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무매입 원안 막대한 재정
벼 재배면적 감축 강화 조건 대안
진보·농민단체 반발 떠넘기기 가능

이재명 대통령이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유임시키면서 그 배경에 정치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대통령실은 '실용주의에 기반한 인선'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 속내엔 '양곡관리법' 원안 처리 부담감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 대통령과 현 여당이 야당 시절 당론으로 추진했던 양곡법은 쌀값이 일정 수준 밑으로 떨어지면 정부가 이를 의무매입해 쌀값 안정을 도모한다는 취지이며 윤석열 정부에서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다. 농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던 핵심 공약이었고 이 대통령은 처리를 약속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 취임 후 막대한 재정 부담과 시장 기능 왜곡 우려 등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 기존 입장을 고수하기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민생회복용 30조5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정부가 내놓은 상태다.
쌀 의무매입은 공급 과잉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왔다. 쌀은 다른 작물에 비해 기계화율이 높아 생산하기도 쉽고, 소득도 높다. 쌀이 남아도는데도 다른 작물로 전환이 쉽지 않은 이유다. 여기에 정부가 남는 쌀을 다 사준다고 하면 쌀 재배 면적이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의무매입이 포함된 양곡법 개정안을 시행하면 오는 2030년까지 연간 1조 4000억원의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최근 농식품부는 국정기획위원회 업무 보고에서 벼 재배면적의 사전 감축을 강화하는 조건을 달아 초과 생산량을 의무매입하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송 장관도 이날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당정협의회에 참석해 "양곡법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은 과잉 농산물을 전부 수매한다는 사후적 조치 위주로 그동안 이야기가 됐고, 과잉(생산)과 가격 하락을 사전 방지하는 생산 조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보완하자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이는 사실상 공약의 강도를 낮춘 것으로 정책 후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임 보수 정권에서 임명된 송미령 장관의 유임은 절묘한 카드가 된 형국이다. 이 대통령이 자신의 핵심 공약이었던 양곡법을 수정하면서 발생할 진보 진영과 농민단체의 거센 반발을 과거 '농망법'이라는 발언을 했던 송 장관에게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송 장관도 장관직을 계속하면서 명예회복과 수익을 챙길 수 있어 상호이익이 맞아 떨어지는 셈이다.
결국 이 대통령의 파격 결정은 정책 변경의 총대를 송 장관이 메게 하고 정치적 부담을 피하려는 '방패막이'용 인선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어차피 야당 시절 약속을 뒤집는다는 돌을 맞을 바에 민주당 측 인사가 맞지 않으려는 계산이 깔렸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송 장관 유임이 능력이나 통합이라는 건 쇼다. 그 분 아니어도 하겠다는 사람 줄을 섰다"며 "핵심 지지층의 반발을 전임 정부 인사에게 전가함으로써, 이 대통령은 비판에서는 한 발 비켜서고 정책 수정의 실리는 챙기는 걸 노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양곡법 개정 과정에서 농민단체의 반발과 정치적 공방의 중심에 송 장관이 화살받이 역할을 하게 되는 모습이다. 진보당 전종덕 의원은 이날 KBS 1라디오 ‘전격시사’ 인터뷰에서 “송 장관이 말하는 양곡관리법의 대안은, 국내 쌀 생산 면적을 감축하는 것에 기초해서 법을 개정하겠다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며 “이 형태의 양곡법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조국혁신당과 민주노동당도 송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농민단체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길’은 "송 장관의 유임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후퇴하는 것은 아닌지 밤잠을 설친다”며 “남태령 정신에 따라 농업대개혁에 적합한 사람을 농식품부 장관으로 임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sewoen@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