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의 전통과 예술을 이어가는 공간 '해녀고기'
"제주 해녀의 문화를 전승하고 알리고 싶어요"

제주 곳곳을 이른 아침부터 뒤져보니 출출해졌다. 식당 이름은 '해녀고기'. "해녀가 물질해 들고 온 해산물을 파는 음식점이네." 해녀가 운영하는 해산물 식당이라니. 제주까지 왔으니 맛을 봐야 하지 않겠나. 가게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메뉴판에는 오겹살과 목살이 떡하니 적혀 있다. 가게 분위기도 예사롭지 않다. 직접 그린 듯한 해녀 초상화가 곳곳에 걸려 있고, 고무 해녀복을 활용한 키링 등 공예품이 이곳저곳에 널려 있다. "어서 오세요." 어리둥절해하고 있던 찰나, 고개를 돌려보니 물안경을 머리에 쓴 주인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세월 바닷물에 담가둔 깊은 주름이 연상되는 해녀의 이미지가 와장창 깨졌다. 서른 초반쯤 됐을까. 앳된 얼굴 속 강인한 눈빛이 눈에 띄었다. 해녀고기 주인장 이유정 씨가 여성경제신문 취재진을 향해 인사했다.

직접 구워준 고기를 먹으며 "이 빛나는 청춘에 여기서 뭐 하냐"고 물었다.
그녀에게 제주 바다는 단순한 생계의 터전이 아니다. 그녀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다. 바다에서 채취한 해산물과 미술 작품을 통해 제주 해녀 문화를 전승하며 알리고 있는 이유정 해녀의 청춘 이야기를 27일 여성경제신문이 들어봤다.
ㅡ 식당이 범상치 않다. 소개 부탁드린다.
"‘해녀고기’는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제주 해양 문화와 해녀들의 삶을 알리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식사를 하며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신선한 재료를 맛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전통과 문화를 이해할 기회를 제공한다. 저는 제주대학교에서 미술을 배우고 있는 학생이기도 하다. 해녀 삼촌(성별과 관계없이 해녀 선배를 지칭하는 단어)의 초상화도 그리면서 제주 해녀 문화의 가치를 전파하고, 이 전통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해녀고기를 운영하고 있다."

ㅡ ‘해녀고기’를 운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저는 제주도 토박이로, 어릴 적부터 바다에서 자라며 자연스럽게 해녀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게 됐다. 해녀의 삶과 그들이 간직한 전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고, 그 전통을 지키고 전파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미술을 전공하면서 해녀로서의 삶과 예술가로서의 꿈을 하나로 연결해 보고자 했다. 그래서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해산물을 활용한 식당 ‘해녀고기’를 운영하며 동시에 해녀 문화를 알리는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ㅡ 해녀로서의 삶과 예술 활동을 어떻게 병행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해녀 생활은 신체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영감은 제 작품에 깊은 영향을 준다. 바다에서의 경험은 제 예술 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바다에서 느낀 감정과 풍경을 화폭에 담아내며 사람들에게 해녀들의 삶과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해녀고기에서는 이러한 작품을 전시하고 손님들에게 제주 해녀 문화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데 힘쓰고 있다."

ㅡ 꿈을 이루는 데 장애물도 많을 것 같다.
"해녀들의 수가 고령화와 함께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특히 바다 환경의 변화로 인해 해산물 채취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게다가 바다에 버려지는 쓰레기와 낚싯줄 등으로 인해 해녀들이 위험에 처하는 일도 많다. 저도 한 번은 물질 도중 낚싯줄에 걸려 큰 위험을 겪은 적이 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젊은 세대가 해녀의 길을 이어가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보다 나은 장비와 환경, 그리고 젊은 해녀들을 위한 지원이 필수적이다."
ㅡ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는지 궁금하다.
"해녀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 두 역할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해녀 문화를 더 널리 알리고 이를 통해 제주도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것이 제 목표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해녀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그 가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언젠가 제주 바다를 지키고자 하는 젊은 해녀 친구들과 함께 이 길을 걸어가고 싶다."
관련기사
- [인터뷰] 바다와 시간의 예술가 한익종이 유리조각에 새긴 제주도 이야기
- 해녀 셋 중 둘이 70세 이상 '초고령화'에 소멸 위기
- [the우먼] "제주 바다, 제가 지킬 거예요"
- [the우먼] 이혜정 인천시 주무관 “창간 15년 ‘인천나우’, 모두에 따뜻한 편지”
- '폭싹 속았수다' 제주 해녀, 남다른 유전자였다···잠수 비결은 '이것'
- [the우먼] “행복한 공간을 설계해요”···뉴욕에서 찾은 건축가의 디자인 철학
- [인터뷰] 금융범죄 추적 여검사, 20년 법정 넘나든 변호사 길을 열다
- 해녀 이유정, 은퇴·고령 해녀 위한 ‘해녀돌봄’ 전시회 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