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옥의 일상다반사]
색의 여왕 빨강이 주는 매력과 이야기들
긴 세월 동화 속 소재로도 사랑받아 왔다
마침 로제의 ‘아파트’ 뮤비에서도 선보인
빨간 양말, 거리를 따스하게 물들이는 중
해마다 팬톤에서는 올해의 색(色)을 발표한다. 얼마 남지 않았지만, 올해 2024년의 색은 '피치퍼즈'였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복숭앗빛 살구색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보기에도 여리여리하고 어여쁜 피치퍼즈는 아쉽게도 트렌드의 열풍에 올라타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피치퍼즈를 사정없이 제쳐버린 색이 있었기 때문이다.
왠지 욕심 많고 뜨겁고 힘이 넘칠 것만 같고 주인공이 되지 않고는 못 견디는 그것은 바로 빨강이다.
전 세계를 물들인 로제의 빨간 양말

안 그래도 '아파트'라는 의미는 수십 년 동안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어왔다. 재밌게도 그 아파트 말고 다른 아파트가 전 세계인들을 끌어들였으니, 초대박을 터뜨린 블랙핑크 로제의 노래 '아파트'가 그것이다.
단시간에 전 세계의 팬들을 매료시킨 이 노래는 온통 화젯거리로 가득하다. 브루노 마스라는 걸출한 톱스타와의 컬래버는 물론이고 로제의 패션 하나하나까지 모조리 인기몰이에 나섰다.
검은 가죽 라이더에 초미니스커트, 그리고 화룡점정을 찍은 듯한 빨간 양말이 포인트다. 깜찍한 빨강은 노래의 발랄함과 더불어 팬들의 시선을 발끝까지 꽁꽁 묶어버렸다. 요즘 거리에서 심심찮게 보이는 '빨강'이 그걸 증명한다.
가만 보자, 빨간 양말이라니···. 우리 세대에겐 그저 조금 지난 드라마지만 MZ세대에겐 '옛드' 그 자체인 <은실이>가 생각났다. 주인공보다 더 화제를 불러왔던 배우 성동일의 인기 비결은 다름 아닌 빨간 양말이었다. 시골 극장가의 촌스러운 분위기를 한방에 표현하는 데엔 그만큼 어울릴 게 없었다.
그러니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빨간 양말은 촌스러움을 동반한 이미지였다, 적어도 일반인들에게는···. 하지만 지금은 런웨이를 활보하며 사랑받는 아이템이다. 하기는 빨강이 언제는 조연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언제나 맨 앞에서 사랑받던 색이었으니.
나는야 주인공, 내 이름은 빨강
빨간 망토 차차, 빨간 구두, 빨간 모자 등등 우리에게 사랑받는 동화 속 주인공들은 빨강으로 등장한다. 그게 비극이든 희극이든 어쨌든 주인공이었다. 좌충우돌 마녀 견습생인 귀여운 '빨간 망토 차차'의 옷이 노랑이나 파란색이었다면 어땠을까? 일단 상상조차 되질 않는다. 나도 도전?
늦은 밤, 산길을 종종거리며 걷는 빨간 모자의 소녀도 무한한 상상력과 함께 우리에게 왔다. 혹시 모자의 빨간색이 늑대를 자극했을까 하는 어이없는 상상도 해본다.
신나고 강렬하며 재치 있는 빨강 말고도 슬픈 빨강도 있다. 덴마크에서 전해져 오던 설화를 안데르센이 정리한 동화로 알려진 '빨간 구두'가 그렇다. 분홍신이라는 제목으로도 불린다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슬프고도 무서운 빨간 구두다.
어릴 적 다락방에서 읽던 빨간 양장 표지의 세계 명작동화 속 빨간 구두는 열 살이던 내겐 충격 그 자체였다. 주인공 카렌은 장례식(또는 예배)에 빨간 구두를 신고 가는 바람에 저주를 받는다. 그 대가로 죽을 때까지 빨간 구두와 함께 춤을 추게 되고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해 발을 자른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였다.
지금 생각하니 놀랍게도 그건 19금 동화였다. 그토록 잔혹한 이야기였음에도 삽화 속 카렌의 빨간 구두는 얼마나 예쁘던지 무서운 스토리를 뛰어넘어 추억으로 적립되었다. 그처럼 상상 이상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빨강의 매력은 대단했다.
나도 도전?

성탄절이라면 모를까 평소에 빨강을 입는다는 건 내게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쯤에서 다시 소환되는 성동일과 로제의 빨간 양말은 한 번쯤 도전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블랙핑크 제니처럼 초미니에 빨간 스타킹을 신는 것도 아니므로 부담도 없다.
우리의 놀라운 배송시스템은 주문 버튼을 누른 지 열 시간도 채 안 되어 양말 한 죽을 집 앞에 부려놓았다. 인심 좋게 지인들에게 한 켤레씩 선물했다. 요즘 인기라니까 한번 신어들 보시라며 유세를 떨었다.
정작 속마음은 그랬다. 이 나이에 빨간 양말을 신고 나만 부끄러울 순 없으므로, 후후후···
관련기사
- [홍미옥 더봄] '눈밭에서 포도알을 찾아라!'···잔나비 콘서트에서
- [홍미옥 더봄] 태어나지 말아야 했을 패션 아이템이라더니···거리를 휩쓰는 못난이 신발
- [홍미옥 더봄] 이동진을 울게 만들지도 몰라, 츄! 사랑의 하츄핑 열풍
- [홍미옥 더봄] 대세 디저트인 아망추, 요아정을 위협하는 그것은?
- [홍미옥 더봄] 2030 세대의 회식은? 먹고 뽑고 찍는 3종 세트
- [홍미옥 더봄] M.S.G.R! 신조어의 끝판왕인 이것은 무엇?
- [홍미옥 더봄] 아이유도 즐겨 입는다는 할머니의 털조끼
- [홍미옥 더봄] 제니도 강아지도 너도나도 트위드! 트위드 열풍
- [홍미옥 더봄] 먹고 싶은 수건? SNS 품절템 1위는 수건 케이크!
- [홍미옥 더봄] 그거 아세요?···쓸데없는 정보가 노랫말로 변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