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타당한 메커니즘’ 입증 시 임상 완화
연속 성공 땐 ‘플랫폼 승인’···CDMO 수요↑
국내 환자 인프라·법 미비로 ‘그림의 떡’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단일 환자 맞춤형 유전자치료까지 포괄하는 혁신적인 승인 경로 도입을 예고했다. 이 조치로 세포·유전자치료제(CGT)의 개발 속도가 빨라지며 국내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들이 수혜를 입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다만 국내 환자들이 혜택을 누리기 위해선 제조 인프라와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20일 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FDA는 최근 ‘타당한 메커니즘 경로(Plausible Mechanism Pathway)’를 제정한다고 밝혔다. 특정 유전 변이가 질환의 근본 원인으로 확인되고 치료제의 작용 기전이 과학적으로 타당하게 설명될 경우 제한된 환자 자료만으로도 시판 허가를 검토하겠다는 의미다. 기존처럼 대규모 임상시험 데이터를 요구하지 않고 생물학적 타당성·전임상 모델·자연 경과 자료 등이 충족되면 신속 허가가 가능하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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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변화의 배경에는 ‘베이비 KJ’ 사례가 있다. 희귀 유전질환인 CPS1 결핍증을 앓던 이 환아는 필라델피아 어린이병원(CHOP) 연구진이 개발한 CRISPR 기반 맞춤형 치료제를 투여받았다. FDA는 당시 동물(쥐)의 간세포 모델 등 비임상 데이터만으로 단일 환자 치료를 허용했고 이를 제도적으로 확립하기로 한 것이다.
업계는 이번 조치를 규제 완화를 넘어 CGT 산업 구조에 변화를 줄 조치로 보고 있다. 특히 제조업체가 동일 기술 기반 치료에서 연속적인 성공을 입증하면 해당 기술 플랫폼 자체를 승인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플랫폼 수준의 승인이 이뤄지면 유사 제품의 허가 절차가 대폭 단축될 수 있어서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는 “새로운 허가 절차가 도입되면 CGT 제조업체가 주요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병원·연구소 단위의 소규모 연구가 상업적 단계로 넘어가거나 플랫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표준화된 공정과 품질관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고도화된 생산 기술을 갖춘 CDMO 기업의 몸값이 뛸 것이란 전망이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미국 현지 생산 거점을 확보한 기업들이 주목받는다. 차바이오텍은 자회사 마티카바이오를 통해 미국 텍사스주에 cGMP 시설을 운영 중이다. 현지에서 유전자치료제 핵심 원료인 바이럴 벡터 등을 생산할 수 있어 FDA의 규제 유연화 흐름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평가다.
다만 이같은 글로벌 규제 혁신이 국내 환자의 치료 기회 확대로 이어지기엔 갈 길이 멀다. 국내는 병원 내 제조(Hospital Exemption)나 단일 환자를 위한 신속 임상 진입 제도가 미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박소라 재생의료진흥재단 원장은 지난 14일 ‘첨단재생의료 환자 치료 기회 확대를 위한 정책·입법 과제’ 토론회에서 “미국은 병원 기반 제조 시설과 FDA의 유연한 규제, 공공 연구비가 결합해 초개인화 치료가 가능하지만 한국은 이를 뒷받침할 기반이 부재하다”고 꼬집었다. 특히 현행 첨단재생바이오법은 체내 직접 투여(in-vivo) 방식의 유전자치료를 임상으로 연계할 명확한 경로가 없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FDA가 소수 환자 자료와 생물학적 근거만으로도 허가 심사를 허용한 것은 CGT 분야의 규제 허들을 낮춘 조치”라며 “이 조치로 CGT 기술 개발이 빨라지고 이를 제조·개발할 수 있는 CDMO 기업에 새로운 사업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량 설비가 필요한 바이오시밀러와 달리 세포·유전자치료는 소규모·고도화된 공정 기술이 중요해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유리하다”며 “이에 맞춰 국내도 인허가, IRB 등 임상 절차를 글로벌 기준에 맞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환자 접근성과 관련해서는 “맞춤형 치료 특성상 초기에는 제조 단가가 높아 접근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며 “다만 혁신 기술이 지속적으로 시장에 나올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야 기술이 진보되면서 가격이 점차 낮아질 수 있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지켜볼 문제”라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