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의사 불벌 법적 구멍
尹 탄핵 청원은 속도전
범부처 협력 방안 부실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교제폭력 사례가 매년 증가하는 가운데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하지 못하는 법적 구멍에 대한 보완이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여야는 '한동훈·김건희 특검' 등 정쟁에만 관심이 있어 관련 입법 처리가 후순위로 밀려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25일 국회에 따르면 법제사법위원회는 전날 전체회의에서 교제폭력 관련 제도 개선 요청에 관한 청원을 즉시 의결하지 않고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법안소위에 넘겼다. 소위 일정이 다음달에 잡히면 논의 후 20일의 숙려기간이 또 걸릴 전망이다.
교제폭력 개선 청원에 대해 국회 법사위 전문위원은 여성경제신문에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필요성이 인정되지만 입법 방식과 관련 기존의 가정폭력처벌법 또는 스토킹 처벌법을 개정하는 방안과 별도의 특례법을 제정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데, 현재 3건의 법률안이 우리 위원회에 회부되어 있으므로 이를 바탕으로 심사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4월 발생한 거제 교제 폭력 사건의 피해자의 어머니는 ‘교제 폭력 관련 제도 개선 요청’을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올렸다. 청원은 한 달의 동의 기간이 끝난 지난 14일까지 8만5583명 동의 수를 기록했다.
반면 여야의 쟁점 현안인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에 관한 청원'은 동의 100만명이 넘자 동의 기간이 끝나기 전부터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청문회가 열려 여론전에 불이 붙었다.
국내에서 교제폭력은 살해의 고의가 드러나는 사례가 아니면 대부분 폭행죄나 협박죄로 다뤄진다. 폭행죄나 협박죄는 반의사불벌 조항이 적용돼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수사가 종결된다. 교제폭력은 피해자가 보복을 우려해 고소를 취하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유명 유튜버 ‘쯔양’이 전 남자친구로부터 폭행, 협박과 함께 거액을 갈취당했다고 고백하면서 파장이 이어졌다. 지난 5월 이별 의사를 밝힌 여자친구를 살해한 강남역 교제살인에 이어, 4월 경남 거제에서 전 여자친구를 장기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도 있었다.
지난해 교제폭력으로 신고된 건수는 7만7150건으로 4년 전인 2020년(4만9225건)과 비교해 57%가량 늘었다. 피해 상담기관인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교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되거나 살해될 뻔한 여성이 올해만 449명에 이르는 걸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에 해당 여성의 가족들이 피해받은 받은 경우까지 포함하면 568명이다.
해외에서는 교제폭력에도 가정폭력법을 적용하는 등 엄하게 처벌하고 있다. 교제 관계라는 개념이 추상적이고 주관적일 수 있는 만큼 영국의 경우 법률혼뿐만 아니라 결혼 예정자나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 또는 그런 관계에 있었던 자’를 대상으로도 ‘가정폭력법’을 적용해 처벌하고 있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피해자 보호 명령을 하거나 가해자 접근금지를 하는 부분이 부재한데, 일단 현재 법률적 형태에서는 경찰이 신변 보호를 할 수 있는 권한은 있으니까 그걸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며 "다만 스토킹처벌법이 생긴 것처럼 피해자 보호를 위한 보호 명령 같은 제도가 앞으로 추가가 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교제폭력 피해자 보호지원 강화방안'에 범부처 합동 대응은 아직 미비한 상태여서 논란이다. 여가부는 지난달 27일 간담회를 열고 피해자를 대상으로 상담, 긴급보호, 법률구조 등을 제공하는 '원스톱 맞춤형 지원'과 교제폭력 예방교육 등을 발표했다.
다만 '교제폭력'의 법적 정의도 마련되지 않았고, 경찰이나 검찰 등의 역할을 규정할 범부처 대책도 빠졌다. 보호지원 방안은 기존에 여가부가 운영하고 있었던 긴급전화 1366, 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 등 보호시설을 이용토록 하는 등 재탕하는 수준에 그쳤다.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경찰청과 법무부의 역할이 관건인데, 발표된 대책엔 법무부 관련 문구는 찾아볼 수 없다. 경찰의 경우에도 "경찰과 연계해 스마트워치 제공, 고위험 피해자 민간경호 등의 안전조치를 강화한다"는 한 줄의 문구만 있을 뿐이다. 현 정부의 '여가부 폐지' 기조로 인해 여가부가 실질적인 범부처 협력 체계를 구성하기 어렵다는 점도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5월 '교제 폭력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입법 과제' 보고서를 통해 별도의 특례법 제정과 더불어, △경찰의 응급조치 △피해자보호명령 등 범부처적인 협력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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