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주의 Good Buy]
두 손 자유롭게 다니고 싶을 때
휘뚜루마뚜루 메고 다닐 가방
도쿄에서 공수해 온 '포터 백팩'
브랜드, 디자인, 실용성 맘에 들어
최근 도쿄에서 가방 하나를 사 왔다. 가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백팩이 필요했다. 요즘은 자차보다 대중교통을 더 많이 이용한다. 아마도 치솟은 기름값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닐 때 한 손에 스마트폰이나 (혹은 책) 뭔가를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가방까지 손에 들고 있다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해서 대중교통으로 두 손 자유롭게 다니고 싶은 날이면 크로스백을 메고 나간다.
그런데 크로스백의 단점이 있다. 두 손은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오래 메면 몸의 균형이 틀어지는 기분이 든다. 아무래도 크로스백의 스트랩(가방끈)이 몸을 사선으로 감싸고 있어 가방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크로스백은 스트랩을 머리에 넣어 걸쳐야 하는데, 그러다 간혹 헤어스타일이 헝클어지기도 한다. 이런 불편들을 해소하기 위해 백팩을 사기로 결심했다.

백팩(back pack). 단어 뜻 그대로 등에 메는 가방이다. 학창 시절 줄곧 들고 다닌 ‘책가방’이 백팩의 전형이다. 그동안 나의 일상을 지탱해 준 백팩이 왜 없었겠는가? 유니클로 백팩부터 (살 때 당시 나름 돈깨나 썼던) 샘소나이트 가죽 백팩까지. 가방이 물건만 잘 들어가면 되지 생각했는데, 자본주의 사회생활이 요구하는 삶의 태도는 ‘그냥 가방’이 아니라 ‘어떤 가방’이냐였다. 가방에 ‘사치’를 부릴 형편은 아니지만 ‘가치’ 정도는 불어넣을 수는 있는 것 아닌가!
가방의 효용성만 따지던 소비 심리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미관과 디자인을 따지는 쪽으로 확장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위에서 언급한 가방들과의 이별(?) 역시도 미관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순간이었다.
검은색 패브릭이었던 유니클로 백팩은 찢어지고 얼룩이 많이 묻어서 버렸다. 남색 샘소나이트 가죽 백팩은 둥근 사각형이었던 양 귀퉁이가 반죽처럼 눅눅하게 무너져버려서 버렸다. 두 가방 모두 최후의 순간까지 물건을 담는 용도는 가능했지만, 그것이 결코 이별을 돌이킬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이번에 산 백팩, 요시다 포터(Yoshida Porter : 이하 포터)의 백팩이다. 포터는 1962년부터 이어져 온 일본의 로컬 브랜드다. 가격이 있는 편이지만 품질이 좋은, 그래서 충성고객이 많아 일본 내에서는 잘나가는 비즈니스맨의 가방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대중적으로 아주 알려진 브랜드는 아니지만 보장된 품질력과 오랜 역사 그리고 토트백·백팩·숄더백·크로스백·보스턴백 등 실용적인 라인업 때문에 "포터!" 하면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뭘 좀 아네."
가방 하나 사면서 브랜드를 따지는 편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가방에 사치 부릴 형편은 안 되지만 가치를 부릴 의향은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산 포터 백팩. 엔화로 8만7000엔 정도였다. 한화로 80만원 대 중반 정도인 셈이다. 8만7000원 가방이나 8만7000엔 가방이나 물건 들어가는 건 똑같다. 그러므로 10배나 되는 비용을 치르고 사는 가방에는 응당 나를 감화할 만한 스토리와 아우라가 있어야 한다. 포터 백팩에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렇게 생겼다. 맨들맨들한 나일론 소재, 겉감은 카키색에 금색 지퍼, 안감은 주황색이다. 들렀던 도쿄의 포터 매장에서 네이비, 브라운 등의 다른 컬러들이 있었지만 눈에 들지 않았다. 기왕지사 거금 들여 (일본까지) 발품 들여 가방을 사기로 한 이상 조금은 특색있고 유니크한 가방을 고르고 싶었다. 그렇다고 너무 현란한 디자인을 소화하지는 못하는 성격이라 이 정도의 카키색이 딱 좋았다.
자세히 보면 축구장 잔디나 네잎클로버 등을 연상케 하는 탁한 연두색을 닮았다. 여기에 보자기 같은 나일론 특유의 맨들맨들한 질감 덕에 빛이 드는 각도에 따라 가방의 표면에 윤광이 돌거나 그림자가 서렸다. 자연스러운 그러데이션 덕분에 가방의 외관이 더욱더 매력적이었다. 그러면서도 가방 안감은 화창한 주황색이라니. 이런 게 세련된 위트가 아닐까? 카키색과 주황색의 조화로움이 마치 한 그루 ‘귤나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쇼호스트 적 안목으로) 디자인을 뜯어보면서 이 가방을 사야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지갑은 ‘확신’을 얻었을 때 열린다. 제아무리 브랜드가 마음에 들어도, 디자인이 가슴을 후벼파더라도, 80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할 때는 결국 실용적인 부분에 대한 이성적 동의가 있어야 한다. ‘이 가방을 사서 잘 쓸 것인가?’에 대한 해답,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일단 3가지 방식으로 들 수 있는 유틸리티 백이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가방과 함께 제공되는 보조 스트랩(가방끈)을 어떻게 걸고 빼느냐에 따라 토트백(스트랩 없이 손으로 들고 다니는 가방), 숄더&크로스백(스트랩을 어깨나 몸체에 걸고 다니는 가방), 그리고 본래의 형태인 백팩(스트랩을 양어깨에 메고 다니는 가방)까지 다양한 용도로 변형이 가능한 가방이었다.
또한 사이즈가 적당했다. 182cm 키에 체격이 있는 편이라 백팩을 멨을 때 어딘가 모르게 가방이 옹졸해 보인다든지 지리산 종주 떠나는 가방마냥 거대한 모양새는 아닌지를 신경 쓰는 편이다. 허나 포터의 이 가방은 사이즈가 알맞았다. (22cm 손뼘으로 재 보니) 대략 가로 30cm, 세로 40cm 크기였다.
이 가방을 사려는 본래의 목적, 대중교통을 타면서 메고 다닐 백팩이라는 점에서 손색이 없었다. 여기에 날렵하지만 약간의 쿠션감이 가미된 스트랩까지. 자주 메고 다니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꼼꼼하게 신경 쓴 ‘품질력’에 완전한 구매 확신을 품었다.
집에 가방이 여럿 있긴 하지만 모든 가방을 쓰지는 않는다. 싼 맛에 무턱대고 샀거나 디자인에 홀려 샀다가 너무 빨리 질려버린 가방은 쓰임을 받지 못한 채 옷방 어둠 속에 숨어있다. 반면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심사숙고해 샀던 가방은 값의 크기와 상관없이 애용하고 있다. 이번 포터 백팩은 어둠보다 빛을 많이 볼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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