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세포치료 기술 보유했지만
'인비보 방식' 임상 막는 현행법
첨생법 개정·국가 생산 기반 절실

유전자·세포치료가 유일한 대안인 희귀·난치질환 환아들이 치료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전자·세포치료가 유일한 대안인 희귀·난치질환 환아들이 치료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 "엄마, 아빠 얼굴은 어떤 색이야?" 7살 소망이가 부모에게 자주 던지는 질문이다. 미숙아망막병증으로 여섯 차례 수술을 받았고 한쪽 시력은 이미 잃었다. 남은 눈마저 실명 위기에 놓였지만 국내에서는 유일한 치료 수단조차 사용할 수 없다. 기술은 있지만 법과 예산의 장벽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다.

유전자·세포치료가 유일한 대안인 희귀·난치질환 환아들이 치료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국내는 이미 관련 기술을 확보하고 있지만 이를 임상에 적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부족하고 치료제를 생산할 수 있는 공공 인프라와 정부 예산도 없다. 기술이 아닌 제도의 공백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희귀 안질환, 소아암, 대사성 질환(당뇨 등), 암 질환 등에서 유전자·세포치료가 유일한 치료 수단이거나 새로운 대안임에도 국내 환자들은 이를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치료에 필요한 핵심 물질 대부분은 해외에서 위탁 생산해야 하며 국내에서는 이를 임상에 활용할 법적 틀과 생산할 인프라가 마련돼 있지 않다. 기술은 충분하지만 법, 예산, 인프라의 ‘삼중 공백’이 치료를 막고 있는 구조다.

이주혁 소아희귀난치안과질환협회 대표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한국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심으로 원천기술 R&D는 잘 되어 있지만 임상 연구와 치료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기술을 보유하고도 상품화 단계로 넘기지 못해 국내 환자는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비보(In vivo)’ 방식 유전자치료제다. 현재 국내 첨단재생의료법(첨생법)은 체외에서 세포를 조작해 투여하는 ‘익스비보(Ex vivo)’ 방식만 허용하고 있으며 체내에 직접 유전자를 주입하는 인비보 방식은 아예 임상조차 불가능하다. 이 대표는 “졸겐스마처럼 해외에서 승인된 유전자 치료제들은 인비보 방식인데 현행법상 국내에서는 연구는 가능하더라도 임상 적용은 막혀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는 법률상 두 방식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 틀을 마련해 임상 연구와 치료가 자유롭게 이뤄지고 있다. 이 대표는 “한국도 첨생법을 개정해 인비보 치료를 포함해야 한다. 그게 첫 번째 과제”라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 첨단재생의료법(첨생법)은 체외에서 세포를 조작해 투여하는 ‘익스비보(Ex vivo)’ 방식만 허용하고 있으며 체내에 직접 유전자를 주입하는 인비보 방식은 아예 임상조차 불가능하다. /게티이미지뱅크
현재 국내 첨단재생의료법(첨생법)은 체외에서 세포를 조작해 투여하는 ‘익스비보(Ex vivo)’ 방식만 허용하고 있으며 체내에 직접 유전자를 주입하는 인비보 방식은 아예 임상조차 불가능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실질적인 치료로 이어지려면 예산과 생산 기반이 뒷받침돼야 한다. 유전자 치료제는 일반 신약보다 수십 배 이상 고가이며 국내에선 치료제의 핵심 물질 대부분을 미국 등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이 대표는 “예컨대 50억원짜리 치료제라면 45억원이 미국 위탁 생산 비용으로 나간다”며 “핵심 공정 기반이 외국에 있는 한 국내 가격도 낮출 수 없다”고 말했다.

환자단체와 연구자들은 두 가지 공공 인프라 설립을 요구하고 있다. 하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심의 ‘첨단바이오 실증센터’로 유전자 치료제를 시범 생산할 수 있는 기반 시설이다. 다른 하나는 보건복지부 중심의 ‘유전자세포 바이오 특화연구소’로 연구자들이 독성 평가 등 사전 임상을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이다. 이 대표는 “실증센터와 바이오 특화연구소를 통해 실질적으로 임상 연구의 접근성이 생기고 치료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회에서 관련 내용으로 법 개정 시도가 이뤄졌다. 지난 6월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전물질과 핵산 물질을 첨생법상 ‘인체 세포’ 정의에 포함하고 치료제 임상과 생산을 지원할 ‘세포·유전자치료 및 첨단 재생의료 지원기관’ 설립 근거를 담은 첨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기관은 위탁생산, 임상 인프라, 연구자 지원, 국제 협력 등 기능을 담당하도록 설계됐다. 이 법안은 아직 계류 중이다.

예산 편성의 문턱도 높다. 유전자·세포치료 관련 사업은 약 5년 전부터 연구자들과 부처 간 협의가 지속돼 왔지만 기획재정부는 “예산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업을 반려해 왔다. 이 대표는 “국가 전략 기술임에도 5년째 정부 예산에 한 푼도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적 요구는 높아지고 있다. 소아희귀난치안과질환협회는 지난 5월 유전자·세포치료 기반 마련을 위한 국민동의청원을 제출했고 6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회부됐다. 청원에는 △첨단바이오실증센터(R&D센터) 설립 △첨생법 개정 △신생아 눈 검사 의무화 등이 포함됐지만 두 달이 넘도록 논의는 진전되지 않고 있다.

이 대표는 “이번에도 논의가 무산되면 우리 아이처럼 언제 실명할지 모르는 아이들이 계속 생길 수 있다”며 “만 4세인 우리 아이는 아직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망막이 무너져 안구를 적출해야 할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제도적 공백은 특정 질환 환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그는 “소아암이나 백혈병 아이들도 유전자 면역 치료가 유일한 대안인 경우가 있다. 성인 환자에게도 유전자 치료는 기존 항암치료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이건 단지 희귀 소아질환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감당해야 할 바이오산업 문제”라고 강조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