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미의 할머니 육아]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세상일이라지만
귀국길에 있었던 대위기
미국 체류는 한 달이었지만 가기 전 짐 싸기, 도착해서 짐 풀기, 귀국 전 집 정리 무엇 하나 만만하지 않았다. 아기 동반이라 줄일 수 있는 짐에 한계가 있었지만, 무거운 걸 들어줄 남자가 없으니 짐을 마냥 늘릴 수도 없었다. 이것도 필요할 것 같고, 혹시 모르니 저것도 넣어야 할 것 같고···.
도착해 보니 생각보다 지낼 집이 좋았다. 청소기가 없는 것이 의아할 뿐 가구나 식기는 만족스러웠다. 미국 집의 렌트 규정은 들어올 때와 똑같이 청소해 놓고 나가기다.
주특기가 청소이므로 어려운 것은 없었지만 아이가 있다 보니 기저귀 같은 쓰레기가 계속 나오고, 젖병을 수시로 닦아 써야 했다. 부칠 짐과 기내용 짐을 분류하느라 며칠 전부터 메모지를 들고 다녔다.

귀국편을 타기 위해 다시 찾은 보스턴 공항. 인천공항에 비하면 아담한 수준이었다. 짐 싸기와 청소로 벌써 탈진했지만 14시간만 버티면 무사 귀국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손주는 다시 공항을 아장아장 걸어 다니고 딸아이가 그 뒤를 어슬렁어슬렁 쫓아다닌다.
매의 눈으로 감시하는 할미와 달리 딸의 신조는 ‘자유방임’. 최대한 아이의 의사를 존중한다. 즉 “안 돼!”, “하지 마”, “더러워” 하지 않는다. 그때 갑자기 할미가 향수를 사러 가지만 않았어도 그 사달이 나지는 않았을 텐데···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조 **’ 향수.
향수를 사서 부리나케 왔더니 아이가 갑자기 칭얼거리며 졸린 듯 보였다. 유모차에 뉘어 놓고 스낵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갑자기 애가 울면서 깨어났다. 입에서는 거품인지 침인지가 줄줄 흘렀다. 숨 쉬는 게 불편해 보이면서 울음소리도 어디가 막힌 듯 컥컥댄다.
딸아이가 손주를 안더니 등 뒤에 귀를 갖다 댄다. 그때부터 나의 혼은 이미 반쯤 빠져나갔다. 모든 일이 10~20초 사이에 벌어졌을 텐데 움직이는 모습들이 영화의 슬로모션처럼 느려지면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딸아이는 원래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는 편이다. 아이 등에 귀를 대고 있던 딸아이가 후다닥 아이를 들쳐 안고 화장실로 뛰어간다. 미국 화장실은 왜 그리도 넓은지···.
다행히 사람은 없었고 놀란 할머니의 비명만 가득했다. 딸아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주를 돌려 안고 등짝을 사정없이 내려친다. '퍽!'
울던 아이 입에서 무언가 툭 튀어나와 바닥에 떨어진다. 뽀글뽀글 거품과 함께 떨어진 것은 노란색 1센트짜리 동전이었다. 아장아장 걸어 다니면서 어디선가 주워 먹었나 보다.
울던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어미 품에 안겨 있고 혼이 나간 할머니는 화장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꿈인가 생신가··· 도대체 뭔 일인가··· 애를 보랬더니 동전 집어먹는 것도 못 보느냐고 딸아이를 나무라고.
그래도 지금보다 젊을 때라 혼절은 면한 것 같다. 무슨 정신으로 비행기에 올라타 14시간을 날아왔는지···. 나중에 들었다, 그 등짝 스매싱의 이름이 ‘하임리히 처치’라는 걸···.
여성경제신문 이수미 전 ing생명 부지점장·어깨동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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