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전' 선보이고 기대하라는 건 너무하다
이준석 필두로 여조 1위 이재명 집중 검증
이재명 '황희 정승 화법'은 대선 패배 교훈?
金, 탈원전 반대 설득력 커도 비전 과다 毒
민주 중도보수 끌어당길 때 權 입지 굳히나
가장 좋은 경제 정책을 내놓는 후보가 꼭 대통령이 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좋은 경제 정책을 펼친, 그래서 눈에 띄는 경제 성장을 이룩한 대통령은 후대에 긍정적으로 기억됨이 분명하다.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이 그 예시다. 부정한 방법으로 권력을 잡았지만 그들의 임기 내 국민의 생활 수준이 분명히 향상됐기에 당대 사람들은 물론 후대의 이들까지 그들을 일정 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거시경제적으로 봤을 때 당시 한국의 경제 및 사회가 급속 성장이 비교적 쉬운 구조였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 압축성장의 병폐가 하나둘씩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들에 관해 무조건 나빴다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난 18일 오후 8시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가 개최됐다. 1회 토론 주제는 경제였는데 적절한 선정이었다고 본다.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0%대를 기록하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졌으며 신냉전주의 체제로 재편되는 세계에서 캐다 팔 천연자원마저 여의치 않은 나라의 대통령은 누구보다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쓸 것인가'에 관한 심도 있는 고민을 해야만 한다.
한정된 재화를 배치하는 어떤 정책이 누군가에게는 손해를 입힐지라도 한 국가의 수장이라면 더 많은 이들의 효용을 늘리는 방향으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건 경제 석학도, 운동가도, 인공지능도 할 수 없다. 대통령제를 채택하는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선후보 TV토론의 경제정책 주제는 각 후보의 철학과 전략, 그리고 현실 감각을 시험하는 자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토론회는 '1강 맹공'과 '아사모사(어사무사의 잘못)'의 조화,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후보들의 전반적인 문제는 뚜렷한 전략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제정책이라는 구체적 주제를 두고 진행된 토론이었지만 후보들이 보여준 메시지는 무뎠다. 단기 대책과 장기 비전의 균형, 재정 여력과 현실성, 산업·노동·분배에 대한 조율이 드러나야 했지만 토론은 선언적 발언과 프레임 싸움에 머물렀다고 총평할 수 있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기록 중인 이재명 후보는 사실상 '1강 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토론 내내 다른 후보들의 공격이 집중됐다. 그가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가 토론 전체의 중심이 됐고 그가 보여준 대응의 방식은 결국 이번 토론의 전반적 인상을 결정지었다.
하지만 토론이 끝나고 나서 그의 정책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이재명 후보는 단기적으로는 추가경정예산을 통한 내수 경기 부양을, 장기적으로는 첨단기술 산업, 재생에너지, 문화 산업의 육성을 통해 성장동력을 회복하겠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특히 국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독자적 LLM 개발, 국민에게 무료 GPT 서비스 제공 구상 등 인공지능 투자 공약은 시대의 흐름을 읽으려는 시도였다. 문화산업 강화 역시 반복적으로 강조됐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의 발언은 전반적으로 수세적인 태도에 머물렀고 다른 후보의 공세를 방어하느라 정작 본인의 경제 구상은 또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긴가민가'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원전에 대해서는 "일도양단으로 판단할 수 없다"며 "가급적 원전을 피하되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가자"는 식으로 유보적 태도를 보였고 대만과 중국의 분쟁에 대한 견해도 "상황에 맞춰 판단하겠다"는 말로 갈음했다. 임금 감소 없는 주 4.5일제 또는 주 4일제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도 "점진적으로 타협을 통해 나아가야 한다"는 다소 추상적인 답변을 내놨다.
권영국 후보가 차별금지법 제정 시점을 질문했을 때도 "방향은 맞다"면서도 "지금 당장은 복잡한 현안이 얽혀 있어 어렵다"고 답했는데 이에 대해 권 후보는 "영원히 못 할 듯하다"고 직격했다. 권 후보가 모든 노동자의 퇴직금·사대보험·최저임금 보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재명 후보는 "앞으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한국 경제가 (변화를) 어느 정도는 감당 가능하다고 본다"고 답했지만 이 역시 구체적인 실행 시점이나 재정 방안이 빠져 있어 실효성 면에서는 물음표가 붙었다.
한미동맹과 관세 문제에 대해서는 "외교는 언제나 국익을 중심으로 생각하면서 가야 한다"는 원칙 수준의 언급에 그쳤다. 얼마 전 논란이 됐던 '결제 후 취소해도 돈은 돌고 이는 경제 부양이다'라는 발언에 관해 설명을 요청하자 "극단적으로 단순화해서 말한 것"이라며 자신의 발언 취지를 해명했다.
한편 이재명 후보는 다른 후보가 자신의 말을 '극단적'으로 해석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중한 발언 시간에 "상대의 발언을 왜곡하지 말아 달라"는 취지의 항의성 발언도 했다.
전체 맥락에서 볼 때 이재명 후보의 태도는 전략적 선택일 수도 있다. 현재 대다수 여론조사에서 이미 과반의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는 그로서는 괜히 말을 많이 했다가 지지 기반을 까먹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이재명 후보는 한 차례 대선에서 패배한 경험이 있다. 그때의 결과는 그에게 '덜 말하고 더 조율하라'는 교훈을 남겼을 것이다. 이번 대선 10대 공약에 '성평등'과 '여성' 관련 공약을 별도로 넣지 않았다는 점만 보더라도 '치우쳤다'는 인상이 득표율을 높이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했을 거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유가 무엇이든 경제 정책의 핵심을 날카롭게 드러내지 못한 점은 아쉽다.
