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돈 뿌려 부정선거 설파한 인물"
'부족한 정보'를 근거로 '좌표 찍기'
광화문-여의도 잇는 K-MAGA 핵심
"美 공화당도 음해 메시지로 볼 것"

지난해 12월 애니 챈 미주한미동맹재단 회장(왼쪽)이 하와이 교민을 초대해 '우남 소사이어티' 설립 취지를 밝히고 있다. / 미주한미동맹재단
지난해 12월 애니 챈 미주한미동맹재단 회장(왼쪽)이 하와이 교민을 초대해 '우남 소사이어티' 설립 취지를 밝히고 있다. / 미주한미동맹재단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애니 챈(Annie Chan)' 미주한미동맹재단 회장을 12·3 비상계엄의 배후로 저격하면서 국내를 넘어 미국에까지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애니 챈은 미국 내 한인 사회에서 보수 성향의 정치 활동을 이어온 인물로 트럼프 진영과의 네트워크 역할을 수행해온 여성 기업가로 알려져 있다.

이 의원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12·3 계엄 선포 이전부터 애니 첸 회장 측과 공조해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이 의원은 애니 챈을 "돈을 뿌려 부정선거를 설파한 인물"로 지목하며 '부정선거 담론'과의 연관성을 강조했다. 다만 이 의원은 "두세 달 전에서야 (애니 챈을) 인지했다"고 밝혀 이 의원이 애니 첸의 정치 활동 지원금을 오해한 것인지 실체적 근거를 갖춘 불법 자금인지에 대한 검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준석 의원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음모론자들이) 중국 개입을 주장하지만 사실 애니 챈이 개입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국민의힘이 지지층 눈치를 보면서 음모론 확산에 불을 지폈다"고 했다. 국내에서 확산된 부정선거 의혹이 외부 세력 조작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해온 '스탑 더 스틸'(Stop The Steal: 도둑질을 멈추라) 담론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파장이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과 지지층은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 전 대통령이 부정한 방식으로 승리했다고 주장하며 개표 조작 등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해왔다. 이들은 민주당과 글로벌 기득권층이 대규모 우편투표와 전자개표 시스템을 장악했다며 소송을 벌였고 펜실베니아주, 조지아주 등에서 부정 사례를 적발했다.

부동산 개발, 하이테크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해온 애니 챈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한국보수정치행동회의(KCPAC)'를 설립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복귀를 물심양면에서 지원한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 핵심 인사다.

즉 이런 인물을 '부정선거 음모론 주범'으로 규정한 것은 곧 트럼프 대통령의 투쟁 자체를 폄훼하는 것이고 미국 보수 진영과의 관계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의원이 애니 챈을 끌어들인 배경에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진영과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 진영으로 갈라져 균열을 보인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월 8일 동대구역 광장에서 개신교 단체 세이브코리아가 국가비상기도회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와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월 8일 동대구역 광장에서 개신교 단체 세이브코리아가 국가비상기도회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와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보수 진영의 탄핵 반대 집회는 전광훈(광화문파)과 손현보(여의도파)로 분화되며 더욱 덩치를 키워가고 있다. 집회가 전국적으로 확산된 계기는 지난 1월 19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점거 사건이다. 당시 신혜식·홍철기·박완석 등 전광훈 계열 인사들은 2030 청년층 중심의 평화 시위를 펼쳤지만 박광배·권유 등 디시인사이드 출신 극우 성향 인사들이 과격 투쟁을 주장하면서 사태가 격화됐다.

문제는 폭동에 가담한 인원 중 전광훈 측 인사가 몇몇 포함됐다는 점이었다. 이를 계기로 전광훈을 견제하려던 반대 세력이 '극우 몰이'에 나섰고 내부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전광훈 반대 세력이 서부법원 사태를 광화문 집회 책임론으로 몰아가는 과정에서 손현보 목사측은 '세이브코리아'란 단체 이름으로 전한길 강사와 김성원씨(그라운드C)를 연단에 세워 후방을 넓혀갔다.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국내 보수운동에서 애니 챈은 단순한 '외부 개입자'가 아니라 미국 보수 네트워크와 한국 정치권을 연결하는 핵심 고리로 작용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기 전부터 전광훈과 손현보 목사 양측을 지원하며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미국 보수 진영은 한국을 '확장된 이념 전선'으로 보고 있는데 애니 챈은 가교이자 이를 조율하는 중재자였다. 광화문과 여의도가 각각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더 큰 국제적 흐름 속에서 연대하고 있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는다.

동시에 애니 챈은 국내 정치권 전반과도 네트워크를 형성해왔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가까운 이건수 동아일렉콤 회장과도 교분이 깊어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폭넓은 관계망을 유지하고 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1월 11일 광화문 집회 연단에 선 것도 그의 적극적인 중재로 성사됐다는 후문이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이 전광훈 목사가 주최한 광화문 집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대한민국바로세우기운동본부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이 전광훈 목사가 주최한 광화문 집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대한민국바로세우기운동본부

지난해 6월 국회조찬기도회 회장으로 취임한 윤 의원은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연대를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특히 KCPAC 및 미국 보수 네트워크와의 연결고리를 적극 활용하며 미국 공화당 내 친트럼프 진영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 왔다. 또 이러한 네트워크 활동의 연상선에서 지난 1월 20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에도 참석했다.

종합하면 이준석 의원이 애니 챈을 '부정선거 조작 세력'으로 규정한 것은 트럼프 진영에 '한국이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부정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장기적으로 미국 공화당과의 외교적 관계에서도 불리한 입장에 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도 위험한 선택으로 해석된다.

미국 애틀랜타에 거주하는 한 교민은 여성경제신문에 "이준석 의원이 유재일·박민영 등 주변 인물이 제공하는 부족한 정보에 근거해 교포 사회의 역린을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며 "트럼프 대통령 복귀로 KCPAC 중심의 보수 네트워크는 더욱 강화될 전망인데 이런 국제적 흐름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다. 마치 폭탄의 뇌관을 발로 차고도 불꽃놀이인 줄 착각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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