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압적 통제 행위' 규제 입법 나서야
사적 영역 국가 개입, 사회 합의 필요

교제 폭력 등 친밀한 관계의 폭력이 연이어 발생함은 물론 살인으로 귀결되는 등 범죄의 심각성이 증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범죄를 막기 위해 '강압적 통제(coercive control) 행위' 규제 입법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정폭력, 거절 살인 등의 범죄를 더 이상 사적 영역이 아닌 공적인 영역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25일 여성경제신문이 경찰청 사건 사고를 조사한 결과 2024년 5, 6월에 일어난 교제 살인 중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 강남 박학선 모녀 살인, 평택 50대남 교제 살인미수, 하남 20대남 교제 살인, 의대생 교제 살인, 30대남 교제 살인 후 자살, 청주 50대남 교제 살인, 20대남 교제 살인미수, 60대남 교제 살인 등 8건이었다.
'강압적 통제'를 범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허민숙 사회문화조사실 보건복지여성팀 조사관은 국회입법조사처에 제시한 '거절 살인, 친밀한 관계 폭력 규율에 실패해 온 이유: 강압적 통제 행위 범죄화를 위한 입법과제' 보고서를 통해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항상 직접적인 신체적 구타나 물리적 학대의 유형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허 조사관은 "결별 통보 과정 또는 결별 이후 피해자가 살해되는 '거절 살인'은 가해자의 극심한 통제·지배 성향과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 나온다"며 "따라서 '교제 폭력' 등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통제 행위'를 금지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강압적 통제'에는 상대방의 일상에 대한 간섭과 규제, 모욕주고 비난하기, 행동의 자유를 빼앗고 가족 및 지인 등으로부터 고립시키는 등의 가해 행위 등이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행위들은 폭력·협박 범죄도 아니고 스토킹 범죄에 해당하지 않아 현행법상 처벌이 어려운 상황이다.

친밀한 관계 폭력 범죄에 적용되는 '반의사불벌'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가해자 처벌에 대한 피해자 의사를 사건처리의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어 가해자 처벌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가정폭력 보호시설 이용 피해자를 대상으로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3순위까지 조사한 결과 '배우자/파트너의 보복이 두려워서'가 46.7%로 압도적 1순위를 차지하였다. 친밀한 관계 폭력에서 가해자를 처벌 불원하는 경우는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이기보다는 보복폭행의 두려움을 그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법 개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방민우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 변호사 대표는 반의사 불벌죄 폐지에 대해 "자칫 개인의 내밀한 영역을 공적인 영역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는 결국 여성 대상 범죄를 공적인 영역으로 보느냐, 사적인 영역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허 조사관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가정폭력을 그냥 사적인 문제로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박주영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부장판사는 도서 <어떤 양형 이유>에서 "가정은 사적영역이므로 공권력 개입은 가급적 자제되어야 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명제는 그 가정이 가정으로서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을 때만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라며 "폭력이 난무하는 곳보다 더한 공적 영역은 없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민고은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 이사는 "사적 영역에서 범죄 피해가 일어나고 있다면 그 지점엔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 다만 국가의 개입이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