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In]
법치 제도 신뢰도 심각
합의제 국회 운영 훼손
독선 착각을 벗어나야

1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에 국민의힘, 진보당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1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에 국민의힘, 진보당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요새 우리나라 정치판 돌아가는 것을 보면 정말 걱정된다. 과거에 이 정도로 걱정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이 정도로 걱정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나라의 법치 제도에 대한 신뢰가 심각한 위기 상황에 빠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치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를 뜻한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인해 제도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고 주장하지만, 윤석열 대통령뿐만이 아니라 민주당도 제도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과정을 분석하며 전제주의와 극단주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는 4가지 신호를 제시했다. 이들이 제시한 ‘신호’는 이렇다. 첫째 헌법 선거제도 등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둘째 정치적 경쟁자에 대한 부정. 셋째 폭력 조장 혹은 용인. 넷째 야당과 언론 시민사회를 향한 억압이 그것인데 이 네 가지 ‘신호’ 모두가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에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헌법 선거제도 증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제기되는 부정선거 주장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부정선거 주장은 애초 18대 대선 직후에 진보 진영에서 제기했다. 그런데 이런 부정선거 주장이 보수 쪽으로 전염됐다. 21대 총선 직후부터 해당 주장이 전염된 것인데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강성 보수층은 해당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당연히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규범은 손상될 수밖에 없다. 

지금 일부 보수층이 제기하는 헌법재판소에 대한 불신도 마찬가지다. 헌법재판소가 이런 불신의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이런 주장을 하면 민주주의 규범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민주당도 민주주의 규범을 해친 행위를 한 것은 마찬가지다. 민주당의 경우 법을 안 지킨 적은 없지만 입법 취지 혹은 제도의 존재 목적은 수 차례 훼손한 것이 사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의원 수를 앞세워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을 단독 처리한 것이 그것이다. 

법안 단독 처리는 위법한 것은 아니지만 의회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인 ‘합의제 방식의 국회 운영’을 훼손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경쟁자를 부정하는 것은 여기서 굳이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정치적 양극화가 극에 달한 현재 여야 모두 상대방을 부정하는 것을 거의 ‘주업(主業)’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을 조장하거나 용인하는 측면을 보자면 최소한 양당이 폭력을 공개적으로 조장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자기 진영의 폭력적 행위를 상대의 탓으로 돌리는 모습은 드문 현상은 아니다. 과거 노조들의 불법 파업과 폭력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이나 이번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바라보는 여당의 입장이나 모두 이런 범주에 속한다는 것이다. 양측 모두 ‘폭력은 안 된다’라고 말하지만, 이런 발언 이후에는 폭력 상황에 대한 근본 원인이 상대방에게 있다는 주장을 잊지 않는다. 야당과 언론 그리고 시민사회에 대한 억압을 보면 얼핏 국민의힘에만 해당되는 ‘조건’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국회에서는 국민의힘이 야당이다. 즉 입법 권력과 행정 권력이 완전히 분리돼 있어 야당을 단순히 규정하기는 매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다. 또한 언론도 진보와 보수로 완전히 갈려있어 특정 진영이 일방적으로 언론을 탄압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누가 정권을 가졌는가 하는 차이만 있을 뿐 상대 진영에 우호적인 언론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법적 소송 등의 방식을 통해 자신들의 불만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보면 분명 여야 모두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는 행위를 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행위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지게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정치적 양극화에서 파생된 ‘우리는 선하다’라는 착각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런 착각에서 벗어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현명함’이다. 그런데 그런 현명함을 가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총무이사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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