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익종의 삶이 취미 취미가 삶]
독서가 최고의 취미인 이유
책 읽는 모습보다 아름다운 모습이 있을까?
지금도 물론 그렇겠지만 과거에는 어느 조직의 일원이 될 때 필요한 자기소개서나 이력서에 반드시 들어가는 기재 항목이 '취미, 장기'였다. 그 당시 취미, 장기를 쓰는 순간이 오면 한참을 망설인 것이 기억난다. 스스로 다양한 취미와 장기를 가졌다고 여겼기 때문이지만 사실은 무엇이 진정한 취미이고 장기인 줄 몰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던 나의 취미를 정확히 밝힐 수 있었던 것은 한 장의 달력 그림 사진이었다. 황금색 드레스를 입고 푹신한 베개를 등에 댄 소파에 앉아 한 손에 책을 받쳐 들고 책을 읽는 소녀의 모습. 프랑스 로코코풍 화가 프라고나르의 '책 읽는 소녀'이다. 그 당시를 회상해 보면 책 읽는 소녀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 때문이 아니라 볼이 발그스레한 소녀의 미색에 빠졌었던 게 사실이지만.
아무튼 이 그림 한 장은 사춘기에 접어든 까까머리 중학생을 한동안 넋 놓게 했으며 독서를 자주 하게 하는 동기가 되어 줬다. 그 이후 독서는 나의 많은 취미생활 중 대표적 취미가 되었고, 오늘의 나를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내 세울 거 하나 없는 시절이었다. 밝히기에 께름직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한 술과 담배, 노름(?), 폭력행위는 나의 청소년 시절을 대변하는 삶이었고 급기야는 선생님으로부터 학업을 중단하는 게 낫겠다는 얘기를 듣는 일까지 생기게 했으니 말이다.
그런 나를 정신 차리게 하고 바로잡아 준 것이 독서였다. 그러고 보면 독서는 내게 단순한 취미생활이 아닌 생존 전략이었던 셈이다. 지금처럼 책을 구하기도 힘든 시절에, 중학생 수준에 읽은 책들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이런 류의,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운 책을 읽었으니 이건 취미생활 이상의 무엇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공개적으로 독서가 취미를 넘어 생존전략이라고 강조하게 된 계기는 오래전 원주의 한 중학교 학생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여행과 삶'이란 주제의 특강에서였다. 세계 3대 폭포를 예로 들며 빅토리아 폭포 대신 엘리자베스 폭포라고 짐짓 거짓 얘기를 했다. 그를 알아차리고(핸드폰을 통해) 한 학생이 이의를 제기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딱 3초였다. 폭소가 이어지는 가운데 내가 한 얘기는,
“맞습니다. 내가 잘못 알았네요. (웃음) 그러나 이제는 머리에 든 지식이 필요 없는(?) 시대가 됐다는 걸 얘기하기 위해서 일부러 틀리게 말했습니다. 핸드폰으로 모든 게 되잖아요. 이제는 지식보다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인데, 지식을 지혜로 바꾸기 위한 방법으로는 직접적 방법인 여행과 간접적 방법인 독서가 있습니다.”
지혜는 삶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생존 전략이고 그를 가능케 하는 것이 여행과 독서를 통한 경험임을 강조했다. 최근 만난 어느 의사 선생님은 서서 하는 독서가 여행이고, 앉아서 하는 여행이 독서라고 말했다. 참 현명한 해석이다. 요지는 지식을 지혜로 바꾸는 방법이라는 점이다.
취미로서의 독서는 즐거움을 준다. '책 읽는 소녀'에서처럼 정신적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생존 전략으로서의 독서는 삶의 지혜를 선사한다. 결국 독서는 취미로서도, 생존 전략으로 서도 훌륭한 행위인 셈이다.
거기에 하나 더, 인간이 하는 행위 중, 또는 취미활동 중 책 읽는 모습처럼 우아하고 고상하게 보이는 행위가 있을까? 남들은 모두 핸드폰에 머리를 박고 있는 지하철 안에서 나이 지긋한 사람의 책 읽는 모습은 그야말로 군계일학이다. 파란 하늘과 바다, 하얀 백사장에서 벤치에 기대 책을 읽는 외국 여성의 모습은 왜 그리 아름답게 보이던지. 힐링의 절정이다. 책 읽는 모습은 남녀노소, 지위고하, 빈부격차를 불문하고 뭔가 남다른 메시지를 준다.

최근 유명 대형서점이 정규직 직원들을 대량 구조조정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른 대형 서점은 심각한 경영난에 처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많은 출판사가 도산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모두 책 읽는 풍토가 사라져서 일어나는 사건임이 분명하다. 혹자는 전자책을 읽는다고, 혹자는 책 안 읽어도 지식과 정보의 취득이 가능하다고 자기 항변을 늘어놓는다. 가슴 아픈 변명이다.
종이책은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는 지혜를 준다. 종이책은 오감을 자극함으로써 인간의 지적 능력을 함양하는 능력이 있다. 종이책은 되돌아 음미하는 생각을 가능케 한다. 종이책은 아날로그적 낭만을 준다. 이렇듯 독서가 주는 혜택에는 끝이 없다.
책 안 읽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어떤 분은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도 했다. 또 어떤 이는 책 속에 길이 있고 책 밖으로 길을 낸다고도 했다. 이러고 보면 독서는 단순한 취미생활을 넘은 생존전략인 셈이다. 나를 보니, 내 과거와 오늘을 보니 더욱 그렇다. 책 읽는 취미를 권해야 하는 오늘이 안타깝기까지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