이준석 후보는 이번 토론에서 가장 뚜렷한 공격 전략을 구사했다. 발언 시간의 상당 부분을 이재명 후보 공약 검증에 할애했다. 그는 이재명의 '호텔경제학' 발언을 직격하며 경제는 순환보다 생산력에 기반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후보의 전 국민 AI 무료 배포, 스테이블코인, 정년 연장 등 공약에 대해서도 "현실을 무시한 비전"이라고 반박하며 기본 경제 논리를 언급했다.
이준석 후보는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 탈원전 반대 등도 명확히 제시하며 시장 친화적 태도를 고수했다. 전체적으로 '고전적 성장주의'와 '자율 경쟁'에 기반을 둔 자유주의적 경제관을 관철했지만 이재명 공세에 전략을 집중한 나머지 자신만의 성장 전략을 깊이 있게 펼칠 시간이 많지 않았다.
다만 이재명 후보의 성장 전략 중 하나인 '문화산업 강화'에 동의한다며 "전통, 고전 분야의 예술가들이 수요를 찾지 못해 어려워하므로 바우처 사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부분은 인상 깊었다. 상대 후보가 언급한 정책 방향이지만 구체적인 실행책을 짧은 시간 내 언급한 점에서 기지가 엿보였다.
김문수 후보는 토론 내내 많은 주제를 공세적으로 펼쳤다. 시작 인사에서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며 기업이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도록 규제를 혁파하겠다고 선언했다. 김 후보는 이날 토론에서 규제혁파위원회와 혁신처 신설 및 GTX 전국망 구축, 전기요금 인하, 원전 산업 생태계 복원, 인공지능 생태계 육성 등 방대한 양의 공약을 던졌다. 산업 트러스트와 규제 없는 도시 조성, 지방 이전에 대한 감세, 거점 국립대학 집중 투자 등도 포함됐다.
특히 원전에 대해서는 강한 어조로 '강화'를 주장했다. 그는 이재명 후보의 에너지믹스론에 맞서 "한국은 원전 건설 강국이고 직접 점검해보니 원자로는 매우 튼튼하다"며 원전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재명 후보가 그럼에도 "위험하니 가급적 줄이자"는 입장을 고수하자 김 후보는 "풍력과 태양광은 더 많은 비용이 든다"고 반박했다. 이 부분에서 이준석 후보도 탈원전 반대를 명확히 하며 김문수 후보와 협공하는 양상이 연출됐다.
김 후보가 내놓은 비전은 모두 꼭 필요한 비전이나 너무나 다채로워 공약의 무게를 흩뜨리는 역효과를 낳았다. 실현 가능성 총합이 1이고 "하겠습니다"가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각 공약의 실현 가능성은 '1/공약의 개수'만큼으로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우선순위와 실행계획을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권영국 후보는 예상 밖의 강한 인상을 남겼다. 토론 초입에는 '경제 분야' 토론임에도 김 후보에게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며 정치적 신념을 선명하게 드러냈고 이후에도 진보정당 후보의 정체성을 일관되게 밀고 나갔다. 부자 증세,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해소, 퇴직금·사대보험 보장, 중대재해처벌법 유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등 일관된 '노동자 중심' 경제정책을 제시했다.
특히 민주당이 중도 보수 확장 전략에 집중하는 현재 권영국 후보는 뚜렷한 진보 유권자에게 '제대로 된' 진보 후보로 비쳤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았지만 이번 토론을 존재감 강화의 기회로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권 후보가 내세운 경제 정책의 실효성과 실현 가능성을 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체성이 확실하고 일관적으로 같은 시선을 고수하는 진보 정당 및 후보는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존재 자체가 의미 있다고 본다.
유권자로서 경제 정책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각 정당의 공약집은 열람 가능하고 뉴스나 분석 기사도 많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120분간 TV 또는 컴퓨터로 생중계를 지켜보는 이유는 후보의 입으로 설명과 충돌, 해법을 듣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번 토론은 그런 기대를 배신했다. 자신의 포부를 펼치기보다는 다른 후보 견제에 집중했고 지지율 1위 후보는 해명과 방어에 시간을 대부분 썼다.
모 정치 전문가는 "토론이 끝난 후 유권자들은 공약과 정책보다 태도를 기억한다"고 귀띔했다. 격한 감정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고 추후 2회의 토론이 더 남아있는 만큼 이번 토론회는 단지 '탐색전'의 성격도 있었겠으나 '신경전'으로만 보였을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한 경제 정책 향방 논의가 필요한 시점에서 유권자들의 귀중한 시간을 '기싸움' 보여주는 데 써버렸다는 인식은 많은 이들에게 낭패감을 안겨줄 수 있다.
경제는 정치인의 말솜씨에 방해받지 않고 검증 가능한 영역이다. 새로운 돈을 '어디서' 만들 건지(성장), 이미 있는 돈을 '어디서 어디로' 옮길 것인지(분배) 그 방법을 설명하는 것이 경제 정책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명확히 말해져야 할 경제 분야에서 이런 수준의 토론이 오갔으니 남은 사회와 정치 분야 토론은 어떻게 흘러갈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불안감이 앞선다.
필자는 한국 정치 자체에 깊은 회의감을 지녀 '투표할 의지가 안 생긴다'는 주변인들에게 늘 "경제 공약과 토론이라도 보고 판단해보라"고 말해왔다. 후보 개인에 관심을 두는 것은 스트레스로 다가올지라도 '당신이 잘 먹고 사는 데 필요한 공약을, 당신이 납득할 수 있게 주장하는 사람이 한 명은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설득이 힘을 가질 거라고 생각했다. 이번 토론을 보니 설득은 '허튼 오지랖'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볼 면목이 없다.
여성경제신문 허아은 기자 ahgentum@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