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섭의 은퇴와 마주 서기]
텃밭은 경기를 체감하는 현장
텃밭은 작은 실험실, 연구 대상
병아리콩의 놀라운 성장력
열매채소 식재로 텃밭 완성

텃밭은 작은 실험실이다. /박종섭
텃밭은 작은 실험실이다. /박종섭

텃밭은 작은 실험실이다. 서너 평 손바닥만 한 텃밭에서 다양한 일들이 일어난다. 면적은 작지만 종류 별로 없는 것이 없다. 종류로 따지면 대농이나 마찬가지다. 봄 상추와 여름 열매채소를 수확하고 나면 가을 김장용 배추와 무를 심는 이모작도 이루어진다. 몇 식구 안 되기에 상추는 종류별로 몇 포기씩만 심어도 먹고 남는다. 수부룩 커 올라오면 이웃도 주고 하지만 감당이 안 될 정도다.

도심 텃밭에서 농약도 안 주는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나름 부지런한 사람만이 누리는 행복이요 만족감 같은 것이다.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 쾌감은 또 있다. 평생 직장생활을 한 사람으로서 텃밭은 내 맘대로 할 수 있어서다. 어떤 종류의 채소를 심고 어떻게 심을 것인지는 오직 내가 결정하면 된다. 씨를 뿌릴 것인지 모종을 사다 심을 것인지도 내 마음대로다.

텃밭은 물가를 느끼는 경제 현장이다. /박종섭
텃밭은 물가를 느끼는 경제 현장이다. /박종섭

1. 텃밭은 물가를 몸소 느낄 수 있는 경제의 현주소다

씨앗과 모종의 차이는 무엇일까? 가지, 고추, 토마토 등 열매채소는 주로 모종을 사다 심는다. 상추 종류는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사다 심어도 수확하는 시기만 차이 있을 뿐 무난하다. 단지 씨앗을 한 봉지 사면 2~3년 보관도 가능해 저렴한 비용이 든다.

하지만 모종값은 해마다 그 가격이 달라진다. 작년에 1000원이면 토마토 3포기 하던 모종이 올해는 1000원에 2개, 심지어 대추 토마토는 1포기에 1500원을 한다. 가지도 1000원에 3포기에서 올해는 2포기 그것도 슈퍼 가지는 1포기에 1500원이다. 근래 개발된 신품종이라 비싸다고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 1000원에 3포기씩 하던 것을 품질이 어떤지 몰라도 1포기에 1500원씩 하니 부담이 될 뿐이다. 고추도 아삭이 고추는 포기당 1000원에 사다 심었다. 뉴스에 사과값이 오르고 물가가 뛴다고 하더니 씨앗과 모종값이 이렇게 비싸니 텃밭 임대료까지 계산하면 본전이나 뽑을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리한다. 경제의 흐름을 바로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중이다.

새싹도 연구 대상이다. /박종섭
새싹도 연구 대상이다. /박종섭

2. 새싹도 연구 대상이다

씨앗은 작년에 구입한 것을 냉장고에 냉동시켰다 올해 다시 뿌렸다. 그런데 같은 날 같은 장소에 뿌린 아욱은 크기가 묘하게도 다르다. 아욱 싹은 어릴 때부터 금방 알아볼 만큼 표시가 뚜렷하다. 어린아이가 오므린 작은 손바닥 펴듯 해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같은 날 한 장소에서 뿌린 씨앗인데 자란 싹은 기가 차다. 마치 초등학교 운동장 조회 시간처럼 키 작은 순서대로 나란히 서 있다.

“이게 무슨 일이람?” 이해가 잘 안된다.

맨 윗줄 깻잎은 다른 씨앗이 벌써 싹이 나 크도록 땅속에서 꼼짝을 안 하더니 어느 날 땅을 비집고 작은 잎을 내밀었다. 시금치, 쑥갓, 근대, 아욱이 저렇게 싹이 크도록 가만히 있다 거의 한 달 만에 고개를 내민 것이다. 냉장고에서 바짝 얼어 그랬나? 하긴 사람도 얼면 말도 제대로 안 나오니까.

병아리콩의 놀라운 성장력 /박종섭
병아리콩의 놀라운 성장력 /박종섭

3. 콩은 달랐다. 그것도 병아리콩은 놀라웠다.

이웃하는 캉캉 님이 텃밭을 한다니까 병아리콩을 좀 뿌려 보라고 한 움큼 주셨다. 이미 다른 작물 심을 계획이 있어 거절하다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먼저 몇 구멍에 씨를 뿌렸다. 싹이 나려면 최소한 한 보름 걸리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병아리콩 싹은 아카시아 이파리처럼 잎을 줄줄이 달고 솟아나 있었다. 처음엔 다른 잡초인 줄 알았으나 비닐 구멍에 정확히 나온 싹은 틀림없는 병아리콩이었다.

이렇게 빨리 콩 줄기가 나온 것을 보니 영국 민화 <잭과 콩나무>가 생각났다. 홀어머니 밑에 살던 잭이 유일한 수입원인 늙은 소 한 마리를 마법의 콩과 바꾸어오자, 화가 난 어머니가 창밖으로 콩을 던져 버렸다. 그런데 그 콩은 하룻밤 사이 하늘까지 닿아 콩나무를 타고 올라간 잭은 거인의 집에서 금은보화 한 자루를 가져와 풍족하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다.

이 깜짝 놀랍게 큰 병아리콩도 뭔가 상서로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병아리콩 재료를 두 배로 돌려주고도 더 많은 열매를 보상으로 주리란 생각이 들어서다. 텃밭은 이래서 재미가 있다.

4. 이제 열매채소를 다 심어 텃밭 식구들이 모두 자리를 잡았다

열매채소 식재를 끝으로 비로소 완성된 텃밭 /박종섭
열매채소 식재를 끝으로 비로소 완성된 텃밭 /박종섭

감자는 3월 말에 심고 시금치, 근대, 아욱, 쑥갓, 치커리 그리고 상추는 4월 초에 씨 뿌리고 모종도 심었다. 작물이 크고 작은 모양은 씨 뿌린 것과 모종 사다 심은 것의 차이다. 그런데 열매채소 모종은 4월 26일까지 기다리다 심었다. 이유는 늦게까지 아침저녁으로 찾아오는 찬 기운에 냉해를 입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냉해를 입으면 열매채소가 성장이 안 되고 열매 맺는 데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농사도 아무 때나 땅에 꽂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과학적 농사를 지어야 한다. 물론 적절한 비와 태양 그리고 기온이 만들어져야 성공적인 농사가 된다. 하지만 기본적인 농사 지식은 지켜야 한다. 그렇게 고추와 토마토 가지가 마지막으로 미리 씌워 놓았던 비닐 구멍에 심어졌다. 이제 텃밭은 다양한 식구들이 모여 사는 곳이 되었다. 비좁으면 비좁은 대로 이들은 말없이 자신을 키우고 열매를 맺어 그 기쁨을 나눠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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