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옥 더봄]
최근 '불유쾌한' 이물질 제거 콘텐츠가 뜬다
무언가 해소하고 정리하고픈 심리도 한몫

아! 속이 다 시원하다. 스마트폰 화면 속, 누군가 커다란 뾰루지를 짜고 있다. 이내 쏙 빠져나오는 이물질, 나도 모르게 후련해지는 느낌이다. 유튜브 영상은 누군가의 귀속 커다랗고 노란 귀지를 뽑아내고, 발바닥의 불청객인 티눈은 여러 번의 손질 끝에 그 정체를 뻔뻔하게 드러낸다. 그런데 난 왜 이런 걸 보고 있는 걸까?

최근 뽑고 짜고 파는 영상들이 은근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림=홍미옥, 갤럭시 노트로 그림
최근 뽑고 짜고 파는 영상들이 은근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림=홍미옥, 갤럭시 노트로 그림

언제부턴가 나의 유튜브 알고리즘은 온통 피지를 짜고 귀지를 제거하며 으드득거리는 소리로 가득한 속칭 '뼈 소리 마사지' 채널이 장악했다.

우연히 접하게 된 짧은 영상, 처음엔 무슨 이런 걸 누가 본다고 만들었을까 하며 의아해했다. 남의 '이물질'을 본다는 건 유쾌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쾌하기는커녕 분명 불쾌할 게 뻔하다.

하지만 영상의 댓글 창은 온통 '시원하다', '덕분에 스트레스가 풀렸다', '중독성에서 헤어나질 못한다' 등등 칭찬 일색이다. 처음엔 이런 현상이 당최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지만 이상한 호기심으로 입문(?)하게 된 '짜고 뽑는 영상'은 어느새 즐겨 찾는 채널이 되었다.

어느 사회학자는 말하기를 이런 영상의 인기는 그저 단순한 호기심보다는 복잡한 현대사회를 보여주는 무의식적 해방구라고 했다. 굳이 학문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더러움이나 불편함에서 벗어나면 해방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심지어 그게 내가 아닌 남의 결과여도 마찬가지다.

재밌는 건 또 있다. 그런 영상을 볼 때면 짧은 시간이지만 보는 나도 긴장을 멈추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는가 하면 눈 깜빡이는 것도 잊은 채 두 눈에 힘을 주고 화면을 응시하게 된다. 이윽고 그 무엇 -그게 피지이거나 혹은 티눈·귀지여도-이 빠져나오면 시원한 해방감을 맛보게 된다는 거다.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닌 것이라는 건 꽤 많은 조회수와 댓글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괜스레 귓속에 커다란 돌멩이가 굴러다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나도 이걸 빼내야 한다는 결심과 함께···.

귀 청소 나들이까지?

귀 청소를 하는 사람들로 붐볐던 이비인후과, 소독 후 귀를 말리는 장면 /사진=홍미옥
귀 청소를 하는 사람들로 붐볐던 이비인후과, 소독 후 귀를 말리는 장면 /사진=홍미옥

귀지를 빼내는 영상을 보고 나니 그동안 귀 관리에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평소에는 전혀 고려치 않던 부분이다. 내친김에 귀지를 기가 막히게 처리해 준다는 이비인후과를 검색 끝에 찾아냈다.

어느 날 우리 가족의 주말 외출은 병원 나들이가 되었다. 과연 누구의 귀에서 제일 큰 귀지가 나올 것이냐는 과히 깨끗지 않은 주제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결과는 좀 실망(?)스러웠다. 가족 모두 평범한 상태라는 것이다. 가볍게 귀지를 빼고 알코올 솜으로 소독하고 나왔다. 분명 앞서 말한 영상을 볼 땐 귀에서 달그락거리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 또한 몰입형 콘텐츠

몰입형 콘텐츠라는 말은 대개 VR(가상현실)이나 AR(증강현실) 혹은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쌍방향 콘텐츠, 미디어아트 전시에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영상들이야말로 단어 그 자체에 충실한 새로운 몰입형 콘텐츠의 탄생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과히 틀린 말도 아닌 것이 뽑고 짜내는 유쾌하지만은 않은 행동들을 계속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중독성이 있다.

요즘 인기몰이 중인 속칭 여드름 짜기 인형 /구글 사진
요즘 인기몰이 중인 속칭 여드름 짜기 인형 /구글 사진

그래선지 요즘엔 이런 인형까지 등장했다. 여드름을 짜고 털을 뽑는 놀이기구가 심심찮게 팔린다고 한다. 불안 감소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도 좋다며 구매를 부추기는 광고문구가 재밌다.

가끔은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잠시나마 등을 돌리고 싶을 때면, 후련하고 통쾌한 기분을 맛보고 싶어진다. 그저 작은 이물질을 빼내는 영상이지만 얽히고설킨 매듭이 풀어지는 느낌을 받곤 한다.

쌓인 고민도 저렇게 말끔하게 짜낼 순 없을까?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조금은 황당하고 불쾌한 영상이지만 묘한 쾌감과 정리된 느낌을 주는 우리들의 은밀한 해방구라고 하면 어떨까?

여성경제신문 홍미옥 모바일 그림작가 keepan20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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