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영의 쉘위댄스] (70)
시각장애인과 장애인 댄스대회에 출전했지만
전철역서 울퉁불퉁 길 30여 분 걸어 대회장에
감기 몸살에 두통까지 호소···대회 후 초주검
대회보다 파트너를 먼저 챙겨야 했는데 후회
한창 장애인들과 댄스 경기 대회에 나갈 때 내 파트너는 장애인 부문과 비장애인 부문 모두에 같이 출전했었다. 댄스 경기대회는 일반적으로 체육관을 대여하여 개최하는데 장애인 댄스대회는 선수층이 많지 않아 오전에 대회가 다 끝난다. 그래서 오후에는 비장애인 대회를 따로 한다.
내 장애인 파트너는 시각장애인이었는데 비록 장애인이지만 비장애인에게 지지 않겠다는 승리욕이 있었다. 그래서 오전에 장애인 부문의 대회가 끝나고 모두 철수하는데 따로 남아서 나와 비장애인 부문 대회에서 또 뛴 것이다. 성적도 좋았다. 그런데 그 파트너가 더 이상 댄스를 할 수 없게 되어 내게 다른 장애인이 배정되었다.

새 파트너는 전 파트너와의 경쟁의식이 있었다. 전 파트너가 좀 까탈스러운 성격이라 장애인 그룹에서도 약간 거리를 두는 것 같았다. 자기도 그녀 못지않게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였다.
따로 파트너가 있을 때도 시각장애인들과 같이 노래방에도 가고 볼링장에도 갔었다. 비록 비장애인에 비하면 열악한 처지지만 비장애인이 하는 것이라면 자기네들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노래방에서는 모니터 바로 앞에 얼굴을 대다시피 해서 글자를 읽으며 노래했고, 볼링장에서는 멀리 핀은 정확히 안 보이지만 시각장애인들 나름대로 요령이 있는 모양이었다. 새 파트너가 된 장애인도 그때 친해졌다.
그래서 성남에서 벌어진 비장애인 댄스대회에 같이 출전하게 된 것이다. 약도를 보니 야탑역에서 내려 여성회관이라는 대회장까지 그리 멀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야탑역에서 그녀를 만났는데 표정이 좋지 않았다. 감기와 몸살로 머리가 깨질 것 같다고 했다. 경기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나 이미 야탑까지 왔으므로 경기를 뛰겠다는 것이었다.
야탑역에서 여성회관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 걸렸다. 그러나 비장애인에게는 문제없었으나 인도의 보도블록이 울퉁불퉁해서 시각장애인인 그녀가 걷기에는 상당한 고역이었던 모양이다. 요즘처럼 편한 우븐 슈즈가 나오기 전이라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 정도였으면 택시를 타고 갔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걷기 운동을 열심히 병행할 때였으므로 30분 정도의 거리는 걷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때라서 그녀의 상황을 간과한 것이다. 내 생각이 짧았다.

대회장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이미 매우 힘들어했고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해서 진통제를 구하느라고 난리를 쳤다. 일요일이라 약국도 문을 연 곳이 없었고 여성회관은 외진 곳에 있어서 외부와도 멀었다. 결국 여기저기 알아봤더니 객석에 온 손님 중에 진통제를 가지고 다니는 일반인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상태에서 경기에 출전했으니 보통 고역이 아니었을 것이다. 보통 선수들이 나가는 단 종목도 아니고 우리는 모던 5종목 전문 선수라서 플로어에 올라서면 5종목의 춤을 다 춰야 한다. 그야말로 진통제 투혼을 보인 것이다.
결과는 일반부 장년부 모두 1위를 했으나 그녀는 초주검이 되어 있었다. 너무 무리했던 것이다.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경기대회 출전이 되고 말았다. 그녀에게 안 좋은 추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과연 그녀가 이 대회에 비장애인과 겨뤄서도 충분히 할 만하다고 해서 나간 것인지, 비장애인인 나를 위해 힘든 여건에서도 출전한 것인지는 모른다. 연맹에서 출전하라고 지시해서 나갔을 수도 있다. 우승 트로피가 장식장에 올라가 있지만, 볼 때마다 입맛이 씁쓸한 트로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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