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In]
정치적·정서적 양극화
한국도 폭력 사태 우려
정치인 팬덤 축소돼야

대선을 50여 일 앞둔 시점인 9월 15일 공화당 트럼프 후보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었다. 지난 7월 13일의 암살 시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트럼프 후보에 대한 연이은 암살 시도에 대해 미국 공화당 측은 트럼프 후보에 대한 민주당의 프레임 씌우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런 주장이 맞든 틀리든 여기서 중요한 점은 미국에서의 정치적·정서적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고 그 결과가 이런 암살 시도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런 양극화에 대한 책임 중 상당 부분은 트럼프 후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번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낙선하자 트럼프 지지자 일부가 미국 의사당으로 몰려가 의사당 건물 내부를 점령한 바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매우 위태롭게 만든 순간이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었는데 이번에는 자신이 당선되지 못하면 피바다가 될 것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고 있다. 트럼프 후보는 지난 3월 오하이오주 버니 모레노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의 선거 유세를 지원하며 “내가 당선되지 않으면 나라는 피바다가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런 발언은 정치적·정서적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인데 그런 선거의 결과를 두고 ‘피바다’ 운운하며 협박하는 것은 트럼프 후보가 자신의 핵심 지지층만을 바라보는 선거 전략을 펴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선거 승리를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도층 표를 흡수하려는 의지는 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트럼프 후보 측이 이런 선거 전략을 펴는 이유를 분석해 보면 지난 2016년 대선 당시의 경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당시 상대적으로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기 위해 트럼프 진영은 중도층으로의 지지층 외연 확장보다는 핵심 지지층을 최대한 투표장에 나가도록 만드는 전략을 폈는데 이런 전략이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선거 전략은 미국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즉 자신에 대한 암살 위협뿐만이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트럼프 후보가 이런 식의 ‘증오의 정치’를 통한 진영의 양극화를 추구하고, 이를 선거에 이용하려 든다면 선거 결과에 따라서 유혈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도 이런 측면을 걱정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7월 21일 미국 CBS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낙선하면 평화적으로 정권이 이양될 것으로 보냐는 질문에 “나는 전혀 확신하지 못하겠다”라며 “우리는 그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그가 한 말은 진심”이라며 “‘우리가 지면 피바다가 될 것이다’라는 말은 다 진심”이라고 말했다. 이런 미국의 상황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우리 역시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역시 정치적·정서적 양극화가 매우 심각하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미국과 같은 암살 시도나, 선거 불복 폭력 사태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재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중도층으로의 지지층 외연 확대를 꾀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일 대권 잠룡들이 트럼프처럼 자신들의 핵심 지지층을 위한 전략만을 편다면 아마도 우리 역시 미국 못지않은 폭력 사태를 걱정할 판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중도층이 커질수록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작아진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나라 유권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정치란 정의를 구현하는 존재가 아니라, 권력 추구의 과정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점이다.
즉 정치는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이라는 것인데, 정치가 그러한 존재이기에 우리는 정치를 이용해야지 정치 혹은 정치인을 추종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트럼프가 미국 정치를 난장판으로 만들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자신을 추종하는 팬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런 팬덤의 존재를 인위적으로 없앨 수는 없기에, 팬덤의 규모라도 축소되게끔 노력해야 한다. 이런 노력은 유권자 각자의 각성에서 비롯될 수 있다. 우리가 모두 이성적으로 정치를 판단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총무이사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