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오너 3세
입사 후 2~3년 내에 임원으로 승진
바이오·헬스케어·해외 등 성장동력 발굴

(왼쪽부터) 담서원 오리온 전무,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기획본부장(상무), 신상열 농심 미래사업실장(전무) /각 사
(왼쪽부터) 담서원 오리온 전무,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기획본부장(상무), 신상열 농심 미래사업실장(전무) /각 사

주요 식품업체 오너 3세들이 잇따라 경영 전면에 나서며 세대교체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신사업 확대 등 주요 핵심부서에 젊은 3세 경영인들이 배치되고 초고속 승진을 통해 경영 능력 시험대에 올랐다. 다만 오너 일가일지라도 임원 자리에 오른 만큼 소비자들과 주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확실한 능력과 분명한 성과를 입증해야하는 숙명을 떠안게 됐다.

26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오너 3세들이 입사 후 2~3년 이내에 임원으로 승진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주로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생들로 임원에 오른 3세들의 나이도 젊어졌다. 

이들의 과제는 주로 신성장 동력 발굴이다. 국내 식품업계는 소비 침체와 인구 감소로 인해 내수 시장에서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이에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거나 신사업 확대를 통해 실적 성장을 이뤄야하는 과제를 풀어야만 한다. 

승진 속도로 봤을 때 근래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오리온 오너 3세인 담서원 전무다. 1989년생으로 올해 35세인 담 전무는 화교 출신의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과 오너 2세 이화경 부회장 부부의 장남이다. 그는 오리온에 입사한지 1년 반 만에 임원을 달고 2년 만에 전무로 승진했다. 그는 2021년 7월 오리온의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핵심 부서인 경영지원팀 수석부장으로 입사해 1년 5개월 만인 2022년 12월 인사에서 경영관리담당 상무로 승진했다. 이어 담 상무는 지난 23일 2025년 정기 임원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담 전무는 오리온그룹의 사업전략 수립과 관리, 글로벌 사업 지원, 신수종 사업 등 경영 전반에 걸친 실무 업무를 수행하며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또 지난해부터 오리온이 전사적 관리시스템(ERP) 구축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담 전무는 식품 이외에 바이오 사업에도 관여하고 있다. 오리온은 지난 2020년 미래 성장 동력으로 바이오를 선정하고 올해 초 5485억원을 투자, 해외법인을 통해 신약 연구개발 기업 리가켐바이오를 인수했다. 담 전무는 오리온 계열사로 편입된 리가켐바이오의 사내이사로서 주요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불닭' 브랜드로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삼양라운드스퀘어(옛 삼양식품그룹)의 오너가 3세인 전병우 전략기획본부장(CSO)도 지난 2020년 20대에 임원이 됐다. 1994년생인 전 본부장은 올해 30세로 김정수 부회장의 장남이다. 지난 2019년 25세에 삼양식품 해외사업본부 부장으로 입사해 1년 만에 이사로 승진했다. 당시 부친인 전인장 전 삼양식품 회장이 횡령 혐의로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전 본부장이 예상보다 일찍 경영에 참여하게 됐다. 이어 입사한 지 4년여 만인 지난해 10월 상무로 승진했다. 

삼양식품은 매출 1조 기업으로 키운 역작인 불닭 브랜드를 넘어 바이오와 헬스케어까지 아우르는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여기에 전 본부장이 신사업 키를 잡고 있다. 전 본부장은 그룹 전략총괄과 함께 신사업 본부장을 겸직하며 미래 성장 동력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우선 그룹 R&D 조직인 삼양스퀘어랩에 노화연구센터, 디지털헬스연구센터 등을 신설해 미래 먹거리인 ‘바이오·헬스케어’ 역량을 높일 수 있는 인프라 투자에 나섰다. 

전 본부장 주도로 건강간편식 사업에도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오리온이 최근 선보인 식물성 브랜드 ‘잭앤펄스’가 바로 전 본부장이 주도한 브랜드다. 콩 기반 식물성 단백질 제품을 주로 선보이며 불닭 의존도를 낮추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 삼양식품은 전체 사업 중 라면 매출 의존도가 90% 이상인 만큼 사업 다각화가 필수적이다. 

