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은 묻히고 혐오만 남았다
말의 무게를 잊은 대선 토론장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열린 정치 분야 TV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열린 정치 분야 TV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급한 사람일수록 말이 거칠어지고 품격은 뒷전이 된다. 지난 27일 대선 TV 토론회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그 전형을 보여줬다.

"이런 발언도 민주노동당 기준에 여성 혐오 발언이냐"

세 번째 TV토론 '정치개혁과 개헌' 주제 토론회에서 이준석 후보가 한 말이다. '이런 발언'은 과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아들이 한 게시판에 댓글로 단 것으로 추정돼 논란이 됐었던 혐오적 표현이다.

이준석 후보는 해당 표현을 방송에서 그대로 옮겼다. 대선 후보가 공중파에서 혐오 표현을 재현한 점에서 비판이 거세다. 질문을 받은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방송이 끝난 후 SNS에 "오늘 토론회에서 나온 이준석 후보의 발언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라며 "TV 토론회 자리에서 들을 것이라곤 생각도 못한 발언이었다"라고 밝혔다.

이준석 후보는 이번 토론회에서 이재명 후보 공세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토론 전략은 토론회 시작 1분 모두발언에서부터 드러난다. 이준석 후보는 "이번 선거는 계엄을 옹호하는 '비상식 세력', 포퓰리즘으로 유혹하는 '반원칙 세력'을 동시에 밀어내고 원칙과 상식을 되찾는 선거"라며 "'빨간 윤석열'이 지나간 자리를 '파란 윤석열'로 다시 채울 수는 없다"라고 말하며 이재명 후보를 겨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진 '정치 양극화 해소 방안'에서 토론회에서도 그의 '이재명 후보 때리기 전략'은 계속됐다. 이준석 후보는 거북섬, 호텔 경제론, 커피 원가 120원부터 시작해 이재명 후보가 과거 SNS에서 본인과 다른 생각을 가진 국민에게 직접적으로 비난을 한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최근 있었던 고교 폭언 사례를 언급하며 이재명 대표의 가족사까지 끌어냈다. 결정적으로 그는 혐오적 맥락의 발언을 여과 없이 재현하며 발언 수위의 선을 넘었다.

물론 이준석 후보 이외의 다른 후보들도 네거티브 전략을 사용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도 1분 모두발언에서 "적반하장이란 말이 있다"라며 "세상에 많은 독재가 있지만 주로 국민을 위해 독재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범죄자가 자기를 방탄하기 위해 독재하는 '방탄 독재'는 처음 듣는다"라며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을 비판했다. 그는 이재명 후보의 측근과 주변 인물이 사망한 사례도 언급하며 "이런 분이 대통령이 돼서 과연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겠느냐"라고 공세를 이어갔다.

이재명 후보도 자신에게 맹공을 펼치는 이준석 후보에게 계엄 해제 표결 당시 국회에 늦게 도착한 점을 문제 삼으며 "왜 집에 가서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여유 있게 했느냐"라고 따져 물었다. 이후에도 "자꾸 말을 끊는다"라며 이준석 후보와 말다툼을 벌였다.

이번 토론회에서도 정책과 공약에 대한 얘기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비난의 비중이 더 컸다는 점에서 아쉬운 토론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대선 TV 토론회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품격조차 무너졌다는 점에서 더 큰 아쉬움이 남는다.

대선이 일주일 남은 시점에서 지지율 2, 3위 후보 입장에선 막판에 뒤집을 '결정적 한 방'이 필요했을 것이다. 단일화를 거부하고 직진하는 이준석 후보의 경우 선거비용 보전 기준인 득표율 15%(10% 득표 시 절반 보전)가 향후 정치적 입지 확보를 위해서도 중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를 넘어야 한다는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국민 여러분이 지켜보고 계시는 만큼 치열하지만 품격 있는 토론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토론 시작 전 사회자가 한 말이다. 토론이 끝난 후 영상을 다시 봤을 때 이 말을 듣는 순간 필자는 허탈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사회자가 말했던 '품격' 있는 토론은 무엇이었을까?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필자는 같은 토론을 하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는 토론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런 태도를 '가식'이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가식이 아닌 '예의'다.

그리고 토론회에서 품격을 지키는 것은 결국 TV 토론회를 시청하는 시청자, 국민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과도 같다. TV 토론회는 모든 국민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들은 물론 아직은 어린 학생들도 얼마든지 가족들과 함께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결국 국민에게 불쾌감만을 줄 뿐이다.

TV 토론은 유권자의 알 권리를 위한 방송이지만 지금은 정책보다 감정이, 설명보다 공격이 앞서는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토론회에서 말을 잘한다고 해서 지지율이 오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지지층 결집을 위해 감언을 하거나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게 더 유리하다.

급한 후보일수록 상대에 대한 존중을 잃기 쉽다. 그러나 TV 토론은 싸움이 아니라 설명의 자리다. 시청자에게 남은 것은 공약이 아니라 '그 말까지 해야 했나'라는 씁쓸함 뿐이다.

여성경제신문 김민 기자 kbgi001@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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