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In]
정치적 상대방 적으로 취급
특정인에 이득 상당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팬덤이 지배

우리나라만큼 팬덤이 정치판을 좌우하는 나라는 찾기 힘들다. 우리나라 주요 정치인은 웬만하면 팬덤을 가지고 있지만, 외국에서는 팬덤을 가진 정치인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일본에서 팬덤을 가진 정치인을 찾기란 어렵다. 그런데 미국의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예외다. 이들 두 미국 정치인은 팬덤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어떤 정치인이 팬덤을 가지게 되는지가 궁금해진다.
팬덤을 가진 우리나라 정치인들과 트럼프 전 대통령 그리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사이의 공통점은 정치에서 SNS를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SNS 활용이 왜 정치적 팬덤 발생의 원인이 될까? 정치인이 SNS를 활용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유권자와의 ‘소통’인데, 이런 ‘소통’의 과정에서 팬덤이 발생한다. SNS 이전 시대의 일반 유권자는 정치인을 ‘저곳에 있는 그들’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도 정치인을 제대로 만나볼 기회가 없었으니, 당연히 ‘저곳’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치인들의 SNS 활용이 늘면서, 유권자들은 정치인을 더 이상 ‘저곳’에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게 됐다. 한마디로, 정치인과 유권자 사이에 ‘개인적 친밀감’이 생겼다는 것인데, ‘개인적인 친밀감’이 생기는 이유는 정치인이 자신의 의견에 대해 답을 해 준다는 ‘느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특정 정치인에 대해 ‘친밀한 느낌’을 다수가 갖게 되면, 이것이 팬덤으로 진화한다. 이때부터 이성적 영역에 존재해야 할 정치는 감정적 영역으로 진입하게 되는데, 이렇듯 정치가 감성화되면 정치적 상대방은 적(敵)으로 취급된다. 나와 ‘친한’ 정치인을 공격하는 정치적 상대방은 ‘타도’와 ‘제압’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이분법적 정치적 사고(思考)가 횡행하게 되면, 정치는 서서히 ‘퇴화’하기 시작한다. 정치란 본래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예술’이라고 하는데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정치적 상대방을 설득하고 양보하게 만들며 자신도 양보해 타협안을 도출하는 것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가 감성화되면 타협과 협상의 대상인 정치적 상대방을 적으로 여기게 돼, 정치는 사라지거나 ‘퇴화’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팬덤이, 지난 미국 대선 직후에 미국 의사당을 습격한 사례는 팬덤에 의한 정치의 감성화가 극단적으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정치인의 팬덤은 정치를 퇴화시키고, 타협의 장을 투쟁의 장으로 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팬덤은 정치를 퇴화시키지는 않았다. 노사모는 SNS가 없었던 시절에 탄생한 것이기 때문에 이념 지향성이 강했고 그래서 정치를 퇴화시키지는 않았던 것이다. 정치의 감성화를 조장하는 현재의 팬덤의 문제를 정치인들 역시 알고 있다. 하지만, 팬덤과의 관계를 끊지 못하는 이유는 팬덤이 자신에게 주는 이득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팬덤이 특정 정치인에게 주는 이득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우선 첫째로 들 수 있는 것은 유권자 전체에 비해 팬덤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큰 목소리’ 덕분에 특정 정치인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정치인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팬덤이 알아서 정치적 상대방을 ‘제압’해 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정치인 자신은 이미지 관리에만 집중하면 된다. 이런 이득을 주니 정치인은 정치를 퇴화시키는 팬덤이라는 존재를 오히려 반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정 시간이 흐르면 팬덤이 특정 정치인을 오히려 ‘지배’하게 된다는 데 있다.
나중에는 정치인이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팬덤의 눈치를 보며 팬덤의 ‘뜻’에 따르게 된다는 말이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 정치는 더욱 퇴화하게 된다. 실종된 존재는 어떻게든 다시 찾으면 된다. 하지만 퇴화한 존재는 다시 찾을 수 없다. 지금처럼 정치 퇴화 위기가 더 지속되면, 우리나라에서 정치는 영영 찾을 수 없는 존재가 될지 모른다는 말이다. 지금이라도 건전하고 이성적인 다수가 이런 상황이 초래되지 못하도록 나서야 하는 이유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총무이사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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