니다. 전두엽 치매가 심한 경우 요양보호사의 멱살을 잡고 고함을 지르기도 합니다.

요양보호사는 그런 상황에서도 참고 또 참아야 합니다. 갓난 아이야 내 새끼니까 그럴만 해도 어르신은 그저 돌봄 대상이란 이유로 참아야 합니다. 마음이 없으면 이 일을 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사실상 갓난아이를 돌보는 부모와 다를 바 없는 헌신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요.

부모는 사회적으로 존중받습니다. 정부는 출산과 육아를 장려하기 위해 육아휴직 육아지원금 등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고 뒷받침합니다. 한데 요양보호사는 ‘단순 돌봄노동자’로 치부되기 일쑤입니다. 허리가 휘고 손목이 아파도 그저 묵묵히 일하기만을 요구받습니다. 3교대 근무를 해도 월급은 200만원 남짓입니다. 

지금 우리는 저출산·초고령사회라는 복합 위기 속에 살고 있습니다. 출산율은 급감했고 대한민국은 올해 1월부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일본보다도 빠른 속도입니다.

정부는 저출산 위기에는 서둘러 대응책을 내놓고 있지만 초고령사회 대응은 여전히 미온적입니다. 돌봄의 최전선에 있는 요양보호사는 정책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습니다.

자녀들은 치매 부모를 모시는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요양원, 실버타운, 주야간보호센터 등을 찾습니다. 그런데 정작 요양보호사에게 부모를 맡기면 '무슨 일 있었던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요양보호사는 아무리 힘들고 억울하다고 외쳐도 그 목소리는 동굴 속 메아리처럼 돌아올 뿐입니다. 들어주는 사람조차 없습니다. 

보건복지부 산하의 장기요양위원회는 요양정책을 논의하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이 중요한 자리에서조차 요양보호사의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정작 발언하는 이들은 현장을 모르는 학자나 시설장입니다. 요양보호사협회는 아직 보건복지부가 인정한 사단법인조차 없습니다. 돌봄 최전선에 있는 요양보호사는 논의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마저도 민간 협회들끼리 ‘내가 사단법인이 되겠다’며 내부 갈등만 키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사이 요양보호사는 점점 자존감을 잃고 있습니다. 자부심도 사라지고 그저 오늘도 내일도 어르신과 씨름하는 하루하루를 버텨나갈 뿐입니다.

6월 3일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나는 날입니다.

복지는 정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복지는 인간의 기본 권리입니다. 그 중에서도 ‘요양’은 초고령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입니다. 그리고 그 최전선에 있는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은 지금 이 순간 가장 절실한 과제입니다.

1000만 노인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요양보호사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들의 이름은 제대로 불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할 때입니다.

대통령 후보에게 묻고 싶습니다.

조선족 불법 간병인과 국가가 자격을 부여한 대한민국의 요양보호사. 과연 누가 진정한 돌봄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인가요?

지금 정치권은 ‘간병 정책’이라는 단어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표심에만 눈을 부릅뜨고 있는 꼴입니다. 부모를 직접 모시지 못하는 자녀들의 불안을 달래기 위한 처방만 남발하고 있습니다. 정작 우리 사회가 믿고 맡길 수 있는 국가 공식 돌봄 체계 즉 장기요양제도와 그 핵심인 요양보호사는 철저히 뒷전입니다.

표심을 의식해 '가족 간병'만 외쳐대는 사이 그 무게를 홀로 짊어진 요양보호사들은 오늘도 조용히 한 사람의 남은 생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제 눈을 떠야할 때입니다. 돌봄은 가족의 몫만이 아닙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복지의 중심입니다. 요양보호사는 단순한 손이 아니라 사람을 품는 마지막 존엄의 현장입니다.

우리는 한 줄짜리 수치 속 노동자가 아닙니다. 국가 요양 체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에 귀 기울여야합니다. 요양보호사에게 필요한 건 감정노동의 강요도 희생의 미화도 아닙니다. 제도적 권리와 인간다운 대우입니다. 

이유솔 하남영락노인전문요양원 요양보호사
이유솔 하남영락노인전문요양원 요양보호사

하남영락노인전문요양원에서 근무하는 1년 차 요양보호사 이유솔입니다. 경기대학교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한동안 IT 업계에서 일했습니다. 이쯤 들으시면 '왜 요양보호사를 하지?'라고 의아해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코딩 프로그램을 돌릴 때면 종종 '차라리 수능 준비하던 시절이 더 나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그렇게 무의미하게 흘러가던 제 삶에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한 건 돌아가신 할머니의 병실에서 간병을 하던 그때였습니다.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에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게 얼마나 깊은 의미인지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복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한데 복지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현장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말뿐인 동정이나 책상 위 이론으론 진짜 도움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맨 처음부터 요양보호사라는 길을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습니다. 때론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 같지만 이 길을 통해 제 꿈에 다가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제 꿈은 탁상행정에 갇힌 대한민국 요양복지의 길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으로서 진짜 필요한 정책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 작고 조심스러운 기고가 언젠가 그 꿈을 향한 첫걸음이자 단단한 디딤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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