농심 오너 3세로 고(故) 신춘호 농심 그룹 창립자의 장손이자 신동원 회장의 장남인 신상열 미래사업실장은 지난 25일 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1993년생인 신 전무는 2019년 사원으로 정식 입사했다. 이후 지난 2022년 2년 10개월 만에 구매담당 상무로 승진하는 등 첫 20대 임원이 돼 초고속 승진 기록을 세웠다.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농심 그룹에서 신 실장이 경영 승계 1순위로 거론된다. 신 상무의 누나 신수정 음료 마케팅팀 담당 책임도 이번 인사에서 상품마케팅실 상무로 승진했다.

농심은 올해 초 조직개편을 통해 미래사업실을 출범하고 신 전무를 미래사업실장 자리에 앉혔다. 신 전무는 회사의 미래 먹거리 발굴과 신사업에 적극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내수경기 침체와 불황 등으로 실적이 부진한 농심은 신사업인 반려동물 식품 브랜드 '반려다움'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 실장(경영리더) /CJ그룹

CJ그룹에서는 이재현 회장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이 글로벌 전략을 총괄하고 있다. 이 실장은 CJ제일제당의 가정간편식(HMR) 제품군과 비건 브랜드를 통해 미국, 유럽, 동남아 등 공략에 나서고 있다.

오뚜기는 함영준 회장의 아들인 함윤식(33)씨와 딸 함연지(32)씨가 모두 회사에서 일하며 '가족 경영'을 하고 있지만 두 자녀는 아직 임원으로 오르지는 않았다. 오너가 3세인 함윤식씨는 지난 2021년 오뚜기에 사원으로 입사해 현재 경영관리 부문 차장으로 재직 중이다.

특히 오뚜기는 글로벌 사업 확대를 위해 미국법인에 가족들을 전면 배치했다. 함연지씨는 올해 초 오뚜기 미국법인인 오뚜기아메리카에서 인턴으로 일하다 지난 5월부터 오뚜기아메리카에 입사해 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다. 또한 오뚜기는 지난해 11월 함연지씨의 시아버지 김경호 전 LG전자 부사장을 오뚜기 글로벌사업본부장 부사장으로 영입하고, 글로벌사업부를 글로벌사업본부로 격상시키며 수출 역량 강화를 꾀하고 있다. 오뚜기의 해외 매출 비중은 9.6%로 삼양식품(78%)·농심(37%) 등 경쟁사와 비교해 낮은 상황이다. 이에 해외 매출 비중을 늘리는 게 급선무다. 

함영준 오뚜기 회장의 딸이자 뮤지컬 배우를 한 함연지씨가 4년간 운영해왔던 유튜브 채널 운영을 중단한다고 지난해 12월 밝혔다. (왼쪽부터) 함연지 씨 남편이자 김경호 부사장의 아들인 김재우 씨와 함연지 씨 /햄연지 유튜브 캡처

매일유업 오너 3세이자 김정완 회장의 장남인 김오영씨는 2021년 10월 매일유업 생산물류 혁신담당 임원(상무)으로 입사한 후 2년 6개월 만인 지난 4월 전무로 승진했다. 김 전무는 1986년생으로 2013년 신세계그룹 인턴사원으로 입사한 뒤, 이듬해 정직원으로 전환돼 재무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김 전무는 매일홀딩스와 매일유업 지분을 0.01%씩 갖고 있다.

삼양그룹은 김윤 회장의 장남인 김건호(1983년생) 삼양홀딩스 사장이 지난해 말 사장으로 선임되면서 '오너 4세'의 경영이 시작됐다. 김 사장은 2014년 삼양사에 입사한 뒤, 10년 만에 사장에 오르게 됐다.

대기업 오너 가문의 자녀는 입사 후 일정 기간 동안 성과를 쌓거나 경영 수업을 받으며 능력을 입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식품그룹과 같이 재계 10위권 밖의 기업에서는 오너 자녀가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받으면서, 검증 없이 빠르게 승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오너 자녀가 임원으로 승진하고 경영에 참여하려면 충분한 검증 과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오너 3세 경영은 전통적인 식품업계에서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2~3년 내에 승진하는 것은 회사가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 트렌드와 경쟁에 대응하려는 의지를 반영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며 “다만 경영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빠르게 승진하는 것은 리스크를 동반할 수 있다. 경영 역량 강화를 위한 빠른 학습과 경험 축적이 필수적이며, 승진 후 조직의 신뢰를 얻기 위한 적극적인 소통과 투명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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