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미의 할머니 육아]
할머니의 라이딩 인생
'옛말 그른 거 하나 없다'는 속담이 나이가 들수록 지당한 말씀 같다.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비유나 군더더기 없는 은유까지 옛말은 깔끔하면서도 멋스럽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이 여덟 글자를 참으로 좋아한다. 이러고 사는 이들의 인생을 관통하는 좌우명이다. 하찮은 핑계에 흔들리지 않고 작은 이익에 돌아서지 않는 무쇠 같은 각오가 있어야 가능하다.

낳자마자 바로 할미네로 온 손자는 걷기도 전에 어린이집에 들어갔다. 너무 이른 감은 있었지만 웨이팅이 길다는 소문과, 늦게 가면 적응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채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등원시켰다.
거리가 좀 있어서 유모차 아니면 내 차로 등·하원 시키길 어린이집 3년, 유치원 3년, 천재지변(코로나, 폭우, 폭설)이 없는 한 라이딩을 했다. 운전을 못 하면 황혼 육아에 낄 수 없음을 실감하는 나날이었다.
평생 운전해서 전국을 누비고 출퇴근도 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초행길이나 밤 운전이 슬슬 부담스러워지는 때였다. 순발력도 없어지는 것 같고 길눈도 예전만 못한 것 같고···. 게다가 듣도 보도 못한 복병, '급발진 사고'를 뉴스로 접하는 날이면 나에게는 안 일어나길 수도 없이 빌었다.
어쨌거나 꽃 피고 새 울면 재잘거리는 수다로 흥겨운 라이딩. 문제는 눈이 오거나 비가 올 때, 지붕이 있는 주차장이 아니면 그 눈과 비를 둘이 오롯이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처럼 비 온다고 빨리 타고 눈 온다고 빨리 내리지 않는다. 날씨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폭우가 쏟아져도 천년만년 지 할 짓 제 할 말 다 하고 타고 내린다. 재촉도 해보지만 소용은 없다. 5살쯤 되니 할머니를 좀 봐주는 듯 약간 서두르며 내리다가도 물웅덩이를 발견하면 바로 뛰어가 발을 담근다.
폭우나 폭설 예보가 있으면 전날부터 맘이 무겁다.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을 미리 걱정하느라 밤잠을 설친다. 과감함이나 배짱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운전대를 부여잡고 '민폐 김 여사'가 되어버린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는 참으로 좋아하는 말이지만 어려운 일이었고, 앞으로도 어렵겠지만 지금도 진행 중인 조심스러운 일이다.
여성경제신문 이수미 전 ing생명 부지점장·어깨동무 기자 leesoomi714@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