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미의 할머니 육아]
아이를 키우는 일은
기다림이 8할이다

두 딸을 키울 때는 ‘어떻게 놀아줄까’ 걱정해 본 기억이 없다. 호기심이 왕성하고 차분했던 큰딸은 무엇인가를 만들고, 그리고, 붙이고, 책을 읽으며 1초를 허투루 쓰지 않았다. 동생이 생기자 그 동생을 데리고 또 만들고, 그리고, 붙이고, 설명했다. 지루한 기색도, 놀아달라는 투정도 없이 종일 재미있게 혼자 잘 놀았다.

손주는 달랐다. 일단 몸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TV 화면 같은 것에 잠깐 한눈을 팔 때도 있지만 그때도 몸은 뛰고 있었다. 낮잠에서 깰 때도 뒤척이는 법이 없다. ‘어이쿠! 왜 누워 있었지?’ 부리나케 일어나 놀잇감을 향해 달려간다. 나온 매물이 아파트 1층뿐이어서 이사를 온 것인데 손주를 키우게 될 줄이야···.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층간소음 시시비비도 살벌한 세상이다.

아들 키우는 엄마들 말로는 손주가 유별나게 극성스러운 건 아니라지만 딸들만 키운 할미 눈엔 발바닥이 끈적하게 뛰어다니는 손주가 신기했다. 여름에는 늘 머리카락이 푹 젖어 있었다. 어린이집에 일찍 보내다 보니 수업 중에 신체 활동 시간이 많다고 해도 못 뛰어서 참고 있을 에너지가 조금씩 안쓰럽게 느껴졌다.

세상에 이것보다 더 재밌는 놀이가 어디 있을까. /이수미
세상에 이것보다 더 재밌는 놀이가 어디 있을까. /이수미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하원 후 놀이터. 사실 할미의 아이디어도 아니다. 문을 나서면 놀이터를 향해 뒤도 안 돌아보고 내달린다. “걸음아, 날 살려라~” 1시간도 2시간도 지치지 않고 논다. 친구들이 있으면 더 좋고 없어도 상관은 없다. 정 놀거리가 없으면 모래를 뿌리면서도 논다.

할미는 놀이터 벤치에 앉아 망부석이 되어 기다린다. 덥고 추울 때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무 벤치는 등받이도 없다. 잘 노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을, 아이들을 보며 실감한다. ‘언제부터 노는 걸 잊어버린 걸까···?’

아이들은 나뭇가지 한 개를 가지고도 수십 가지 방법으로 놀고, 솔방울을 지나치는 법이 없다. 훌륭한 놀잇감이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어두워지면 돌아가자고 채근해 보지만 놀이에 빠진 손주는 들은 척도 안 한다.

돌아가는 시간은 매번 어르고 달래고 할미 간다고 협박도 하고···. 내일 또 오자고 살짝 피곤해진 애를 꼬드겨 본다. 땀과 흙으로 온몸은 만신창이여도 카시트에서 그새 잠들어, 입이 벌어진 손주 얼굴은 행복하다.

여성경제신문 이수미 전 ing생명 부지점장·어깨동무 기자 leesoomi7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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