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영 쉘위댄스] (71)
늘 상대 처지에서 생각해야 한다
파트너에게 잘해주지 못한 일이
평생의 후회로 남았다

지나고 보니 한창 잘나갈 때 내 댄스 파트너들에게 잘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가 생긴다. 그 당시에는 '내가 잘못한 것이 뭐냐?'며 당당했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태도였다. 오만이었는지도 모른다.

P라는 파트너는 내가 한창 잘나갈 때 만난 파트너다. 동호회 파티 때 본 기억은 있으나 눈인사만 했었다. 어느 날 지나가다가 서로의 근황을 물었고 나는 한창 모던 5종목으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모던 5종목은 왈츠, 탱고, 폭스트롯, 퀵스텝, 비에니즈 왈츠까지 다섯 종목을 모두 춰서 기량을 겨루게 된다. 각 종목 경기 시간은 1분 30초 내지 2분이지만 5종목을 연이어 춰야 한다. 예선부터 뛰어 결승까지 가게 되면 그야말로 보통 체력으로는 힘든 일이다.

그녀가 내게 경기대회에 나갈 의향이 있다고 했다. 댄스를 개인레슨 포함 10여 년 했으니 남자가 리드하면 어지간한 루틴은 금방 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좋은 파트너는 댄스 선수에게는 절대적인 요소다. /사진=강신영
좋은 파트너는 댄스 선수에게는 절대적인 요소다. /사진=강신영

남자가 모던 5종목을 경기대회에서 할 수 있는 사람은 프로 선수 이외에는 거의 없다. 프로 선수들은 오래된 고정 파트너가 있고 나는 고정 파트너가 없으니 여자들이 보기에는 탐나는 존재였던 모양이다. 그녀가 바라는 바는 같이 프로 부문에서 경기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면 호칭에 ‘P 프로’라는 명칭이 붙고 레슨 할 때에도 레슨비가 올라간다.

댄스계에서 프로 선수가 되는 길은 의외로 단순하다. 전국 각종 댄스 단체 내지는 지자체에서 벌어지는 댄스 경기 대회에서 프로 부문에 출전하기만 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댄스 경기 대회는 프로, 아마추어, 일반부, 장년부, 학생부, 5종목, 4종목, 3종목, 2종목, 단종목 등의 부문이 있다. 프로와 아마추어 부문은 당연히 모던 5종목을 다 겨뤄야 한다. 나머지는 5종목이 필수 조건은 아니다. 프로 부문은 참여자가 많아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 아마추어 부문은 경쟁은 프로만큼 치열하지 않으나 순위 경쟁에서 유리하다.

그러나 5종목을 다 할 줄 알면 굳이 아마추어 부문에서 뛸 필요 없이 프로 부문에 나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주관 단체에 따라 프로 부문은 따로 두되 프로암, 프로 A 등으로 준프로 부문을 만들어 참가비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이런 준프로 부문에서 우승하더라도 ‘프로’라는 호칭을 사용한다는데 이의를 달 수도 없다.

댄스 경기 대회 참가는 모든 댄스인의 목표다. 그러나 좋은 파트너가 꼭 필요하다. /사진=강신영
댄스 경기 대회 참가는 모든 댄스인의 목표다. 그러나 좋은 파트너가 꼭 필요하다. /사진=강신영

그렇게 해서 그녀와 첫 경기에 나갔다. 용인시청에서 벌어지는 경기였다. 서울 강북에서 전철로 가려면 수인분당선을 타고 가다가 기흥에서 경전철로 다시 갈아타고 용인시청까지 가야 하는 코스다.

강동 쪽에 사는 나는 연미복 한 벌 메고 용인시청 대회장까지 별 어려움 없이 갔다. 그런데 그녀는 목적지까지 오는데 꽤 고생했던 모양이다. 한 손에는 드레스, 한 손에는 그날 간식 및 소지품을 들고 전철을 갈아타며 왔으니 죽을 고생을 했다고 했다. 대회 대비 화장까지 했는데 땀범벅으로 화장을 다시 해야 할 정도였다.

원래는 내가 그녀의 집 앞에 내 차를 대고 그녀를 태워 대회장까지 모셔야 했다. 그러나 나는 내 차를 처분했을 때이고 한창 젊은 나이이니 편리한 전철을 이용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또 그녀가 유부녀인지 싱글인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집이 어딘지 물으면 실례가 될 수 있을지 모르고 남편이 있다면 나의 존재가 그녀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서 각자 출발하여 대회장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그녀의 한쪽 짐은 과일 및 간식을 준비해 온 것이었다. 보통 여자 파트너가 그런 준비를 해 온다. 직접 만들었는지 사 왔는지는 모르지만 ‘토르티야’라는 멕시칸 간식이었다. 전병처럼 생긴 밀가루떡이었는데 그 안의 내용물이 다 뒤섞이면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오면서 꽤 고생한 흔적이 보였다. 나는 입에도 안 댔다. 무정한 남자다. 이때만 해도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몰랐다.

다음 대회는 지방에서 있었다. 서울에서 아침 일찍 출발했으나 대회장에 가보니 이미 모던 5종목은 예선경기가 끝나 있었다. 이런 대회는 전날 저녁에 가서 하룻밤 자고 아침부터 대회에 임해야 했는데 그녀와는 그럴만한 사이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모던 5종목으로는 더 이상 출전이 불가능하여 4종목으로 대체 출전했다. 그런데도 성적까지 지방의 텃세 때문에 나빴다. 힘이 빠진 채 음식점에서 푸념하다가 지난 용인대회 얘기가 나왔다.

자기 집에서 차로 대회장까지 파트너를 모시지 못한 것은 큰 잘못이었다고 지적했다.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하니 그럴 만했다. 춤도 잘 추고 나랑 체격 조건도 잘 맞아 좋은 동반을 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깝게 헤어졌다. 그러나 이미 버스는 떠났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