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마사 스튜어트 다큐멘터리와
여성주의 작품으로 바라본 살림살이

잡지 ‘마사 스튜어트 리빙’의 2020년, 1991년 연말 특집호의 커버다. 지금은 온라인 매거진으로 운영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프린트로 출간됐다. /사진=인스타그램 @marthastewart
잡지 ‘마사 스튜어트 리빙’의 2020년, 1991년 연말 특집호의 커버다. 지금은 온라인 매거진으로 운영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프린트로 출간됐다. /사진=인스타그램 @marthastewart

<마사 스튜어트 리빙(Martha Stewart Living)> 잡지를 매달 챙겨보던 때가 있었다. <라벨르>, <FL더스타일>에서 라이프스타일 에디터로 근무하던 1990년대였는데, 살림의 여왕이라 불리던 마사 스튜어트가 출간한 잡지와 단행본은 촬영 시안과 아이디어를 구하는 에디터들에게 최고의 참고서였다(인터넷과 SNS를 사용하던 때가 아니었으니 뉴스와 정보 등 새로운 소식은 신문과 잡지, 방송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다).

관련 일을 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일상의 공간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녀가 전하는 정보에 마음을 뺏길 수밖에 없었다. 서양의 생활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림하는 한국의 주부들도 마사 스튜어트가 전하는 따뜻하고, 우아하며, 현실적인 스타일링 팁은 감탄스러웠다.

그녀가 제안하는 음식과 상차림, 인테리어, 가드닝에 관한 사진과 정보를 읽다 보면 ‘이렇게 해 봐야지!’란 영감과 ‘이렇게 살고 싶어!’란 자극을 동시에 받게 되었는데, 나 역시 일생 처음 테이블클로스와 냅킨을 사고 정성껏 꽃을 꽂아보았다.  

갑자기 마사 스튜어트 이야기를 꺼낸 건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고 있는 그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결혼을 한 그녀는 타고난 살림 감각으로 케이터링 사업을 하며 뉴욕 일대에서 유명세를 쌓아온다.

1990년 자신의 이름을 앞세운 잡지를 출간한 후 2002년 주식 부당거래로 법정에 서기까지 그녀는 집 안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아름다운 장면들을 구현하며 유력 미디어 회사를 운영하는 여성 기업인으로 승승가도를 달린다. 2004년 복역과 동시에 그녀가 이루었던 부와 명성은 한순간에 사라졌지만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을 놓지 않았던 그녀는 70대에 들어 다시 한번 재기에 성공한다.

한 코미디 쇼에서 수감생활을 포함한 지금까지의 인생을 유머러스하게 전달한 것이 젊은 시청자들에게 관심을 끈 것이다. 이후 래퍼 스눕 독과 요리 프로그램을 하게 되고, 2022년에는 80대의 여성으로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 잡지 여름 특집호에 수영복을 입은 최고령 표지 모델로도 등장한다. 83세의 그녀는 여전히 가드닝을 하고 블로그를 쓰며 가사에 대한 자신의 콘텐츠를 전달하는 온라인 미디어를 운영하고 있다. 

마사 스튜어트는 요리와 집 안 꾸미기, 정원 가꾸기 등 살림을 멋지게 하는 것이 행복했고, 그것으로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간 인플루언서였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도 아니었다. 집안 곳곳이 머릿속에 떠오른 대로 구현될 때 그녀는 만족했다.

주부들은 그녀가 전하는 팁들을 따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그녀의 콘텐츠는 가사의 가치를 높여 주부의 자존감을 고양시켰는데 이것이 그녀의 성공 기반이 됐다. 그러나 살림 전문가이지만 그에 못지않은 사회적 야망을 품은 그녀에게는 ‘못된’ ‘완벽주의’ 같은 비호감의 수식어가 붙여지곤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접속하는 몸’ 전시에서 만난 윤석남 작가의 ‘엄마의 식사 준비’와 웬휘 작가의 ‘100개의 동사’는 일방적 가사 노동에 대해 비평적인 시각을 전한다. /사진=김현주
국립현대미술관의 ‘접속하는 몸’ 전시에서 만난 윤석남 작가의 ‘엄마의 식사 준비’와 웬휘 작가의 ‘100개의 동사’는 일방적 가사 노동에 대해 비평적인 시각을 전한다. /사진=김현주

살림에 대한 여성의 입장을 다른 시각으로 풀어낸 작품들도 만났다. 1960년대 이후 아시아 주요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을 조망하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기획전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에는 가사 노동에 대한 문화비평을 전하는 작품 세 점이 나란히 걸려 있다.

윤석남 작가의 ‘엄마의 식사 준비’(1988)는 김혜순 시인의 동명 시를 모티브로 한다. “아버지의 폭탄이 터진 뒤라고 한다/ 구워지고 있었다/ 전자레인지에서처럼/ 지방이 튀어오르고/ 불똥이 튀고/ 살갗이 타들어 갔다 (중략) 온 마음 들판 전체가/ 먹으러 누가 오는지 알지도 못한 채/ 전신에 눈물을 칠하고/ 튀겨지고 있었다/ 어머니가 눈물을 삼키며 식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손가락에 불이 나는 고통스러운 어머니의 모습 아래 적힌 시는 폭력적 가부장 시대에 여성의 가사 노동을 비판하는 작가의 의도가 선명하게 읽힌다. 일본 이데미츠 마코 작가의 ‘가정주부의 어느날’(1977)은 결혼 후 미국에 살고 있는 작가의 주부로서의 일상을 모니터 속 자신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영상 작품이고, 중국 웬휘 작가의 ‘100개의 동사’(1994)는 빨래와 청소 등 반복적인 가사 노동을 100개의 동사로 치환해 움직이는 여성과 그와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남성을 영상을 통해 대비해 보여준다. 

평범한 가정주부의 삶을 기반으로 세계적 미디어 기업 대표가 된 마사 스튜어트와 그녀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엄마와 아내로 반복적이며 기계적인 일상을 강요받는 여성들을 그려낸 작품들을 보면서 여성이 마주한 벽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살림살이가 즐거울 수 있으려면 필요한 것에 대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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