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해미백일장 김일미 님 입상작

치매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해미백일장을 접수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작년에 올라온 사연을 읽다가 울기도 하고 공감도 하며 지금의 내 생활을 돌아보다 어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거나 공감되는 내용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서툴지만 1년 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를 적어 보려 한다.
'치매' 이 단어는 나와는 상관없는 단어라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1년 전만 해도…. 알 수 없는 번호로 걸려 온 한 통의 전화 그 후 내 삶은 완전히 무너졌다. 아니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젊은 여자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혹시 김일미 씨세요? 어떤 할머니가 무선 전화기와 수첩을 들고 길거리를 헤매고 계셔서 제가 할머니께 도움이 필요하시냐고 여쭤보니 수첩에 적힌 이름으로 전화해 달라고 하셔서 수첩 첫 번째 써진 이름 전화번호로 전화를 드렸어요."
그 전화를 받는 순간 머리가 하얘지고 지금 이 상황이 정리가 안 돼 전화 거신 여자분께 옆에 계신 분을 바꿔 보라고 했다. 전화기 너머 들려온 목소리는 울먹이는 엄마 목소리였다. 엄마는 "나 김원희요. 나 김 원희요. 나 김원희요"란 말만 반복하며 울고 계셨다. 우선 엄마를 진정시키고 여자분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옆에서 30분 정도만 엄마 옆에 계시면 제가 지금 그곳으로 가겠다고 하고 엄마에게 달려갔다.
그날의 바깥 공기와 소음, 차 안의 공기는 아직도 트라우마처럼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치매 엄마와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 증상은 정말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하게 진행되는 듯했다.
언니와 오빠 그리고 날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계속 멍한 눈빛으로 '내 집에 데려다 달라. 당신들은 누군데 날 못 가게 하냐.” “저기 애기가 있다. 먹을 것을 줘라" 하며 헛것을 보고 엄마에게 지금껏 살아오며 들어보지 못했던 심한 욕을 듣기도 하고 아이처럼 울기만 했다.
어떻게든 이 상황들을 해결해야 할 것 같아 우선 보건소에 전화를 걸어 문의를 하니 치매 안심 센터를 안내해 줬다. 그곳에서 기본적인 검사를 받은 결과 증상이 심각하다는 진단이 나와 진료 의뢰를 받고 종합병원으로 갔다. 기본적인 치매 검사와 CT 등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 최종적으로 치매 진단을 받아 치매약을 드시기 시작했다.
약을 드시기 시작하니 처음 급격히 진행된 선망 증상이나 환청, 환각 증상이 호전되고 조금씩 기억이 회복되는지 언니와 오빠, 나를 조금씩 알아보기도 했다. 난 이때만 해도 우리한테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고 있었다. 엄마는 누구보다 강한 분이라 치매라고는 하지만 다른 어르신들과는 다르게 완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니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내 간절한 소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른 어르신과 다름없는 치매 과정을 겪었다. 치매는 완치가 없고 치료는 진행을 늦추는 것뿐이라지만 처음 증상과는 다르게 호전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다행이라고 하면서도 한편으로 마음이 아려 왔다. 그렇다고 우울해할 수만은 없었다. 언니 오빠와 달리 자영업을 하는 난 시간적 제한이 없어 가족 요양이라도 해서 진행되는 엄마의 치매와 익숙해지려고 요양 보호사 공부를 시작했다.
몇 달 동안 공부하고 실습까지 하면서 치매라는 병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요양원에서 실습하는 동안은 어르신들에게 도움이 되기보단 내가 많은 도움을 받았고 어르신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마음속으로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곳 어르신들도 똑같은 부모였다. 정신이 온전하지 않아도 자식에 대한 끝없는 사랑, 이런 자기 모습에 대한 미안함, 애달픔까지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일주일이란 실습 시간 동안 치매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어 엄마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49년 동안 엄마에게 식사 한번 제대로 직접 차려 드린 적이 없었던 나쁜 딸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치매에 걸리신 후부턴 음식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두려워해 온전히 내가 엄마 식사를 차려드렸다.
가슴 아픈 일이긴 했지만 한편으론 내 손으로 차린 음식을 드시는 엄마 모습을 보며 정말 뿌듯했고 맛있다고 할 때마다 행복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가끔은 엄마의 음식이 너무 그립고 미치도록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엄마는 마치 다른 세상 아주 먼 우주 어느 곳인가 엄마의 행성이 있는 듯했다. 공허한 눈빛으로 우리의 세상을 보며 ‘너희들은 지금의 나를 이해할 수 없지만 나는 내 세상이 따로 있단다'라고 하는 듯했다. 엄마는 엄마의 행성으로 가면 그 누구보다 행복하고 우리와 있던 세상에 미련이 없는 듯했다.
조금씩 조금씩 엄마는 엄마의 행성으로 가는 속도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속절없이 보낼 수 없어 난 발버둥을 쳐보지만 문득 엄마의 세상을 이해해 드리고 나 역시 엄마의 세상에서 놀고 오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지만 엄마와 같이 그 세상에서 놀다 보면 난 어느새 순수했던 어린 나로 변해 있었다.
'치매'란 한자 뜻을 풀이해 보면 '어리석을 치' '어리석을 매'라는 단어라고 한다. 누가 이런 단어를 처음 만들었을까? 왜 어리석다고 단정 지었을까? 치매라는 병이 기억이 점점 사라지는 무서운 병이기는 하지만 어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기억이 더 무서울지 모른다. 엄마는 이곳에서 아기가 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엄마가 되어가고 있지만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치매라는 병을 절대 절망으로만 바라보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어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급속도로 변해 적응할 수 없고 무기력해지는 요즘 세상보다 옛 기억에 갇혀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고 있지만 그곳에서 더 행복함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오늘도 엄마는 “살던 집으로 데려다 달라.” “나쁜 년” “넌 누구냐” 하며 날 알아보지 못하고 계시지만 가끔 기억이 돌아온 모습으로 “내 막내딸이구나. 예쁜 내 새끼”라며 누구보다 날 예뻐해 주시고 아련하게 바라보시는 엄마를 볼 때마다 감사함을 느낀다.
오늘도 핸드폰에선 안전 안내 문자메시지가 울린다. 치매 걸리신 실종된 할머니를 찾고 있다는 내용으로…. 그분 가족들의 고통과 애타는 마음을 누구보다 알 수 있기에 오늘 기도 내용이 하나 더 늘어난다. 어르신을 찾았다는 내용의 문자가 울리기를….

